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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갈등 골 깊어지는 공수처-검찰...협의체는 첫 회의 이후 일정도 못 잡아

입력 2021-05-06 15:26 수정 2021-05-06 16:12

공수처, '조건부 이첩' 내용 담은 '사건사무처리규칙' 발표
대검 "법적 근거 없다" 비판
공수처-대검 협의 도중 '사건사무처리규칙' 발표 나와
공·검·경 협의체는 첫 회의 이후 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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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조건부 이첩' 내용 담은 '사건사무처리규칙' 발표
대검 "법적 근거 없다" 비판
공수처-대검 협의 도중 '사건사무처리규칙' 발표 나와
공·검·경 협의체는 첫 회의 이후 공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가 지난 4일 관보를 통해 '사건사무규칙'을 발표했습니다. 검찰이 그간 반발해온 '조건부 이첩' 내용도 담겼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한 후에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조금 더 취재를 해보니 갈등의 골은 좀 더 깊고, 해결 방법도 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4일 공수처의 사건사무규칙 발표 전 공수처와 대검은 협의를 진행 중이었다고 합니다. 대검이 공수처에 사건사무규칙 내용과 관련해 의견을 내고 "6일까지 회신을 달라"고 했지만, 회신 전 공수처는 이 규칙을 먼저 공포했습니다.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함께 꾸린 공·검·경 협의체도 있지만 지난 3월 29일 첫 회의 이후 두 번째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어 당분간 이 규칙을 둘러싼 수사기관 간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사무규칙 위반 시 제재규정 없어"

 
김진욱 공수처장이 3일 오전 과천정부청사 내 공수처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진욱 공수처장이 3일 오전 과천정부청사 내 공수처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 및 검찰에서는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이 "대외적 구속력이 없어 다른 기관이 이를 따를 의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은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 이첩을 요구할 권리', '다른 기관에 수사절차를 중지해줄 것을 요구할 권리', '수사 완료 후 사건 이첩을 요구할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론 내부 지침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다른 수사기관에 대한 공수처의 권한을 정의하고 있는 겁니다.

검찰과 경찰의 경우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라 수사의 절차와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률보단 구속력이 약하지만,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상호 기관에 대한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은 입법과정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려던 초기 논의와 달리 "공수처의 제도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수사처 규칙'으로 수정해 의결됐습니다. 공수처는 이런 과정을 근거로 외형은 규칙이지만 성질은 "대통령령에 준하는 효력을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내부 지침에 불과한 사건사무규칙이 다른 기관에 강제성을 가질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공수처도 어느 정도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어제(5일) JTBC의 취재 요청에 "사건사무규칙 위반 자체에 대한 제재 규정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공수처와 다른 수사기관들이 사건 이첩을 두고 신경전을 반복할 가능성은 더 커졌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수원지검은 "수사를 완료하고 사건을 송치하라"는 공수처 요구를 따르지 않은 채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당시 김진욱 공수처장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음을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사무규칙을 통해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갖는 여러 권한이 명문화됐지만 사실상 효력이 없어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수사기관들이 불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기소권 없는 불기소권

또 하나의 쟁점은 바로 공수처의 '불기소 결정권'입니다. 공수처는 대통령, 국회의장 및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등에 대한 범죄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사건 역시 두 부류로 나뉩니다. 공수처에 공소제기권 없이 수사권만 있는 사건과 수사권과 공소제기권이 모두 있는 사건입니다. 공수처는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제기권까지 갖지만, 이외는 수사권만 가집니다.

그러나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은 제28조 제1항을 통해 수사권만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도 "수사 결과 불기소하는 경우 (중략) 관계 서류 및 증거물을 첨부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에게 송부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기소권이 없어도 '불기소 결정'을 할 수 있고, 그럴 경우 해당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라는 겁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기소권 없는 불기소권은 있을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일각에선 이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해석해 올해부터 경찰에 보장된 '수사종결권'과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경찰의 수사종결권한에 준하는 성격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 대해 공수처가 불기소 결정을 하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해 수사 또는 기소권에 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제막식에서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준비단장(왼쪽부터),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제막식에서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준비단장(왼쪽부터),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수처 내부 지침이 공포됐지만 다른 수사기관들이 이 절차를 곧바로 준수해 움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검 역시 추가 협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함께 꾸린 협의체는 지난 3월 이후 두 번째 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공수처와 검찰은 서로 입장문을 내며 갈등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수사는 국민의 인권과 직접 연결됩니다. 수사기관 간 혼선은 결국 그대로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수처와 검찰은 어떤 방법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틈이 메워지지 않는다면 여야 정치권의 적극적인 입법도 뒤따라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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