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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육원 소년의 죽음…"우리는 5백만원 쥐고 떠밀리듯 어른이 됐어요"|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1-01-16 20:19 수정 2021-01-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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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코로나와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 속에 조금은 '덜' 관심 받은 어린 학생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갓난 아기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이야기입니다. 매년 2500명 넘는 아이들이 만 18세가 되면 자립지원금 500만 원 등을 손에 쥐고 떠밀리듯 세상에 나옵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호가 끝났다'고 해서, '보호 종료 아동'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10명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연속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연말, 보육원에서 자라온 한 소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약 1년 뒤면 보육원에서 나가기 때문에, 홀로서기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꿈많던 소년의 죽음.

보육원의 한 수녀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퇴소를 앞둔 불안감 때문이 전혀 아니고, 원래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년 말고는 그 누구도 죽음의 이유를 함부로 단정할 수 없을 겁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보호 종료 아동'들은 소년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다들 다 이해해요. 저희는 그냥 '아, 많이 힘들었겠구나'하는 마음…]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는, 이런 죽음이 특별하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얘기를) 좀 많이 자주 들어요. 저는 한 달에 3명 정도. (꼬박꼬박 들어요?) 네. 안 들을 때도 있는데. 거의 들어요.]

[자해나 이런 걸 좀 많이 했다는… 죽고 싶다, 이런 말은 많이 오고 가는데. 보호 종료가 되고 나서는 좀 많이 들리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보호 종료 아동'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살림살이가 적은 집.

밥그릇도 두 개뿐인 집 한가운데에 요 두 개가 깔려 있습니다.

작은 요는 한때 누군가에게 버려졌던, 지금은 서로의 유일한 가족이 된 반려견의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성함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시설에도) 부모님의 친구분이 데리고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새해 벽두부터 한 일은 '기초 생활 수급자' 신청이었습니다.

[기초수급자 신청하려고 어제 왔다가 서류 필요하다고 해가지고 그거 떼 왔거든요.]

보육원을 나오고 3년 동안은 매달 자립 수당 30만 원이 나오지만, 이 돈으로는 월세조차 못 냅니다.

그래서 오늘도 '택배 상하차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온 애들은 진짜 적은 돈이거든요. 그 5백만원이. 아무도 없고 제 힘으로 알아서 다 해야 되는데, 좀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 친구는 아버지에게 맞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보육원에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폭력은 그곳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많이 맞았거든요. 거기 있는 선생님한테.]

보육원을 나가고 싶다가도, 막상 정말 나가야 할 때가 되니 막막함이 몰려왔습니다.

[전부 다 같은 얘기해요. 다 나가고 싶다고. (나오고 나면 또 막막하잖아 근데) 네. (그럼 되게 갈 데가 없다고 많이 느껴지겠다) 그래서 우울증이 많이 걸리죠.]

홀로서기는 혹독했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 손 잡고 자연스레 따라가 봤을 시장도, 처음이었습니다.

낮 시간을 쪼개 볼일을 보고 나면, 오후부터 새벽까지는 콜센터에서 일합니다.

이 친구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어서 3천만 원을 모아,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둬야 했던 대학으로 돌아가 간호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대학교 다니다가 그냥 콜센터로 바로 들어간 거여 가지고 3년 동안 1백만 원씩이라도, 그러면 3천만 원 되잖아요.]

보육원에 오게 된 사정은 모두 달랐지만,

[아빠가 피해망상 장애가, 약간 성쪽으로… 아빠가 자고 계실 때 동생을 데리고 도망쳤어요.]

홀로서야 할 때의 막막함은 같았습니다.

[쓸쓸했죠. 허무하고… 매시간 시간이 허무하더라고요.]

세상에 나오자마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지만, 자신들은 그래도 '잘 풀린 축'에 속한다고 합니다.

[취직을 한 것 자체가 제일 좀 잘 된 케이스기는 해요. (안 좋게는) 구치소나 이런 데 여러 번 왔다 갔다 하고…]

어른이 되기엔 아직은 어린 '열여덟 어른들'.

인터뷰의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모두 '진짜 홀로 설 수 있도록' 손을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보호 종료되는) 나이라든가 그런 기준을 좀 더 높였으면 좋겠어요. (퇴소 후) 지원을 해주는 그 연수(기존 3년)도 더 올렸으면 좋겠고, 그래야 좀 그런 게 줄어들지 않을까요?]

(영상디자인 : 신하림·조성혜 / 영상그래픽 임재범 / 연출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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