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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지구촌 120만명의 선택은? (하)

입력 2021-02-08 09:32 수정 2021-02-08 13:2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4) 지구촌 120만명의 선택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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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4) 지구촌 120만명의 선택은? (하)

유엔개발계획(UNDP)이 옥스퍼드 대학과 함께 전세계 120만명을 대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 기후변화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기존 설문조사들이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전세계 50개 나라에서 18세 이하 미성년자 50만명을 상대로도 조사를 벌였죠. 더 많은 나라, 더 넓은 연령대를 커버한 이 설문조사는 다양한 분석들을 가능케 했습니다. 글로벌 차원의 대규모 설문조사 'Peoples' Climate Vote' 결과,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지구촌 120만명의 선택은? (하)

#재생에너지와_녹색경제
역대 최대 규모의 기후변화 관련 설문조사 결과, UNDP는 기후정책 가운데 전 세계적인 관심이 가장 큰 10가지 분야를 꼽아 집중 분석했습니다. ① 청정에너지, ② 녹색경제, ③ 삼림 및 토지 사용, ④ 기업 규제, ⑤ 해양 및 수로, ⑥ 도시와 도시화, ⑦ 농업과 식량, ⑧ 극단적 기후로부터의 시민 보호 및 기후재난 보험, ⑨ 폐기물 저감, ⑩ 채식 등입니다. 이중 청정에너지와 경제 관련 분야, 그리고 채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자료: UNDP)(자료: UNDP)


UNDP는 "에너지 분야에 있어 국가가 어떤 정책을 펼치길 바라는가" 물었습니다. 그 답은 예상할 수 있듯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확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답은 전력과 열공급 등 에너지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너지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 글로벌 탑10에 드는 나라 중 8곳에서 과반 넘는 나라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친 것이죠. 이는 향후 에너지 분야의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이 크게 줄어들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안 그래도 손꼽히는 다배출 국가인데, 그 나라에서 적극 에너지 전환에 나선다면 감소폭은 더욱 커질테니까 말이죠.

UNDP는 "정부가 기후변화 정책을 결단할 때, 시민사회의 지지 여부는 그 정책의 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며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각국 정부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데에 보다 많은 기회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대응하는 차원에서도 '녹색 경제'와 '녹색 일자리 창출'은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린뉴딜을 외친 나라는 한국만 있는 것이 아닌 거죠. 일찍이 EU는 우리보다 앞서 그린뉴딜에 나서며 관련 분야에 '역대급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끄는 미국 역시 모든 경제 분야에서 '탈 탄소'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죠.

 
(자료: UNDP)(자료: UNDP)


녹색 경제와 녹색 일자리를 위한 더 많은 투자에 대해, G20 국가 대다수에선 지지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지는 비단 EU와 영국 등 일부 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아공에서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있어 '녹색'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이가 과반을 넘었습니다.

응답자들이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여기고 이같은 답변을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꽤나 구체적인 지식과 그에 따른 확신으로 이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자료: UNDP)(자료: UNDP)


위의 그래프에서 짙은 보라색은 '기업들로 하여금 그들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짙은 분홍색은 '기업들에게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의미합니다.

과반이 넘는 이들이 기업들의 책임을 촉구했고, 과반 가까운 시민들은 스스로 소비를 할 때 '탄소 발자국'과 같은 정보를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의 책임뿐 아니라 시민 개개인으로서도 책임있는 소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미 다수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했고, 얼마나 많은 물을 썼으며, 얼마나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했는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점차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죠. 지난해 6월 연재 기사에서도 이 같은 변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요즘 말로 TMI와 같은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스웨덴의 볼보와 같은 사례 말입니다.

 
볼보 그룹의 환경 영향 (자료: 볼보)볼보 그룹의 환경 영향 (자료: 볼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볼보는 '탄소 중립' 선언까진 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자동차를 만들어오며 얼마나 환경에 영향을 미쳐왔는지 파악하고, 공개해왔죠. 얼마나 많은 양의 전력을 사용했고, 직·간접적으로 탄소를 뿜었고, 얼마나 많은 물을 썼고,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은 얼마나 뿜어냈는지 말입니다. 환경 영향을 파악하는 거죠. 어찌 보면, 이렇게 상세히 기업 스스로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쉽사리 '탄소 중립'이라는 표현을 꺼내지 못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이 갖는 막대한 책임과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죠.

#모든_것이_다_일치할_수는_없었는데
지금까지의 결과만 보면, 기후변화 자체에 대한 위기 인식과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세부 정책들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은 매우 상세히, 많이,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밥상'과 관련된 부분에선 생각이 엇갈렸습니다.

지난주 '지구촌 120만명의 선택은? (상)' 편에서 소개해드렸듯, '숲과 토양 보호', '기후친화적 농업기술'에 대한 지지와 관심은 대륙을 넘어, 국가별 소득수준을 넘어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채식'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전체 평균 30%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것이죠. UNDP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시민사회 다수의 관심을 받는 데에 실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자료: UNDP)(자료: UNDP)


UNDP는 채식이 기후변화 대응 정책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지 못 한 것에 대해 "일부 국가에선 채식 옵션 자체가 거의 없는 상태"라며 "그 밖에도 채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채식은 정책이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식용 가축을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과도한 기계식, 공장식 사육이 아니라면 목장 자체에서 오는 기후변화 대응 측면의 이득도 있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정책과_정치가_늦게_반응하는_이유
지구온난화에서 기후변화로,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용어는 달라졌지만, 사실 우리가 이 본질을 처음 알게 된지는 꽤나 오래됐습니다. 국민학교나 초등학교 시절, 지금은 사라진 빨간 수은주를 입에 물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담아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고, 깨진 해빙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하얀 북극곰의 사진과 영상은 이미 30년 전에도 '밈'과 같았죠.

그런데 왜, 그 긴 시간동안 우리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걸까요. 아래의 표를 보면 조금은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료: UNDP)(자료: UNDP)


좌측의 연두색 그래프는 국가별 기후위기 인식도 조사 결과입니다. 오른쪽의 노란색 그래프도 국가별 조사 결과이나 '60세 이상'으로 한정한 결과입니다. 그 어떤 나라도 60세 이상의 수치가 해당 국가 평균보다 높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전 세계 120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국가별이 아닌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기후위기 인식에 있어 18세 미만과 60세 이상의 차이는 무려 11% 포인트에 달합니다.

 
(자료: UNDP)(자료: UNDP)


과연 기후변화, 기후위기가 누군가에게는 '남의 일', 누군가에게는 '나의 일'인 것일까요. 탄소중립 시점으로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목표한 2050년. 연령대별로 보면, 앞으로 30년 후의 시간이 '남의 일'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연령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은 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칫 '되돌릴 수 없을 지경'이 될지도 모를 만큼 달궈진 지구. 태어난지 20년도 안 된 미성년자의 책임이 더 클까요, 수십년간 온실가스를 뿜어온 어른 세대의 책임이 더 클까요.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연령대만 놓고 보자면 이런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11% 포인트라는 차이는 곧 정책을 만들고, 국정을 운영하는 이들, 그 중에서도 실제 '결정권'이 있는 이들과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 사이의 간극을 의미한다고 말이죠.

 
(자료: UNDP)(자료: UNDP)


이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바로 서로 소통하는 것, 서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알아가는 것 뿐입니다. 즉,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 대응에 대해 공부하는 일 말입니다.

UNDP는 "조사 결과, 기후위기에 관한 의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교육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든, 지역과 소득에 상관없이, 교육에 따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정도가 달라졌다는 것이죠. 당장 위의 표만 '얼핏' 보더라도 지금껏 이 보고서에 나온 그 어떤 백분율보다 더 높은 수치가 쓰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 UNDP)(자료: UNDP)


또한, 지역별로 살펴보더라도 교육의 중요성은 뚜렷이 나타납니다. 흔히들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서구와 북미 지역의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으로 한정짓는 경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무려 80%에 이릅니다. 또한, 아태지역도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을 보였고요.

보고서에선 '고등교육'이라고 표현됐으나, 이는 곧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보에 얼마나 노출됐는지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편이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별, 지역별로 고등교육의 기회나 환경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기후위기에 대해 그것이 기초교육이든, 초등교육이든, 무엇이든. 올바로 알릴 수만 있다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 것입니다. 아는 만큼 실천할 수 있고, 아는 만큼 판단할 수 있고, 그런 실천과 판단은 각 나라의 정부 당국자와 정치인들에게도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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