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기나긴 연패를 끊고 승리한 날, 감독은 기꺼이 물벼락을 받아들입니다. 선수들의 강스파이크로 기억되는 배구 코트에선 가끔 감독이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감독의 몸짓 하나, 말 한마디가 선수들의 마음을 흔들기 때문인데요.
오광춘 기자가 그 장면들을 모았습니다.
[기자]
< 페퍼저축은행 3:0 IBK기업은행|프로배구 V리그 >
갑자기 김형실 감독이 두 손을 들고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공은 왜 코트 한쪽에 서 있는 감독에게 날아들었는지, 그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공을 못 받게 됐다며 선수들은 웃으며 핑계를 댔습니다.
늘 불호령을 내리던 김호철 감독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서브를 실수하고 교체된 김수지가 너무 자책하자 다가가선 한동안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바꿔줍니다.
선수와 언제나 뭔가를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자리, 감독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 감독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시간은 따로 있습니다.
30초 작전 타임, 이 짧은 시간에 선수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김호철/감독 (IBK기업은행, 18일) : 안 되면 어떡하든지 할려고 해야 하잖아.]
너무 솔직한 말 때문에, 심각한 순간 웃음이 터지기도 합니다.
[김호철/감독 (IBK기업은행, 지난 15일) : 누가 잡아 먹어? 웃지 말고 결정을 해줘야 한다니까.]
힘내라고, 집중하라고 달래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고희진/감독 (삼성화재, 지난 5일) : 야, 너무 쉽게 준다. 쉽게 줘. 열정을 끌어올려봐.]
[석진욱/감독 (OK금융그룹, 지난 15일) : 니들 마음대로 할래? 작전대로 좀 해.]
어쩌면 가장 무서운 건 침묵입니다.
최태웅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러놓고도 코트에 그냥 있으라고 손짓만 보내며 효과를 봤습니다.
현대캐피탈은 이 장면 때문인지 먼저 두 세트를 내주고 내리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했습니다.
공 하나, 점수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내는 배구 코트, 선수 머리를 맞고 튕겨 나가기도 하고, 선수 얼굴을 그대로 때릴 때도 있고, 공을 받아내기 위해 광고판을 가로지르고, 또 발까지 드밀기도 합니다.
선수들의 간절한 몸짓, 그 뒤엔 알듯 모를 듯, 밀고 당기는 감독의 능력이 숨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