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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카감' 갇혀 '떼카'…기자가 당해본 '사이버폭력'.gif

입력 2021-02-26 08:46 수정 2021-02-26 11:46

[기동취재]'카감' 갇혀 '떼카'…기자가 당해본 '사이버폭력'.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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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카감' 갇혀 '떼카'…기자가 당해본 '사이버폭력'.gif

"야, 카톡 바로 안 보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두고 봐."

이 앱을 실행하면 곧바로 민지라는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제 당신의 휴대전화는 사이버폭력을 당하는 피해자의 것이 됩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사이버 학교폭력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만든 '사이버폭력 백신'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앱 내용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사진=앱 화면 갈무리〉앱 내용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사진=앱 화면 갈무리〉

시작하기를 누르면 화면이 넘어가자마자 쉴 새 없이 카톡이 날아옵니다. 분명 가상 체험이지만, 마음이 조여옵니다. 카카오톡에 들어가면 아무 이유 없이 욕설이 쏟아집니다. '떼카(떼 지어 카톡)'입니다.

"XXX이 XX 나대고 XX이야"

당황스러운 나머지 나가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곧바로 다시 초대됐습니다. 더 심한 욕이 쏟아집니다. '카감(카톡 감옥)'이란 말이 실감 납니다. 언제 오냐는 엄마의 메시지에 답할 새도 없이 카카오톡을 껐습니다.

 
카톡방을 나가자 곧바로 다시 초대됐습니다. 엄마의 카톡은 눌러볼 새도 없었습니다. 〈영상=앱 화면 갈무리〉카톡방을 나가자 곧바로 다시 초대됐습니다. 엄마의 카톡은 눌러볼 새도 없었습니다. 〈영상=앱 화면 갈무리〉

제가 카카오톡 다음으로 많이 접속하는 SNS인 페이스북에 들어갔습니다. 실명은 쓰지 않았지만, 은근히 저를 욕하는 '저격 글'이 있습니다. 저를 찍은 영상과 사진도 올라와 있습니다. "얘 우리 학원 다닌다"라는 댓글이 달렸으니 저에 대한 나쁜 소문은 이제 학원으로도 퍼질지 모릅니다.

제 전화번호와 주소 같은 신상을 공개하며 "남자 완전 좋아한다"고 설명한 글도 있습니다. "너네 이러다 잡혀가면 어쩌려고"라며 가해자를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가해자들은 "반성문 몇 장 쓰면 끝난다"며 웃어넘깁니다.

 
걱정하는 댓글도 달렸지만, 그 대상은 제가 아니라 가해자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것마저 웃어넘겼습니다. 〈영상=앱 화면 갈무리〉걱정하는 댓글도 달렸지만, 그 대상은 제가 아니라 가해자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것마저 웃어넘겼습니다. 〈영상=앱 화면 갈무리〉

페이스북을 나오자 이번엔 문자 폭탄이 쏟아집니다. 30살 아저씨라고 밝힌 사람은 우리 집 앞에 와있다고 위협합니다. 동생이 다니는 중학교를 들먹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와중에 엄마에게서도 문자가 와 있습니다. 데이터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화를 내다가도 금방 제 걱정을 합니다. 답장은 하지 못했습니다.

 
쏟아지는 협박 문자 속 엄마의 문자도 와 있었습니다. 느낀 감정은 죄책감이었습니다. 〈사진=앱 화면 갈무리〉쏟아지는 협박 문자 속 엄마의 문자도 와 있었습니다. 느낀 감정은 죄책감이었습니다. 〈사진=앱 화면 갈무리〉

여기까지가 불과 5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체험한 사이버폭력입니다.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순간은 1초도 없었습니다. 내 편은 없어 보였습니다. 내 탓에 엄마와 동생까지 욕설을 듣는다 생각하니 '가족에게 못 할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사이버폭력은 '관계 폭력'이라고도 불립니다. 소통의 수단인 SNS에서 공격을 받은 피해자는 고립되기 쉽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2020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폭력 피해자들의 41.0%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고 응답했습니다. '친구들은 안다'는 47.4%, '가족이나 선생님이 안다'는 21.3%였습니다.

#증거 안 남는 '익명 앱'으로...진화하는 '사이버폭력 Ver. 2'

대화 내용을 저장해 증거로 삼으면 되니 신고가 더 쉽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버폭력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그새 진화하고 있습니다. 개인을 특정하지 않으면서 공격하는 '저격 글'을 올리고,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카카오톡이 아닌 텔레그램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익명 질문 앱 '에스크(Asked)'를 통한 사이버 폭력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사이버폭력도 증거 남기면 학폭위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다 안다"는 게 한 피해자 지원기관의 상담지원팀장의 말입니다.

진화하는 학교폭력에 비해 사회의 대응은 멈춰있습니다. 현행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만 금지하고 있습니다. SNS 등 온라인에서도 접근을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 20대 국회 시절 발의됐지만, 임기가 끝나며 흐지부지됐습니다. 전문가들이 대안으로 꼽는 '사이버 학교폭력법' 신설은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학폭 미투'를 10년 뒤에도 보지 않으려면, 학교폭력의 진화 속도를 빨리 따라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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