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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너의 매력의 끝은 어디?"…45세 발레리나 김주원의 고백

입력 2022-05-17 18:02 수정 2022-05-18 19:24

길어서 '금쪽이', 둘째 발가락에게 건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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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서 '금쪽이', 둘째 발가락에게 건네는 이야기

"아직도 토슈즈를 보면 너무 예뻐요. 그럼 전 또 사랑에 빠지죠"

올해로 마흔다섯이 된 발레리나는 발에 맞게 꿰매놓은 토슈즈만 봐도 다시 사랑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발레, 너의 매력의 끝은 어딘가' 감탄하면서도, 매일 아침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고민한다는 김주원. 데뷔 25주년을 맞은 발레리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레베랑스'로 다음달 예술의전당에서 관객들을 만납니다.

발레리나 김주원 (사진=EMK엔터테인먼트)발레리나 김주원 (사진=EMK엔터테인먼트)
오늘(17일) 기자회견에서 25년간의 춤 인생을 돌아본 김주원은 눈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더 열심히 좋은 무대를 만들고, 관객들에게 정말 좋은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며 '행복의 눈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김주원과의 일문일답.

Q. 김주원에게 25주년은 어떤 의미인가
"45살에 춤을 추는 발레리나는 아직 저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느새 무대에서 내려가야 하는 시기를 생각하면서 춤추게 되더라고요. 매번 올렸던 작품들이 '이별 작품'들이 됐어요. 몇 년 전 '지젤'이 그랬고, 또 몇 년 전 '돈키호테'가 마지막일 줄 몰랐지만, 마지막이 됐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아, 이 무대가 나에게 마지막일 수 있겠구나,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해왔어요. 25주년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Q. 제목이 '레베랑스'인데
"'레베랑스'는 인사란 뜻인데요. 발레는 예의 바른 예술이잖아요. 작품 안에 레베랑스가 수도 없이 나와요. 솔로하고 인사하고, 파트너랑 인사하고, 1막 하고 인사하고. 한 작품에서 수십 번 인사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인사하는 순간이 정말 감사한 순간이었구나' 느꼈어요. 레베랑스는 항상 박수와 함께하잖아요. 그 박수가 얼마나 저를 깊이 있고 좋은 예술가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는지 느꼈던 것 같아요. 관객들뿐 아니라 제 인생 모든 분께 레베랑스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제목을 이렇게 했어요."

Q. 25년 전 데뷔 때를 돌아본다면
"1998년도 '해적'으로 데뷔를 했어요. 그때 기억이 아직도 너무 선명한데요. 스트레스 골절이라고, 발등에 금이 간 상태로 데뷔 무대를 치렀어요. 결국 전 회차 공연을 못 하고, 2회밖에 공연을 못 했어요. 다친 것도 아닌데,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금이 갔어요. 처음 데뷔부터 발등에 마취 주사를 맞고 공연했던 거죠. 프로 발레리나는 연습만 많이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컨디션 관리까지 해야 하는구나 느꼈어요.

Q. 김주원에게 발레는
"전 발레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어릴 때 상당한 '금쪽이'였어요. 너무 예민하고 강박이 심하고, 사는 게 힘든 아이였어요. 세상 모든 것에 자극을 받는 힘든 아이였는데 발레 시작하면서 그런 게 싹 다 없어졌어요. 오은영 박사님을 만났는데 '그 강박이 다 발레로 갔네요'라고 했어요. 그런 제 강박이나 예민함이 춤으로 집중되면서 전 정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춤은 저를 살린 은인이기도 해요."

김주원의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 '레베랑스' (사진=EMK엔터테인먼트)김주원의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 '레베랑스' (사진=EMK엔터테인먼트)
Q. 어떤 철학과 세계관으로 무대를 만들고 있나
"아주 거창한 세계관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거 같아요. 더 많은 걸 마음속에 지니고 싶어하는 거 같고요. 아주 어릴 때 부산에서 살았는데 백사장에 누워서 하늘을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2017년 디스크가 터지면서 걷는 운동을 하다가 벤치에 누워서 하늘을 봤는데,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하늘 본 것 같은 거예요.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주변을 좀 더 둘러보고 많은 것들을 가슴에 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으로서도 예술가로서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만드는 작품들 안에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나게 되고, 우주적인 이야기도 하게 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담기게 되더라고요."

Q. 앞으로 김주원은 어떤 춤을 추게 될까
"전 '하루살이' 같은 사람인데요, 그냥 저한테 주어진 것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지금 제 상황과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춤을 만들어 가다 보면 어떤 순간엔 새로운 모습이 나올 수도 있고, 어느 순간엔 무대에 내려갈 시기도 될 것 같고요. 모든 걸 자연스레 잘 순응하면서 받아들이면서 잘 흘러가 보려고 해요. 꼭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드려야지 보다는 순간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Q. 20대, 30대, 40대 지나오며 차이점이 있었다면
"차이 엄청 느끼고요. 20대 땐 제가 운동을 안 했어요. 30대는 30분 정도 운동을 했어요. 30대 후반 40대부터는 새벽 5시 반~6시 일어나서 3시간 반 운동을 해야만 토슈즈를 신을 수 있어요. 일주일에 서너번은 1시간 반에서 2시간을 걸어 심폐 상태를 체크해야 하고요. 체력적으로 정말 많이 다르고 부상 회복도 훨씬 오래 걸리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 별로 없어요. 옛날에 '스파르타쿠스' 초연할 때, 유리 그리고로비치 선생님이 '발레는 젊음의 예술이야, 하하하' 하셨는데 그땐 뭔지 몰랐는데 클래식 발레는 젊음의 예술이란 게 이젠 뭔지 알겠어요. 기능적으로 그걸 보여줄 수 있는 나이는 정말 한정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감정적으로는 20대 때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30대에 느꼈고, 30대 때는 고민해 본 적 없는 디테일이 40대엔 느껴져요. 호주 공연 갔을 때 안숙선 선생님이 하루종일 소리를 내는데 그 자체로 감동이더라고요. 나무 숲길 걸을 때 그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예술이 되고, 무대에선 그 가치대로 아름답고. 나도 선생님 정도 나이에 춤을 추면 저렇게 어느 순간에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몸짓을 할 수 있을 텐데 발레는 그게 왜 안될까 되게 속상해했던 적이 있어요. 제 무대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인생 동안은 그런 춤을 최선을 다해 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20대 30대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로 최선을 다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발레리나 김주원 (사진=EMK엔터테인먼트)발레리나 김주원 (사진=EMK엔터테인먼트)
Q. 발레를 오래 하기 위한 방법이 있는지
"춤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느냐가 저한텐 너무 중요해졌어요. 제가 발레단을 나와서 예술감독으로 올린 작품들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요. 오래 춤을 추는 건 기능적 관리도 중요하지만, 생각의 흐름이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고 의지가 있으면 되는 거 같아요. 전 아직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무대에서 관객분들에게 하고 싶은 거 같아요. 욕심쟁이인 것 같아요."

Q. 둘째 발가락이 길어서 고생 많이 했다는데, 둘째 발가락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할 말이 많아요, 둘째 발가락에게는. 그 아이 때문에 참 많은 부상을 안고 살았고, 지금 제가 가진 부상들도 그런 조그만 몸의 구조에서 파생된 아픔들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너무 사랑해요. 그 둘째 발가락 덕분에 저는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춤을 추고 있는 거거든요. 제 부상과 부족함을 위해서 더 열심히 춤추고 더 많이 보완하고요. 예쁘지 않은 제 발을 발레에 맞게 부러뜨리고 꺾고, 예쁜 발을 가진 발레리나 보며 혼자 집에서 밤새 울면서 발등에 뭘 올리고 자고 그랬던 과정들을 겪은 두 번째 발가락이고요. 지금은 너무 사랑하고 소중한 발가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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