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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COP26 톺아보기 (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글래스고

입력 2021-11-22 09:32 수정 2021-11-23 14:1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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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06)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폐회식 날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일까요. 많은 이들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COP26을 떠올릴 땐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지에서 단계적 감축으로 한층 약해진 글래스고 기후 합의문'을 꼽습니다. 막판까지 '글래스고 기후 합의문(Glasgow Climate Pact)'의 내용을 놓고 각국 대표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최종 합의문의 발표 전, 인도와 중국 대표가 석탄발전에 관한 발언을 하는 모습, 뒤이어 스위스 대표의 따끔한 일침에 30초 가까운 박수가 이어진 현장, 알록 샤르마 의장이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사과하는 모습 등…

(자료: UN Climate Change)(자료: UN Climate Change)
그런데, COP26에선 이 외에도 정말 많은 것들이 논의됐고, 합의됐습니다. 폐막을 앞두고 벌어진 극적인 장면부터 우리가 그저 석탄 문구에만 몰두해선 안 되는 이유까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반전에_반전을_거듭한_장면들
COP26의 개막을 앞두고, 중국의 행보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세션도 예정되어 있지만,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부터 단순히 시 주석의 불참이 아닌 중국의 이탈을 목소리까지 대체로 '우려 섞인 관심'이었죠. 당장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나라 중 하나인 데다, 현재 EU에 이어 미국까지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의 행보는 관건으로 떠오른 상황이었습니다. 또, 중국의 행보는 단순히 다배출국가 한 곳의 움직임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국의 움직임은 다른 개도국들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글래스고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일까요.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와 셰전화 중국 기후특사는 단순히 '회담' 이상의 성과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상황을 이유로 들며 좀처럼 뜻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 규모로나 온실가스 배출량으로나 G2인 두 나라가 합의문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름하여 '기후행동 강화를 위한 글래스고 공동 선언'입니다.

COP26에 참석한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와 셰전화 중국 기후특사COP26에 참석한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와 셰전화 중국 기후특사
지난주 연재에서 소개해 드렸듯, 양국은 지난 8월 공개된 IPCC 6차 평가보고서에 담긴 경고대로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인식하고, 양국이 전 세계의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을 앞당기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각종 환경기준과 규제 시스템, 청정에너지 전환, 탈탄소 및 전동화 정책, 순환경제, 탄소포집 등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적인 분야 모두에 걸쳐 협력하기로 했죠. 또, 양국의 2035년 감축목표를 놓고 2025년 함께 소통하기로도 합의했습니다.


또한, 최근 화두로 떠오른 메탄 감축에도 뜻을 함께했습니다. 메탄은 농축산업뿐 아니라 가스 자원의 개발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대규모의 축산업, 농업, 가스 개발에 나선 두 나라가 메탄 감축 강화를 위해 협력하고, 감축 정책 및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좀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를 씻는 반전에 이어 불과 이틀 만에 또 다른 반전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폐회식 현장에서의 일입니다.

(자료: UN Climate Change)(자료: UN Climate Change)
예정보다 하루 더 길어진 COP26. 폐회식을 앞둔 현장은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단순한 '분주함' 이상의 '불길한 어수선함'은 글래스고와 한참 떨어진 서울에서 UN Climate Change 유튜브 공식 계정의 라이브로도 느껴졌습니다. 단상 위에선 의장과 존 케리 미 기후특사 등 각국 대표들이 급히 의견을 나누고, 단상 아래서도 중국과 EU 등 대표들이 각각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논의의 시간은 끝났고, 이제 의사봉을 두드리며 COP26의 결과물인 '글래스고 기후 합의문'을 통과시키면 되는 순간인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폐회식이 시작하고, 앞서 단상에 올라 알록 샤르마 COP26 의장과도 이야기를 나눴던 부펜데르 야다브 인도 환경부장관이 발언권을 요청했습니다. 야다브 장관은 합의문의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감축으로 바꾸자는 요구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최빈국 등 기후위기 대응 취약국가를 대상으로 한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야다브 장관의 이 발언은 폐회식 직전, 케리 특사가 단상 위아래를 오가며 분주히 이야기를 나누고, 의장은 각국 대표들과 심각하게 논의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COP26 톺아보기 (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글래스고
이어 스위스 대표인 시모네타 소마루가 환경부 장관은 깊은 실망을 표명했습니다. 단순히 스위스의 대표로서가 아닌, EIG를 대표한 발언이었습니다. EIG는 환경건전성그룹(Environmental Integrity Group)을 뜻합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해있습니다. EIG엔 스위스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리히텐슈타인, 멕시코, 모나코, 조지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그룹 가운데엔 LDC(저개발국), 엄브렐라 그룹(미국, 캐나다, 호주 등), EU27(유럽연합), AOSIS(군소도서국) 등이 있습니다.


소마루가 장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계적 감축이 아닌 단계적 폐지”라며 “의장이 제안한 초안을 변경하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마지막 순간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합의문 자체가 채택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반대하진 않겠다”면서도 “이는 1.5℃ 목표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의 발언이 나오자 현장엔 25초 가량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의장이 여러 차례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고서야 박수는 멎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COP26 톺아보기 (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글래스고
이러한 막판 반전에 샤르마 의장은 사과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합의문의 내용이 바뀌게 된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Deeply sorry)”면서 “하지만 이 합의문 패키지를 지켜내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지막 순간, 울컥한 의장의 모습에 참석자들은 또다시 박수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달라진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도가 대표로 발언했던 그 내용은 그대로 글래스고 기후 합의 최종안에 담겼습니다. 그렇게 11월 13일 자정을 앞둔 시점에서 만장일치 합의문이 만들어졌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우리가 큰 진전을 시도할 때마다, 항상 '뜻밖의 연장전'이 펼쳐졌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2009년 COP15도, 파리협정을 끌어냈던 2015년 COP21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가 아닌 1.5℃로 묶자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결정한 2018년 제48차 IPCC 총회도… 모두 예정일을 넘겨서 최종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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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세계 각지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미 COP26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마저도 쓴소리를 해댔는데, 준엄한 눈으로 이번 총회를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살리물 후크 국제기후변화개발 연구센터장은 “실제 우리 지구상에서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길 학수고대하면서 이번 COP26 총회에 참석했다”며 “지금의 결과는 그저 '더 논의하자, 협력하자'라는 수준일 뿐”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제니퍼 모건 그린피스 사무총장은 “합의문에 석탄의 종말이라는 신호는 담겼지만 온화하고도 약한 표현만 담겼을 뿐”이라며 “앞으로의 지구를 살아갈 전 세계 청년들은 이번과 같은 총회를 두 번 다시 납득하진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내 환경단체들이 모인 기후위기비상행동 역시 “COP 자체가 문제임을 드러냈다”며 “일각에서는 석탄 등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포함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할지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개도국과 최빈국 등을 위한 지원금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도 “기금의 규모와 집행에서 기후위기 취약국의 피해를 예방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기후정의 실현은 또다시 묵살됐다”고 비판했습니다.

#뛰기_시작한_국제사회_아직_걸음마_중인_한국
그런데, COP26에서 합의된 내용들을 살펴보다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을 놓고 이야기할 때가 맞는가 싶은 내용이 많습니다. 우린 아직 내부적으로 감축에 대한 이해도, 공감대도 아직인데, 어느덧 국제사회는 감축의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룰을 정해놓은 겁니다. 이번 총회의 핵심은 바로 파리협정 룰북(Rule Book), 바로 이행규칙의 완성에 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간 우리의 노력과 성과를 치하하고, 동시에 나태함을 꼬집으며, 앞으로의 여정을 현실적으로 내다본 COP26의 여러 스피치 중 한 연사의 스피치로 이번 주 연재를 마칩니다. 50분 가까운 연설에도 모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탁월한 인사이트가 돋보였던 연설 중 마지막 5분의 발언입니다. 발언의 주인공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마치 폐회식에서 일어날 일을 이미 예상한듯 했습니다.

(자료: UN Climate Change)(자료: UN Climate Change)
So let me close by being blunt, keeping the rise in global temperatures to 1.5 degrees Celsius will not be easy. It is going to be hard. Existing political institutions move slowly.. Even when leaders are well intentioned. International cooperation has always been difficult. It's made more difficult by all the misinformation and propaganda that can flood out through social media these days.
간단히 말해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내로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어려울 겁니다. 리더가 아무리 의도를 갖고 움직이려 해도 기성 정치권은 천천히 움직입니다. 국제협력은 늘 힘겨웠고요. 요즘엔 SNS를 통해 온갖 가짜뉴스와 선전들이 판치면서 협력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Yes, the process will be, be messy. I guarantee you, every victory will be incomplete. We will face more setbacks. Sometimes we will be forced to settle for imperfect compromises because even if they don't achieve everything we want, at least they advance the cause. At least they move the ball down the field. But if we work hard enough for long enough, those partial victories add up. If we push hard enough, stay focused enough and are smart about it, those victories accelerate. And they build momentum. If we listen to those who are resistant and we take their concerns seriously, and we work with them and we organize and we mobilize and we get our hands dirty in the difficulties of changing political dynamics in our countries, those victories start happening a little bit more frequently. If we stay with it, we will get this done.
맞아요. 그 과정은 골치 아픈 일들 투성이 일겁니다. 장담하건대, 우리가 거두게 되는 그 '승리'는 다 불완전한 승리일 겁니다. 게다가 여러번 좌절을 겪을 테고요. 가끔씩은 억지로라도 미완의 타협을 해야만 하는 순간 역시 찾아올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만족시키진 못 하지만, '최소한 조금의 진전은 있는 것 아니냐', '적어도 운동장에 공을 가져다놓긴 한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또 오래 노력한다면 그러한 불완전한, 한 조각, 한 조각의 승리가 모여 쌓일 겁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충분히 집중하고, 이런 흐름을 잘 파악한다면, 그렇게 승리가 점차 쌓이는 일은 더욱 빨라질 테고요.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이 뭔지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모이고, 함께 힘을 합친다면, 그렇다면 모멘텀이 만들어질 겁니다. 매일같이 변하는 정치의 역학구도 속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조금씩 헤쳐나간다면 이 작은 승리들을 더 자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거죠.

(자료: UN Climate Change)(자료: UN Climate Change)
So to all the young people out there, as well as those of you who consider yourselves young at heart, I want you to stay angry. I want you to stay frustrated, but channel that anger, harness that frustration, keep pushing harder and harder, for more and more because that's what's required to meet this challenge. Gird yourself for a marathon, not a sprint, for solving a problem this big, this complex and this important has never happened all at once.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전하건대, 물론, 스스로 젊다고 여기는 분들께도요. 계속해서 화를 내주십시오. 계속해서 그 좌절감을 잊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 화를 드러내고, 좌절감을 이용해서 더 강하게, 더 많이 밀어붙여야 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기후변화라는 당면한 문제를 비로소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도 중요하고도 커다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했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을 뛴다는 마음으로 나서야 합니다.

Since we're in the Emerald Isles here, let me quote the bard, William Shakespeare, “What wound,” he writes, “did ever heal but by degrees.” Our planet has been wound by our actions. Those wounds won't be healed today or tomorrow or the next, but they can be healed. By degrees. And if we start with that spirit, if each of us can fight through the occasional frustration and dread, if we pledge to do our part and then follow through on those commitments, I believe we can secure a better future. We have to. And what a profound and noble task to set for ourselves. I'm ready for the long haul if you are. So let's get to work. Thank you very much, everybody. Thank you.
에메랄드빛 섬인 영국에 왔으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천천히 아물지 않는 상처가 어디에 있던가.” 우리의 지구는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처는 당장 오늘, 혹은 내일, 혹은 그 다음 어떤 날 갑자기 낫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나을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말이죠. 그러한 신념을 갖고 시작한다면, 종종 우리를 뒤덮을 좌절과 두려움 속에서도 싸워나갈 수 있다면,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다 하리라 약속하고, 그 약속들을 지켜나간다면… 우린 더 나은 미래를 사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만 하고요.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심오하고도 숭고한 임무입니다. 저는 길고도 길 이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됐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준비됐다면, 이제 시작합시다. 감사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COP26 톺아보기 (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글래스고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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