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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안구단]런던 의사당보다 긴 '퀸 엘리자베스 항모'는 왜 한국에 온다할까?

입력 2021-03-22 16:52 수정 2021-03-2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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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온라인 기사 [외안구단]에서는 외교와 안보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알찬 취재력을 발휘해 '뉴스의 맥(脈)'을 짚어드립니다.


활주로만 축구장 3개를 합친 넓이에 길이는 280m에 달하는 배, 만재 배수량(함정이 운항 준비가 갖추어진 상태의 중량)이 6만 5천 톤에 달하는 '바다 위의 군사 도시' 지난 2017년 취역한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 이야기입니다. F-35B 스텔스 수직 이착륙기를 비롯해 중형 대잠수함 헬기, 공격헬기 등 6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습니다. 가로 길이만 따져보면 런던에 위치한 영국 국회의사당 보다 더 깁니다. 400㎞ 반경에서 1000대 규모의 선박과 항공기를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첨단 장거리 레이더를 장착한 이 항모를 만드는 데 약 31억 파운드, 우리 돈 4조 5천억 원이 들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가 윤곽을 드러낸 2017년 말, 영국 언론은 앞 다퉈 "한때 전 세계의 바다를 휘저었던 해양 제국, 영국 해군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2017년 12월 영국 남부 포츠머스 해군기지에서 열린 취역식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참석해 "영국 최고의 기술과 혁신을 구현한 기함"이라고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2017년 12월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취역식에 참석한 모습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2017년 12월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취역식에 참석한 모습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 올해 9월쯤 한국 해역 들를 듯
그런 퀸 엘리자베스가 오는 9월 한국 해역에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국 해군이 올해 하반기 일본 인근 해역에 퀸 엘리자베스를 포함한 항모 전단을 파견하기로 했는데, 비슷한 시기 한국을 거칠 수 있다는 겁니다. 앞서 일본의 교도통신은 "영국 항모 전단이 일본 난세이(南西)제도 주변을 포함한 서태평양에서 미군 및 일본 자위대와 연합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국방부 안팎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이 파견 기간 중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경로로 타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주한 영국 대사관의 무관이 국방부를 비공식 방문해 우리 측 당국자와 면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항모의 방한이 성사된다면 한국전쟁 이후 한국을 방문하는 첫 번째 영국 항모가 됩니다.

영국이 퀸 엘리자베스 항모의 한국 방문에 적극적인 것은 우리 해군의 경항모 건조 계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부와 해군은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하는 3만t급 선체의 경(輕)항공모함을 2030년 초반까지 국내 기술로 완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경항모를 지칭해 "미래 세대를 위한 '21세기 거북선'"이라고 지칭할 만큼 해군으로서는 가까운 미래 해상전력의 핵심으로 구상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영국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의 훈련 장면. 활주로의 넓이만 축구장 3개를 합친 것과 같다.영국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의 훈련 장면. 활주로의 넓이만 축구장 3개를 합친 것과 같다.



◇"항모 기술 수출 위해 한·영 비공식 대화" 보도...한국 정부는 선 그어
그러던 중 현지시각 21일, 영국에서 먼저 항모 기술 수출과 관련된 보도가 나왔습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 국제 통상부(DIT)가 한국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술 분야에 대해 한국 측과 비공식 대화를 시작했다"고 보도한 겁니다. 보도에 따르면 퀸 엘리자베스의 체계와 디자인을 한국에 제안했다고 합니다.

텔레그래프의 보도와 국내에서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협의는 항모 기술과 관련한 정부 간 직접 대화가 아닌 관련 업체 간의 협의로 보입니다. 퀸 엘리자베스의 설계 및 제작에 참여한 영국 탈레스, 밥콕, BAE시스템스 등 방산업체들이 한국 경항모의 개념설계를 맡은 현대중공업 측과 일부 협의를 한 겁니다. 방위사업청은 일단 "정부 간 비공식 대화가 시작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사실 영국 측은 우리나라의 경항모 도입 구상 초기부터 기술 수출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지난해 말엔 국내에서 이뤄진 경항모 관련 세미나에 주한 영국 대사관의 무관이 나와 이례적으로 자국의 항모 개발 사례 등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군 관계자는 "기술 이전이나 협력은 항모를 만들게 될 업체와의 이야기"라면서도 "경항모가 만들어지면 직접 운용하게 될 해군 입장에선 먼저 항모를 가진 국가의 기술을 선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해군이 지난 달 개최한 '경항공모함 세미나'에서 공개한 경항모 전투단 개념도해군이 지난 달 개최한 '경항공모함 세미나'에서 공개한 경항모 전투단 개념도

우리 군은 지난달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경항모 사업추진 기본전략'을 심의·의결하면서 "경항모 설계와 건조는 국내 기술로 추진한다"며 "2033년까지 전력화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설계와 건조를 국내 기술로 하기로 했지만, 항모 건조 경험이 없는 국내 업체로서는 항모를 보유한 군사 강국들의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특히 항모 건조의 핵심 기술은 1000도가 넘는 항공기 엔진 화염을 견딜 수 있는 갑판을 만드는 건데, 이번 영국 측의 기술 제안에서 이런 부분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퀸 엘리자베스의 강점으로 꼽히는 함정 내 무기 운반 및 처리 시스템, 항공기 승강기 등과 관련한 기술도 국내 업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아직 정부 간 공식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진 바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일단 사업의 첫발은 뗐지만 사업 타당성 조사 통과와 예산 확보라는 쉽지 않은 관문이 남은 상태입니다. 영국이 의욕을 보이는 항모 기술이전이 아직 갈 길 먼 경항모 사업에 '추진체'가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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