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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보다 더 힘들다"는 치료감호소...법원 "발달장애 특성 고려해 수용해야"

입력 2021-12-1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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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6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주관 기자회견.2021년 12월 16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주관 기자회견.

심신 장애가 있거나 정신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면, 우리 법은 이 사람을 치료감호소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감호 기간은 최장 15년으로만 정해져 있는 데다 종료 심사를 따로 받아야 해서, 법원에서 선고한 형기보다 더 오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치료감호소로 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범의 위험성'과 '치료의 필요성'이 입증돼야 합니다.


◇"치료보다 교육이 필요한데 치료감호소로?"
그런데 발달 장애인의 경우는 어떨까요? 전문가들은 지적, 자폐성 장애와 같은 발달 장애는 치료가 불가능한 만큼, 재교육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발달 장애인이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무조건 치료감호소에 가둘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치료감호소에서 정말 치료받을 수 있는지, 치료의 필요성이 있는지 엄격하게 살펴보자는 이야깁니다.

지적장애인 황 모 씨는 지난 2009년 성범죄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치료감호소에서 11년 4개월 동안 지내야 했습니다. 재범 위험성도 낮게 평가됐고 의료진도 치료감호를 종료해도 된다고 했는데 심사에서 자꾸 탈락했습니다. 황 씨 측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끝에 겨우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특히 황 씨 가족들은 황 씨가 치료감호소에서 어떤 약을 먹었는지 등도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지적장애 치료와는 큰 관련이 없는 우울증약을 먹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황 씨 측은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함께 소송에 나선 자폐성 장애인 이 모 씨는 지난 2019년 준강도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현재까지 치료감호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차라리 교도소를 보내달라고 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습니다. 체중이 급격하게 빠지고, 자폐성장애 치료와 상관없는 약을 먹어 눈이 돌아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겁니다.

지난해 7월, 치료감호소에 있는 이 씨가 변호인을 접견한 음성을 들어봤습니다. 이 씨는 6개월마다 심사를 받는 것, 또 심사를 받은 후에도 나갈 수 있을지 막연히 기대해야 하는 현실이 힘들다며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자신이 무슨 약을 먹는지도 잘 모르는 데다가 치료감호 기간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부실 심사 끝내야"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건 '졸속 심사'입니다. 6개월마다 치료감호심의위원회의 종료 심사가 이뤄지지만, 위원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건수가 올라오다 보니 충실한 심사가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는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적한 내용입니다.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 올라가기도 전에, 감호소 자체 심사부터 통과해야 하는 것도 '졸속 심사'의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치료감호소에서 치료 내용을 결정하자며 만든 기구인 '진료심의위원회'가 사실상 1차 종료 심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는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치료감호소의 심사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면담보고서나 정신감정서도 없이 형식적인 심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치료감호소가 자체적으로 구성한 위원회는 위원 자격도 정해져 있는 게 없는데, 이들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법에서 정한 치료감호심의위원회 테이블에 겨우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에서 발달 장애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다 보니, 치료가 불가능한 발달 장애에 대해서도 '치료의 필요성'이 있다는 심사 결과가 나온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입니다.


◇법원도 "발달 장애 특성 고려하라"
이 씨 측은 "치료감호 종료 심사를 할 땐 발달 장애 특성을 고려해달라"며 법원에 임시조치 신청을 냈습니다. 이에 서울고법 25-3부(백강진·박형남·김용석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조정 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발달 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주치의가 직접 면담해 재범 위험성과 치료 필요성을 살펴보라는 겁니다. 법무부도 어제(15일) 이 권고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변호인단은 법무부가 이 씨 사건뿐 아니라 모든 발달 장애인에 대해 제대로 된 심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 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법무부가 이번 권고 결정에 동의하는 것만으로 위법하고 부실한 심사를 덮으려고 하지 말고, 관련 행정규칙을 개정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소장이 자체적으로 구성하는 진료심의위원회보다, 법에서 정한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서 제대로 충실하게 심사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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