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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항소심 결심공판...양쪽 모두 끌고 온 '법관 독립'

입력 2021-06-2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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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의 독립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의 법철학자 야스퍼스는 판사의 독립은 권리가 아닌 의무라고 했다"

오늘(2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부장판사 박연욱) 심리로 열린 임성근 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직권남용 혐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사와 변호인이 각각 한 말입니다. 양측 모두 법관의 독립을 강조하고 있는데, 쓰임새는 좀 다릅니다.

임 전 부장판사가 지난 2014년부터 2년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재판에 개입했다며 기소된 건 총 세 가지 사건입니다.
먼저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보도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허위사실이 입증됐다'고 재판 중간에 정리해달라고 하거나, 선고 구술본에 이를 포함하라고 말한 것 등입니다. 검찰은 임 전 부장판사가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다고 봤습니다.
또 프로야구 선수들의 원정도박 약식 사건을 공판 절차로 회부하려던 판사에게 "주변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라"는 취지로 말해 다시 약식명령을 발령하게 한 혐의도 있습니다. 민변 변호사들이 체포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해당 재판부에 이미 등록된 판결문을 지적하며 "톤다운 하라"는 언급을 한 혐의도 받습니다.

'재판 개입' 항소심 재판 출석하는 임성근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21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21.6.21     yato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재판 개입' 항소심 재판 출석하는 임성근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21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21.6.21 yato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가 위헌적인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법리적으로 직권남용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무죄로 판결했습니다.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으므로, 이를 남용했다고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용할 직권이 없다'는 논리이죠.

임 전 부장판사 측이 항소심에서도 '재판 독립'을 강조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변호인이 카를 야스퍼스의 말을 빌려 재판 독립은 '의무'라고 강조한 건, 형사수석부장판사가 개별 재판에 관여할 수 없으니 직권남용죄의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또 임 전 부장판사의 언급 이후에 판사들이 각자 독립적으로 판단한 것이라서, 해당 판사들의 권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권리 방해' 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함' 역시 직권남용죄의 구성 요건입니다.

검찰은 "법관 독립을 해친 행위에 대해, 도리어 법관 독립을 이유로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고 1심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아무리 위법한 행위를 하더라도, 직무상 권한이 인정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통제할 수단을 잃게 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또 무엇보다 형사수석부장판사는 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위임받아 각종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라고 주장했습니다.

'남용할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이 거론됐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판사가 재판을 현저히 지연시키는 등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재판 독립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면 행정권자가 이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사법행정권자의 '지적 사무 권한'을 인정하고, 이것이 남용되는 상황도 인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해당 재판부가 '직업적으로 충분히 단련되지 않은 판사'를 상정한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판사가 임관한 뒤 재판부에서 '묘'를 배워 나가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관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사법행정권자가 지적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법행정권자에게 '사무 권한'이 없다는 주장의 연장선입니다.
반면 검찰은 막말 재판과 편파진행 등 재판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버젓이 행해지더라도 법관 독립을 이유로 사법행정권자가 아무런 지적도 할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또 이 지적 권한이 남용돼 법관 개개인의 독립을 해하는 상황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국민 주권 원칙과 재판 독립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임 전 부장판사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1심 재판부가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판결로 국민을 실망하게 했다고도 했습니다. 사법농단 관련 사건들에 비슷한 논리로 무죄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제2의 사법농단으로 보일지 모른다'는 학계 경고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최후진술을 하며 "재판하던 이 법정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선후배 법관들에게 송구스럽다"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다만 "다른 판사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며 법관 개개인을 인신공격하는 일 등이 자주 일어나, 개별 법관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강구하던 상황이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오랜 친구이자 변호인인 윤근수 변호사도 "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온 품성이 한편으로 이 사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면서 당시 임 전 부장판사가 담당 판사들에게 조언했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 전 부장판사의 항소심 선고 기일은 오는 8월 12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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