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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에 짓밟힌 오빠·아들…유족 가슴엔 아직도 응어리

입력 2022-05-18 20:06 수정 2022-05-1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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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온 노모가 있습니다. 공수부대원들에게 맞아 투병하다 숨진 오빠를 그리워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42년 지난, 5월의 광주엔 여전히 눈물과 한이 서려 있습니다.

정진명 기자입니다.

[기자]

녹색 택시에서 내린 여성이 기념식장으로 들어섭니다.

오월어머니집 김형미 관장입니다.

5·18 당시 공수부대원 8명에게 집단구타 당한 뒤 정신적 후유증을 앓다가 숨진 김형영 열사의 동생입니다.

김 관장은 4살 터울의 오빠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노래로 풀어냈습니다.

[김형미/고 김형영 열사 동생 : 우리가 함께 그 슬픔과 상처를 감싸고 위로하며 희망 가득한 5월을 만들어 가야 할 때입니다.]

올해도 아들을 찾아온 백발의 노모.

80년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던 착한 아들을 생각하며 한 맺힌 설움을 토해냅니다.

[구선악/고 이정연 열사 어머니 : 우리 바람이란 게 그 증인, 증인이 나와서 솔직히 이렇게 이렇게 했다고 하는 그 바람 그뿐이여.]

5·18 민주묘지에는 이번 달 들어 10만 명 넘는 참배객이 다녀갔습니다.

완전한 진상규명을 통해 더 이상 5·18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향우/경북 경주시 위덕대 4학년 : 시간이 지나도 5·18 정신을 기억하고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교육들이나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희생자들이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지 42년.

하지만 유족들은 아직 가슴의 응어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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