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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전면광고 등장한 아이오닉…IONIQ 대신 IRONIC?

입력 2021-07-23 13:20 수정 2021-07-2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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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이낸셜타임스 23일자 지면 (자료: 기후솔루션)영국 파이낸셜타임스 23일자 지면 (자료: 기후솔루션)

오늘 한 국산차가 영국의 유력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한 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도입해 내놓은 최초의 전기차, '아이오닉(IONIQ) 5'입니다. 이 차를 필두로 현대차는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구성해 무공해차 판매 비중을 높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기도 했죠.

그런데, 지면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니 'IONIQ'이 아닌 다른 단어가 보입니다. 바로, 역설적이라는 의미의 'IRONIC'입니다. 전면 광고의 한 가운데에도, 사진 속 자동차의 번호판에도 마치 원래 로고였다는 듯이 이 단어가 적혀있습니다. 사진 속, 또 다른 숨은 메시지가 있을까 다시 사진을 살펴봅니다. 아이러닉(아이오닉) 뒤의 배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연기를 한껏 뿜어내는 굴뚝, 바로 석탄화력발전소의 모습입니다.

호주의 환경단체 '마켓 포시스(Market Forces)'가 FT에 게재한 전면 광고입니다. 현대건설이 일본의 전범기업 미쓰비시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것을 비판한 것이죠. 광고엔 "현대는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며 전기차를 출시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더러운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다"며 "이것이 아이러닉(IRONIC)"이라는 문구가 담겨있습니다.

마켓 포시스는 "이렇게 석탄발전소를 지으면서 지속가능성을 내세울 수 없다"며 "석탄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진심으로 기후를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건설과 현대건설의 최대 주주인 현대차를 함께 겨냥한 겁니다. 이번 광고에 대해 기후솔루션 윤세종 변호사는 "앞에선 ESG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뒤에선 석탄발전 사업을 수주하는 이중성을 보여왔다"며 "이후의 탈석탄 선언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면 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현대건설이 참여한 베트남의 광짝 1호기 사업은 1200MW급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사업입니다. 현대건설은 2018년, 일본 미쓰비시 상사, 베트남 CC1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2020년 여름, 경쟁 입찰에 나섰습니다. 이미 그린뉴딜이 추진되고, 탄소중립이 논의되던 시점입니다. 지난해 7월, 정부의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직접 보고대회에 등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린뉴딜을 주제로 비전을 제시한 거죠. 그러다 2021년 6월, 현대건설과 미쓰비시 등 컨소시엄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9500억 원 규모입니다. 이미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데 베트남에서도 추가로 사업을 수주한 셈입니다. 그 다음달인 7월, 정의선 회장은 서울에서 열린 P4G 정상회의에서도 기업의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했고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열린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특별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열린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특별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잇따른 석탄 사업 끝에 현대건설은 오늘 이사회를 열고 탈석탄 정책을 공개한다는 계획입니다. 정작 기존의 사업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무의미한 선언만 하는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지난해 한국전력공사 이사회와 판박이라 섭니다. 지난해 한전은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정책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투자금의 손실이 우려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베트남 건을 의결한 이사회에선 아이러니하게도 "향후 신규 해외 석탄사업을 지양한다"는 선언도 동시에 나왔고요. 처리할 것들은 다 처리한 후, 뒤늦게 '탈석탄 선언'만 하는 셈입니다.

한전의 이런 결정에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한전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것처럼 현대건설도 비슷한 위협에 노출됐습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금이 회수될 위기에 빠진 겁니다. 2017년부터 노르웨이는 강력한 탈석탄 금융을 실천하고 나섰습니다. 이미 한전에 투자했던 주식과 채권 등 1500억원 넘는 자금을 회수하기도 했고요. 이런 가운데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위원회는 이달 초, 현대건설을 '관찰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습니다. 환경을 파괴할 것으로 우려되는 '기업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겁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현대차그룹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규탄하는 전면광고가 게재됐다. (자료: 기후솔루션)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현대차그룹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규탄하는 전면광고가 게재됐다. (자료: 기후솔루션)

제아무리 현대자동차가 전기차와 수소차를 개발해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현대차그룹의 현대제철이 여전히 대량의 석탄을 때고, 현대건설이 해외 곳곳에 석탄발전소를 지어 올린다면 '무늬만 ESG'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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