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시장님 관심 사안'이라?…계약서도 안 쓰고 13억원 쓴 서울시

입력 2021-10-27 17:54 수정 2021-10-27 18:32

서울시 시민감사 결과 발표 "예산 집행 절차 위반"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서울시 시민감사 결과 발표 "예산 집행 절차 위반"

'시장님 관심 사안'이라?…계약서도 안 쓰고 13억원 쓴 서울시
지난 4월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꺼내 든 첫 키워드는 '상생방역' 입니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로 음식점 등 영업장 출입 가능 여부를 판단해 영업시간 제한을 풀어주겠단 구상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오 시장은 "민생과 방역을 모두 지키는 '상생방역'으로 패러다임을 바꿔가겠다"며 "야간 이용자가 많은 노래연습장에 시범 도입해 코로나19 예방에 효과적인지 검증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률적인 '규제방역'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지난 5월 서울시가 시범사업을 위해 구입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지난 5월 서울시가 시범사업을 위해 구입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곧장 서울시 실무자들은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한달 뒤인 5월 17일 콜센터와 물류센터, 기숙학교 등을 대상으로 키트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시 재난관리기금 13억4500만원을 들여 키트 27만8275개를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조례나 관련법이 정한 절차를 어겼다는 의혹이 지난 7월 제기됐습니다.

서울시민들의 혈세를 쓰는 일임에도 심의 및 승인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계약서도 쓰지 않고 납품부터 받았단 내용이었습니다.

오인환 진보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50여명 시민 서명을 받아 서울시 옴부즈만위원회에 시민감사를 청구했습니다.

코 속의 검체를 묻힌 자가검사키트 면봉을 시약 튜브에 담그는 모습코 속의 검체를 묻힌 자가검사키트 면봉을 시약 튜브에 담그는 모습

두 달 간의 시민 감사 끝에 시민감사옴부즈만위가 오늘(27일) 결과를 내놨습니다.

시민들이 제기한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시민감사 결과 담당 부서가 재난관리기금 심의 절차 및 물품구매 절차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돼 '부서 주의'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는 키트 구매에 재난관리기금을 썼는데, 심의위원회의 심의·승인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 물품 먼저 받아 시범사업에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트 구매 계약서도 쓰기 전에 물품을 받아 시범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홍수나 위급한 재난이 발생해 급하게 집행할 경우 예외적으로 사후 심의를 받을 수 있고, 자가검사키트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데 절차를 어긴 겁니다.

오인환 진보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오늘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이렇게 구매하진 않는다"며 "오세훈 시장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 옴부즈만위원회의 시민감사 결과가 나온 27일 아침 기자회견을 하는 오인환 진보당 서울시당 위원장 서울시 옴부즈만위원회의 시민감사 결과가 나온 27일 아침 기자회견을 하는 오인환 진보당 서울시당 위원장

서울시 담당 부서는 왜 이렇게 무리하게 서둘러가며 사업을 추진했을까요.

담당 부서는 '국가재난 상황에서 시행한 긴급 조치였다'며 적극 행정에 대한 면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위원회는 "간소한 수의계약 절차조차 준수하지 않을 만큼 촌각을 다투는 사업이라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6월 서울시의회 상임위에 출석한 한제현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의 발언에서 좀더 솔직한 이유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실장은 키트가 예산 집행 절차를 어기고 보급된 경위에 대해 "자가진단키트 사업이 시장님께서 관심 갖고 추진하다보니까 시민건강국에서 빠른 진행이 있었고 저희 심의가 늦어지다보니 그런 불부합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의 '관심 사안'이었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둘러 진행했던 시범사업 이후 서울시는 자가검사키트 관련 추가 사업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오 시장의 '상생방역' 구상도 지금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서울시 담당 부서 관계자는 "자가검사키트 관련 검토만 해도 여기저기서 비판이 쏟아져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가검사키트에 대한 일부 학계의 우려와 비판 여론 탓에 예산 부족 등 어려움을 겪으며 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는 자가검사키트 도입에 앞서 지난 4~5월 두 차례 전문가들을 불러 자문을 받았습니다.

회의에 참가했던 한 전문가는 JTBC 취재진에 "PCR검사에 비해 정밀도가 떨어지는 자가검사키트는 기숙학교 같은 고정적 집단에 반복 시행 시 효과 있다"며 "대부분 무증상자들인 식당 출입자 등을 대상으로 한 1회성 검사는 무의미하고 방역에 혼선만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영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새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달도 걸리지 않고 내놓은 정책의 설익음을 보여줬다"며 "상생방역이라고 하며 시도한 것들이 델타변이가 시작하자마자 자취를 감춘 점을 볼 때 준비된 방역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시장님 관심 사안'이라?…계약서도 안 쓰고 13억원 쓴 서울시
하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달 사이 15만3127건 검사로 8명이 양성으로 나왔고, 그 중 4명이 최종적인 확진자로 나타나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기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가검사키트를 구매해 확진이 확인된 사례도 495건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시민들에게 자가검사키트를 알리는 마중물 역할을 한 점도 평가받을 만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번 시민 감사 결과는 법과 관련 규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면서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행정은 언제든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