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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오토바이 번호판? 취재하면 여기 다 망해요."

입력 2021-08-06 14:50 수정 2021-08-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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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 앞으로 온 제보 사진 한 장.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번호판이 없습니다. 제보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본다"며 출퇴근길이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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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 JTBC 밀착카메라팀은 그 현장으로 갔습니다.

관련 기사 :
[밀착카메라] 번호판 뗀 '무법 오토바이' 행렬…그 산업단지선 왜?(21.8.4)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18875)

■ 번호판 있는 것 찾기가 더 어렵다

제보자가 말한 곳은 전남의 한 국가산업단지 인근이었습니다. 그 근처로 갈수록 사진 속 오토바이처럼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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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차량 주위로 수시로 오토바이가 보였습니다. 거의 모두 번호판이 없었습니다. 번호판이 있는 오토바이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런 오토바이는 도로 위를, 좁은 농로를, 빗길을 쉼 없이 달렸습니다. 헬멧을 안 쓴 경우도 많았고, 도로 위에서 서로 대화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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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자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

누가 타는 건지 산업단지에 가서 물었습니다. A 회사의 건물 관리인은 "90% 이상이 무등록 오토바이"라며 "모두 외국인들이 탄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대부분 업체가 여름 휴가철이라 평소보다 덜 한데, 심할 때는 길목마다 4~50대가 쭉 서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 동네 다 그래요. 지금은 휴가 기간이라 차가 없어서 그렇지 한 4~50대 쭉 서 있다니까요. 아주 그렇게 세워 놓기도 힘들어요. 얼기설기 볼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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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만난 다른 회사들도 같은 설명을 했습니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는데, 면허가 없는 경우가 많아 번호판도 달지 않은 채 탄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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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룸촌 주차장 온통 '무등록' 오토바이

취재진은 외국인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산업단지에서 퇴근하던 외국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원룸촌으로 향했습니다. 5년 전 캄보디아에서 왔다는 한 노동자는 왜 번호판이 없냐고 묻는 기자에게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아요. 없어요. 지금 음식 사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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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촌에서 보이는 오토바이는 거의 모두 번호판이 없었습니다. 원룸 건물마다 오토바이가 많게는 20여대씩 주차가 돼 있었는데, 번호판이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근처 오토바이 매장에선 오토바이 등록을 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도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설명해주면 대부분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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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는 자동차와 달리 등록제가 아닌 신고제라 이용자가 직접 서류와 신분증을 지참해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는데, 우리말이 서툴러 절차를 이해 못 한다는 겁니다. 면허 시험을 보면 영암에서 나주까지 가야 하는 것도 외국인 입장에선 큰 난관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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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취재하면 여기 다 망해요"

취재진이 산업단지를 돌며 취재를 하는데,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습니다. 창문을 연 운전자는 "아침에 보면 오토바이가 굉장히 많이 가는 데 다 넘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근데 그런 거 취재하면 안 돼요. 취재해버리면 공단 망하는 거야. 불법 외국인들이 반이 넘어버리니까. 지금 10명 중 2명만 합법, 나머지는 다 불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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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중 상당수가 불법체류자라 다들 알면서도 넘어간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C 회사 관계자는 "산업단지에 불법체류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거친 표면을 다듬는 '사상작업'처럼 고된 업무는 주로 외국인노동자들이 한다고도 설명했습니다.

험한 업무여도 "시간당 5천원 더 준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돈을 벌러 왔기 때문에 무조건 온다"는 겁니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출입국이 제한되자, 새로운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을 수 없어 이미 비자가 만료된 기존 외국인 노동자들이 계속 머물며 일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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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가 없는데 번호판 어떻게 만들어요?"

11년 전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한 외국인노동자는, 왜 번호판이 없는지 묻는 취재진에게 되물었습니다.

"지금 비자 없어요. 다 끝났어요. 이거 번호 없어요. 어떻게 만들어요? 비자 없으니까 안 물어봐요. 어떻게 누구한테 물어봐요. 우리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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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6월 기준 국내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은 39만 1471명으로, 전체 외국인 중 차지하는 비율은 19.8%입니다. 최근 5년간 (2016년~2020년) 불법체류 외국인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 경찰 "수시로 단속…불법 체류자도 적발"

경찰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군청과 함께 월 1회 단속을 하고, 순찰 근무 중에도 수시로 단속한다고 했습니다. 무면허 불법체류자는 적발하면 바로 출입국관리소에 인계하는데, 올해는 지금까지 21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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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곳곳엔 외국인들의 무등록,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을 단속한다는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무면허 운전은 3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무등록 운전은 5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내용입니다. 현수막은 영어로도 적혀 있었습니다.

■ 마을 주민이 불안해하는 이유

마을 주민들은 철저하게 관리를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온 문제인데, 계속 방치돼왔다는 겁니다. 마을 이장 김성태 씨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사고가 나든 지역민들이 사고를 당하든 뒷 책임은 누가 지어주는 거예요? 번호판이 있으면 피해 보상이라도 받고 병원 치료라도 하겠지만, 사고가 나면 그 사람들은 그냥 도망갑니다. 내가 몇 번 봤어요. 강력히 단속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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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원룸촌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남성은 몇 번 피해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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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몇 번 있죠. 긁어놓고 도망가버리면 못 잡아요. 사고를 내면 차를 버리고 그냥 도망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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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미 모두가 아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방치됐던 건, 늘 그래왔다는 방심 때문일 겁니다. 그 사이 도로엔 질서가 사라져왔습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켜만 본다면, 규칙과 안전마저 흔들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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