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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조형물 앞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외친 어머니

입력 2021-04-28 19:16 수정 2021-04-28 22:19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제막식, 김미숙 이사장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에 기폭제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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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제막식, 김미숙 이사장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에 기폭제 됐으면"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이 조형물을 어루만지고 있다.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이 조형물을 어루만지고 있다.
세계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인 28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정문에서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에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인 〈김용균 재단〉 김미숙 이사장을 비롯해 민주노총 이태의 노동 안전보건위원장,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동료 노동자,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다. 하얀 천으로 씌워졌던 김용균 추모조형물은 참가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긴 끈을 당기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 참가자들이 조형물을 둘러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 참가자들이 조형물을 둘러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모조형물은 '죽음의 진상을 밝히자'는 시민들의 마음을 담은 쪽지들 위에 서 있다. 조형물 아래에는 '일하다 아프지 않게, 죽지 않게!'라는 바람이 담겼다. “2018.12.10.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은 위험이 외주화된 죽음으로 산안법 개정,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의 마중물이 되었다. 노동자의 존엄과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김용균을 기억할 것이다”라는 문구도 함께 새겨져 있다.

제막식에서 김미숙 이사장은 “김용균 형상이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데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이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이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다음은 김미숙 이사장의 발언 전문이다.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4월 말 5월이 곧 다가옵니다. 만물이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지만 저는 아직 2년 전 아들 사고 때 충격으로 그때 그 시간에 머물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없이 보고 싶은 내 아들 용균이는 요즘은 꿈에서조차 잘 볼 수 없어서 마음이 자꾸만 무너져 내립니다. 무엇을 해도 허망하고 행복은 이제 남들만 누릴 수 있는, 저와는 거리가 먼 세상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저기 보이는 아들이 일했던 현장은 조금의 실수도 용납지 않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위험천만한 현장이었습니다. 원하청이 분리되면서 안전은 아무도 책임이 없도록 만든 구조 속에 처참하게 스러진 아들에게 비정규라는 족쇄를 채워놓고 공공기관조차 사람 성을 거부당했습니다. 그저 생산을 위해 쓰인 노예나 부품처럼…. 훼손돼 없어지면 갈아 끼우는, 존재 자체가 가치가 없는, 하찮은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만큼은 아들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분신이었습니다. 부당한 죽임을 당한 걸 알게 되면서 저는 땅을 치고 그동안 만연한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 이런 세상을 원망하고, 못나 빠진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몸서리치도록 끊임없이 밀려오는 깊은 아픔은, 이제는 아들 대신 제 곁에서 평생 함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

지난 2년 반을 돌이켜 봤습니다. 아들을 잃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으로 더 이상은 아들과 같은 헛된 죽음을 막겠다고 쉬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여러 동지의 도움으로 정말 쉽지 않게 합의를 끌어냈고 진상규명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통과시킨, 용균이를 기만한 산안법은 또 다른 죽음을 전혀 막지 못했기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서 기업주들의 철면피한 살인 만행을 강한 처벌로서 잘못함을 인정케 하고 재발방지대책을 기업 스스로 만들게끔 법 통과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용균 재단을 만들어 용균이가 들었던 피켓의 의미를 받아안고 그 길을 향해 산재 피해자 가족과 함께 손잡고 꿋꿋하게 달려왔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의 성과도 컸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큰 성과는 국민이 뭉쳐서 법 제정까지 실행시켰고 언론도 계속해서 안전 경각심을 갖도록 많은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고, 사회 곳곳에서 안전망을 만들고 있음이 눈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한시라도 마음을 놓아선 안 되고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서부발전 안에 용균이 조형물을 세우자고 사측과 합의한 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늦게나마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랫말처럼 이제라도 회사 정문 앞에 세울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용균이 형상을 여기에 세우는 이유는 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 또 다른 용균 이들과 후세들이 일하면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누리며, 누구나 행복을 꿈꿀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회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아들의 죽음을 매번 되뇌며 목소리 내는 만큼 더 힘듦이 가중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저처럼 제 아들처럼,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길이, 갈 길이 멀고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안전과 권리와 사람의 가치가 보장될 때까지 꾸준히 함께 노력하고 함께 손잡고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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