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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하고 싶은대로 다 하겠다" …中영화 '장진호'의 노림수

입력 2021-12-04 07:00 수정 2021-12-05 18:06

中체제선전영화 공전의 히트
영화 관련 역대 기록들 제껴

장진호는 미ㆍ중 대결의 단층선
영화 장진호로 도광양회 종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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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체제선전영화 공전의 히트
영화 관련 역대 기록들 제껴

장진호는 미ㆍ중 대결의 단층선
영화 장진호로 도광양회 종지부

장진호 전투에 투입된 미 제1해병사단 병사. 〈사진=리버밴드닷컴 캡처〉장진호 전투에 투입된 미 제1해병사단 병사. 〈사진=리버밴드닷컴 캡처〉
중국의 체제 선전 영화 '장진호'가 57억 위안 선을 뚫었습니다. 역대 중국영화 흥행 1위 고지를 밟았다는군요. 직전 흥행 1위인 '특수부대 전랑2(56억9000만 위안)'를 이번 주 제쳤다고 합니다.


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
영화 '장진호'는 어떤 영화일까요. 간단히 정리하고 이 영화와 흥행이 이 시점에서 어떤 함의를 던져주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6ㆍ25 영화 '장진호(長津湖)'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죠. 스케일이 한 가닥합니다. 중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2300억원)와 최대 인원(연인원 7만명)이 투입됐습니다.

이런 스케일과 창당 기념 목적에 맞게 연출진도 화려합니다. 드라마에 능한 첸카이거(영화 패왕별희 연출) 감독과 활극 넘치는 황비홍 시리즈의 서극(중국명 쉬커) 감독, '국뽕' 농도 짙은 액션영화 '오페레이션 홍해' '오퍼레이션 메콩'을 찍은 린차오셴(林超?)감독이 각자가 잘 하는 분야별로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 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

영화 개봉은 10월 1일 국경절에 맞춰 했으니 어떤 성격의 영화인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민족주의 감성을 자극하는 '국뽕' 스타일의 체제 선전 영화 , 이른바 '주선율' 영화입니다.

아래 사진을 함께 보실까요.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이 영화 자막에 대고 거수 경례를 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목전에 두고 중공군의 기습으로 분루를 삼켜야했던 우리 입장에선 그로테스크하게 보입니다만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해 체제 선전용 영화를 만든 목적에서 보자면 효과 만점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바이두, 웨이보 캡처〉〈사진=바이두, 웨이보 캡처〉

〈사진=바이두, 웨이보 캡처〉〈사진=바이두, 웨이보 캡처〉
영화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12월 흥남철수를 다뤘습니다. 6ㆍ25 전쟁을 미국에 맞선 '정의의 전쟁'으로 보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공산당의 역사관이 투영됐습니다. 국군이나 인민군의 존재는 미미하고 철저히 미ㆍ중 대결 구도 속에서 찍었다는 전언이 무성합니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 제10군단 예하 제1해병사단의 병사 1만8000명이 사상당하는 등 미군으로선 기록적으로 심대한 희생을 치른 전투입니다. 11월 27일부터 2주일간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에서 미군 3만명과 중공군 7개 사단 12만명이 벌인 승부였습니다. 중공군은 미 제1해병사단을 완벽하게 포위해 섬멸을 노렸지만 미군은 영웅적 분전 끝에 이 포위망을 뚫고 철수 작전에 성공합니다.
 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 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

미군의 희생이 너무 컸기에 이 전투는 그간 미·중관계에서 언급을 꺼리는 금지선이자 누르면 비명이 터지는 급소였습니다. 물론 화력이 열세였던 중공군은 미군보다 몇 배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미군은 철수 과정에서 중공군 9병단의 주력을 전투 불가 상태로 만들어 9병단 지휘부는 3개월에 걸쳐 부대를 재편성하기 위해 후방으로 철수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중공군 제9병단이 서부전선의 제13병단을 증원할 수 있는 역량을 소멸시킴으로써 서부 전선의 미 제8군이 위기를 모면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하지만 희생 규모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 미국에서 한 때 이 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불렸던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군과 맞붙었던 상감령 전투는 전쟁이 끝나고 바로 영화로 나왔지만 장진호 전투는 이 희생 코드 때문에 중국 쪽에서 영화화가 어려웠던 겁니다. 도광양회 분위기 때문이었죠.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와 1978년 개혁ㆍ개방을 거치면서 중국은 철저하게 미국에 대해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스탠스를 취해왔습니다. 힘을 키우기 전까진 견제를 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낮은 자세와 처신을 주문한 대외 전략입니다. 사실상 미국 맞춤형 전략이었죠.

영화 '삼강령'은 '장진호'가 등장하기 전 반미노선을 상징하는 영화였습니다. 민족주의 코드와 미국과의 한판승부를 상징하는 대명사였습니다. 자국 관점에서 삼강령 전투를 미화하는 내용이 초등 교과서에 실립니다. 이른바 상감령 정신은 중국인들의 역사적 상상력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상감령 전투를 다룬 서적.  〈사진=바이두 백과〉상감령 전투를 다룬 서적. 〈사진=바이두 백과〉

상감령 전투는 6ㆍ25 당시 철원 지역에서 펼쳐진 고지전의 한 단면입니다. 고지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다 정전 시점에 중공군이 차지했습니다. 뺏고 뺏기는 지루한 소모전 끝에 간신히 최종 확보했기 때문에 승리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수많은 서사가 덧입혀졌습니다.
영화 '장진호'의 제작 규모와 흥행 기록을 보면 이제는 상감령의 자리를 장진호가 대체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습니다.

중국은 미국처럼 상시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국공내전 이후 6ㆍ25전쟁 참전과 79년 베트남 침공이 중국공산당이 주도적으로 벌인 전쟁입니다. 국지전으로 60년대 소련ㆍ인도와 벌인 국경분쟁까지, 이게 다입니다. 베트남 침공은 중국으로선 '잊혀진 전쟁'으로 불립니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입니다.

6ㆍ25전쟁은 다릅니다. 2010년 가을 당시 차기 권력이 유력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6ㆍ25 전쟁을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북한의 기습 남침과 중국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발언이었죠.

'정의'라는 가치까지 얹어 이 전쟁을 항미원조로 규정했습니다. 민심을 모으고 민족감정을 극대화하기에 그만입니다. 게다가 천안문 성루에서 마오쩌둥이 ”중국 인민이 일어섰다“고 선포한 뒤 미군과 맞붙는 한반도 전역(戰役)으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도 기막히게 맞아 떨어집니다.

미·중 밀월 기간 한·중관계와 남북관계에 훈풍이 일었습니다. 국제정치와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큰 지형 속에 있는 남북관계가 따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영화 장진호 포스터 〈사진=바이두 백과〉

이제 삭풍과 함께 미ㆍ중 관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구축한 상호 의존적 산업 공급망이 디커플링 중입니다. 시진핑 체제는 이런 현실을 기정사실화 하고 본격적으로 내부 단속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양국 관계의 금기인 장진호를 선전의 무대로 끌고 나온 것은 '이제 미국 눈치 볼 것 없다. 도광양회의 가면을 벗어던지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읽힙니다.

문제는 우립니다. 위계질서에 능한 중국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동북아 안보 지형의 한 축인 일본은 중국과 일대일로 맞서기엔 버겁습니다. 일본이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대 중국 포위망에 합류한 결정적 이유입니다.

중국은 뒷짐 지고 보고 있을까요. 한·미·일 삼각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공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위계를 앞세워 거칠게, 때로는 당근을 앞세워 야들야들하게 말입니다.

동맹 관계인 미국은 중국의 의도와 행동을 좌시하고 있을까요. 한미일 삼각동맹 결속에 박차를 가할 겁니다. 중국과 북한, 유엔군을 대표해 미국이 사인한 정전협정체제가 요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우리 정부 주도로 종전선언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만 문제 등으로 미ㆍ중 대결 구도가 가파르게 긴장 수위를 올리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종전선언을 논의할 국면인지 회의감이 듭니다. 나라 밖 안보 지형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내년 대선이 다가옵니다.

종속 변수를 쥐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최대한의 국익을 계산한 뒤 유리한 지위를 선점하는 데 국력을 모아야 합니다. 이 명제 앞에서 우리의 고민도 깊어집니다. 선택할 수 있어 괴로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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