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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안전 무시한 기업 사장, 대형사고 나면 1년 이상 징역형

입력 2021-01-08 18:14 수정 2021-01-08 18:15

중대재해법 제정안 국회 통과…법인에도 50억원까지 벌금형
'중대재해시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등 예외 규정 많아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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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정안 국회 통과…법인에도 50억원까지 벌금형
'중대재해시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등 예외 규정 많아 실효성 의문

노동자 안전 무시한 기업 사장, 대형사고 나면 1년 이상 징역형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지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 대표이사도 안전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나면 징역 1년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이하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은 공포 이후 1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 중대 재해 발생하면 대표이사도 처벌 가능

중대재해법은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경영 책임자, 법인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등 기존 법규로는 중대 재해가 발생해도 중간 관리자 등을 처벌하는 데 그치고 그마저도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인 탓에 후진국형 대형 산재가 끊이지 않는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4월 무려 38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계기로 중대재해법 제정 여론이 급속히 확산했다.

중대재해법상 중대 재해는 '중대 산업재해'와 '중대 시민재해'로 나뉘는데 중대 산재는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재해와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인 재해 등을 의미한다.

중대 산재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산재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법에 규정된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경영 책임자는 대표이사와 같이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나 안전 담당 이사 등을 가리킨다.

중대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외에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이나 기관도 주의·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최대 50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다.

또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이 고의나 중대 과실로 중대 재해를 낸 경우 사업주와 법인 등은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것이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안전 조치 의무 대상에는 실질적 관리 아래에 있는 하청 노동자도 포함된다. 하청 노동자가 중대 재해를 당할 경우 원청 사업주 등도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대 시민재해는 공중 이용시설과 공중 교통수단 등의 관리 부실로 발생한 것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재해와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인 재해 등을 의미한다.

중대 시민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안전 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중대 시민재해에도 양벌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된다.

◇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유예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이윤에 눈이 멀어 노동자 안전을 무시해 온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입법 과정에서 예외가 많이 만들어져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5인 미만 사업장을 중대 산업재해 처벌의 예외로 한 게 가장 큰 허점으로 꼽힌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 5인 미만 사업장은 123만곳이고 종사자 수도 333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모두 중대재해법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얘기다.

중대재해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이후 3년 동안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소규모 사업장은 산재 예방 인프라를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산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2019년 국내 제조업의 산재 사고 사망자 206명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64명(79.6%)에 달했다. 이 중 5인 미만 사업장도 42명(20.4%)이나 됐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돼도 당분간 산업 현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 시민재해의 경우 소상공인 사업장, 교육시설, 바닥 면적 합계가 1천㎡(약 302평) 이상인 다중이용업소 등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 재해에 대한 처벌 수위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대폭 낮아졌다.

당초 의원 발의안은 노동자 사망사고를 낸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대해 2년 이상의 징역이나 5억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징역형의 하한선을 1년으로 낮추고 벌금형은 하한선 대신 10억원의 상한선을 뒀다.

중대 재해를 낸 사업주와 법인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도 의원 발의안은 손해액의 5배를 하한선으로 규정했지만, 국회 심사를 거치면서 손해액의 5배가 상한선으로 바뀌었다.

중대 재해에 대한 처벌 대상인 경영 책임자에 안전 담당 이사를 포함한 법 규정도 허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 재해를 낸 기업의 대표이사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부실한 관리·감독 등으로 중대 재해를 야기한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의원 발의안 조항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삭제됐다.

건설공사 발주자를 처벌 대상에 포함한 조항도 빠졌다. 건설 현장의 중대 재해는 발주자의 무리한 공기 단축 요구에 따른 경우가 많아 발주자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안전 조치 의무 위반 전력 등이 있는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중대 재해를 낸 경우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형법 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 노사 모두 반발…산업 현장 안착 쉽지 않을 듯

중대재해법은 노사 양쪽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중대재해법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법'으로 규정하며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대다수의 중대 재해가 발생하는 작은 사업장의 현실을 무시한 법 제정"이라며 "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사업장을 쪼갠 '가짜 50인 미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고 사고 발생 시 기계적으로 중한 형벌을 부여하는 법률 제정에 대해 기업들은 공포감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을 항의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홍 의장은 중대재해법이 노동계 요구에서 후퇴한 데 대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법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합의 처리가 돼야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고 사회적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어 그렇게 된 면이 있다"며 시행령 등을 통한 보완 대책을 약속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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