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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동물원 잔혹사...서울대공원엔 '호랑이굴'이 있다

입력 2023-10-01 10:01 수정 2023-10-0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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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JTBC 보도 캡처〉

〈사진 = JTBC 보도 캡처〉


지난달 6일 서울대공원에 살던 열 살 시베리아 호랑이 '수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물원 호랑이 수명이 15년인 걸 생각하면 길지 않은 생이었습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혈통과 개체 수를 철저히 관리합니다. 수호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2011년 5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당시 총리)이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순수 혈통' 호랑이 한 쌍을 서울대공원에 보냅니다. 2년 뒤 이 커플이 삼 남매를 낳습니다. 수호는 삼 남매 중 둘째였습니다.
 
2011년 5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시베리아 호랑이 한 쌍. '로스토프와 펜자'는 당시 푸틴 러시아 총리의 선물이었다. 〈사진 = 서울대공원 유튜브〉

2011년 5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시베리아 호랑이 한 쌍. '로스토프와 펜자'는 당시 푸틴 러시아 총리의 선물이었다. 〈사진 = 서울대공원 유튜브〉

 
공항을 떠나 서울대공원으로 가는 길. 포효하는 시베리아 호랑이. 〈사진 = 서울대공원 유튜브〉

공항을 떠나 서울대공원으로 가는 길. 포효하는 시베리아 호랑이. 〈사진 = 서울대공원 유튜브〉


수호가 태어난 지 다섯 달 뒤 수호의 아빠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공격해 물었습니다. 사육사는 사망합니다. 당시 로스토프는 좁은 여우 우리에 살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숨지게 한 로스토프는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지금도 좁은 격리 우리에 갇혀 있습니다.

아빠는 '살인 호랑이', 자식은 평균 수명보다 일찍 폐사. 호랑이 부자의 이런 기구한 운명은 우연일까요. 동물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수호의 죽음을 추적해봤습니다.
 

수호는 '돌연사' 했을까


지난달 7일 서울대공원은 '수호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라고 공지했습니다. 담당자는 “수호가 죽던 날 아침에도 움직임이 활발했다”라고 했습니다. 언론들도 '돌연사'라고 썼습니다. 정말 예고 없는 죽음이었을까요?
 
수호가 폐사하던 날 동물원을 찾은 시민이 찍은 영상 캡처. 수호는 방사장 암벽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며 몇 시간 동안 누워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사진 = JTBC 보도 캡처〉

수호가 폐사하던 날 동물원을 찾은 시민이 찍은 영상 캡처. 수호는 방사장 암벽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며 몇 시간 동안 누워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사진 = JTBC 보도 캡처〉


민주당 임호선 의원실이 서울대공원에서 부검 결과 보고서를 제출받았습니다. 저희가 살펴봤습니다. 수호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심근 섬유증,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병입니다. 원인은 모릅니다. 보고서에는 '유전성 및 특발성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병인은 불명'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적어도 건강했던 수호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습니다. 담당 수의사는 수호가 심장병 때문에 '심한 피로와 현기증을 느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수호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 JTBC 보도 캡처〉

〈사진 = JTBC 보도 캡처〉


보고서에는 수호의 간과 폐, 신장에 피멍이 들어 있었고 출혈도 관찰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열사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보고서를 본 최태규 수의사(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는 “심장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소 부족이 왔고, 움직이지 못하고 숨만 헐떡거리다 보니 체온이 높아져 열사병의 흔적이 몸에 남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측했습니다.

다만 수호의 심장병을 사육사나 수의사가 미리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 수의사는 “꾸준히 병증이 진행돼 진단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청주대 동물보건학 마승애 교수는 “호랑이는 약한 점을 들키지 않으려 하는 특성이 있어 질병을 최대한 숨기기 때문에 오랜 경력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심장 질병을 눈치채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호의 생전 의료 기록. 무기력증, 눈병, 장염, 다리부상 등 병치레가 잦았다. 사진 = JTBC 보도 캡처〉

수호의 생전 의료 기록. 무기력증, 눈병, 장염, 다리부상 등 병치레가 잦았다. 사진 = JTBC 보도 캡처〉


수호는 과거 다리 부상 때문에 다른 호랑이보다 움직임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평소 눈에 띄는 이상 증세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가능성도 큽니다.

〈관련 기사〉

[단독] 서울대공원 호랑이 수호, 폐사 전에도 '잦은 병치레' 시달렸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45188
 

국가대표 동물원의 현실


그래도 의문이 남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환경이 좋다는 국가대표 격 동물원. 그런데 이곳에 사는 동물 가운데 제 명에 자연사하는 경우는 10마리 중 2마리(23.4%)에 그칩니다. 나머지는 질병(52.8%), 외상(23.8%) 등으로 폐사합니다. 서울대공원에서 2019년부터 지난 5월까지 폐사한 동물 374마리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동물들을 누가, 어떻게 치료하고 있을까요. 수의사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사진 = JTBC 보도 캡처〉

〈사진 = JTBC 보도 캡처〉


서울대공원 동물은 228종, 2082마리입니다. 수의사는 총 19명. 그런데 이 19명 중 치료만 전담하는 '진료 수의사'는 6명입니다. 나머지는 동물원장과 동물기획 과장, 자연학습 팀장 등 행정직입니다. 단순 계산을 해보면 진료 수의사 한 명당 347명의 동물을 담당한다는 셈이 나옵니다.

직급과 경력을 짚어보면 진료 능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진료 수의사 6명 중 4명은 '수의직 공무원'입니다. 수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채용 절차를 걸쳐 공무원이 된 경우입니다. 시청과 연구원 등을 거치며 보직 순환을 합니다. 진료나 임상 경험 없이 평생 행정 업무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재 서울대공원 진료 담당 수의직 공무원들도 진료 경력이 모두 2년 이하입니다.

나머지 진료 수의사 2명은 계약직입니다. 진료 경력이 각각 5년과 19년으로 깁니다. 하지만 계약직이기 때문에 임금 인상이나 진급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경험은 풍부하지만, 진료팀 안에선 직급이 가장 낮습니다. 정유철 서울대공원 수의사는 “계약직 진료 수의사의 경우 사실상 사명감 하나로 일을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사진 = JTBC 보도 캡처〉

〈사진 = JTBC 보도 캡처〉

 

"가족과 밥먹다 일하러"


지방 공영 동물원은 사정은 더 나쁩니다. 동물 700마리를 둔 광주시 산하 우치동물원. 수의사는 4명입니다. 역시 동물원장 등 보직자와 진료 무경험자를 제외하면,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수의사는 단 1명입니다.

수의사들은 주말도 없이 일하며 지쳐갑니다. 최소 3명이 필요한 수술도 사람 숫자를 못 채웁니다. 이곳 정하진 수의사는 ”한 사람이 수술을 할 동안 나머지 한 사람이 마취와 보조를 동시에 떠맡아 왔다“고 했습니다. 6개월 동안 30회 수술을 이렇게 했습니다.
 
〈사진 = JTBC 보도 캡처〉

〈사진 = JTBC 보도 캡처〉


야생동물을 전시하기보다 적절한 생태 환경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춰 화제가 된 청주동물원. 이곳도 수의사 3명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는 "여자친구 만나다가도, 부모님이랑 밥을 먹다가도 출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0여 년 동안 쉬는 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곳 수의사들은 동물원의 방향성이 좋아서 금전, 직위, 직급을 포기하고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몇 년 뒤엔 자리를 옮겨야 하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정하진 수의사는 ”시청에서 일하던 수의직 직원이 동물원으로 발령 나 곧바로 야생동물을 치료하거나 수술을 하는 건 불가능한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일이 돌아가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야생동물 치료는 난도가 높은데 제대로 된 진료를 하기 힘듭니다.

연구와 보전이라는 동물원의 주요 역할은 후순위입니다. 정 수의사는 ”긴 시간 일하며 노하우를 쌓아야 하는데 인사이동 때마다 자리를 옮겨야 한다“며 ”동물이 좋아 공직 8년 만에 동물원에 왔을 때 무척 기뻤지만, 지금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를 돌보는 우치동물원 수의사. 지난해에 원숭이들이 단체로 원인 모를 병을 앓았다. 수의사들은 ″밥도 못 먹고 일을 했다″고 기억했다. '영혼을 갈아 넣을 정도로' 매진한 끝에 쯔쯔가무시병을 밝혀냈다. 전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였고, 추후 학술적 가치가 인정됐다. 정하진 수의사는 “그 뒤로 진드기 검사를 자주 하는 등 진료가 개선됐다. 이런 경험과 기술을 꾸준히 축적하고 이어가야 하는데 지금의 공영 동물원 시스템으론 지속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영상 = 우치동물원 정하진 수의사 제공〉

알락꼬리여우원숭이를 돌보는 우치동물원 수의사. 지난해에 원숭이들이 단체로 원인 모를 병을 앓았다. 수의사들은 ″밥도 못 먹고 일을 했다″고 기억했다. '영혼을 갈아 넣을 정도로' 매진한 끝에 쯔쯔가무시병을 밝혀냈다. 전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였고, 추후 학술적 가치가 인정됐다. 정하진 수의사는 “그 뒤로 진드기 검사를 자주 하는 등 진료가 개선됐다. 이런 경험과 기술을 꾸준히 축적하고 이어가야 하는데 지금의 공영 동물원 시스템으론 지속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영상 = 우치동물원 정하진 수의사 제공〉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지만 동물이 아프고 폐사하면 수의사와 사육사에게 화살이 돌아갑니다. 김정호 수의사는 ”완벽히 돌보고 싶다. 하지만 수의사들에겐 무언가를 바꾸고 개선할 수 있는 권한이 적다. 너무나 복합적인 문제”라고 자조했습니다. 서울대공원 정유철 수의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둘러싼 환경이 일반적이지가 않다“고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물을 진료하는 데 사명을 가진 젊은 수의사들도 동물원을 떠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꾸준히 일하려면 계약직밖에는 답이 없는데 열정과 의지만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운이 좋아 수의직 공무원으로 동물원에서 일하게 되어도 몇 년 뒤면 떠나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마승애 교수는 ”외국은 전문의 제도가 있어서 수의과 대학생들이 동물원에서 야생동물 진료 경험을 쌓는데 우리는 그런 시스템도 없어 현장에 와서 익혀야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일을 익히면 나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관련 기사〉

턱없이 부족한 동물원 수의사…한 명이 '수백 마리' 진료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45187
 

"호랑이 내실? 기피 1위"


수의사와 사육사들이 일하는 환경이 과연 안전한지도 짚어봐야 할 문제입니다. 2013년 사육사 사망 사건이 발생한 뒤 서울대공원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호랑이 사육실은 사육사들에게 기피 1위인 위험한 근무처라고 합니다.
 
2013년 11월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공격했을 당시 내실 구조. 〈사진 = JTBC 보도 캡처〉

2013년 11월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공격했을 당시 내실 구조. 〈사진 = JTBC 보도 캡처〉


서울대공원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익명 인터뷰를 요청한 그는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방사장은 수리를 마쳤지만 이른바 '뒷 방사장', 그러니까 '내실'은 리모델링이 안 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동물사와 사람 다니는 복도 사이가 2m 이상 떨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1m밖에 안 된다. 갑자기 호랑이가 발을 뻗는 경우 몸을 피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동물 방사장이나 내실 수리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철근이 많이 필요한 데다 규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물원은 지자체의 예산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립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 논리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동물들이 마음껏 뛰노는 방사장을 늘리고 사육사들과 생활하는 '내실' 도 리모델링해달라는 목소리는 번번이 묻혔습니다.

그는 “사육사가 행복해야 동물도 행복하다. 그런데 아무도 돌보러 가지 않는다고 하면 하면 호랑이들은 어떡하냐”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방법은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 해결책은 지자체와 분리 독립”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장기적으로 법인화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전문성 있는 사람들을 뽑아 꾸준히 근무하게 하자는 얘기입니다. 미국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환경부 산하에 관리청을 만들어 국립동물원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 중에선 기존 전문경력관 제도의 보완이 꼽힙니다. 한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겁니다. 실력 있는 사육사와 수의사가 마땅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동물원, 노아의 방주일까

 
2013년 6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시베리아 호랑이 선호, 수호, 미호. 〈사진 = 서울대공원 유튜브〉

2013년 6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시베리아 호랑이 선호, 수호, 미호. 〈사진 = 서울대공원 유튜브〉


동물원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드물 겁니다. 그렇다면 싼값에 야생동물을 구경해 온 우리도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동물원이 왜 존재하는지, 과연 유지되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의 야생동물을 대거 잡아다가 전시를 했던 공간, 서식지 파괴와 멸종에 앞장섰던 곳이 동물원입니다. 지금은 반대로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고 야생동물을 연구를 하는 곳으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시민 편의 시설' '위락 시설'이란 인식은 그대로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은 전 세계 동물원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서울대공원도 몇 년 전부터 번식을 중단하고 동물 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있는 동물을 잘 지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당장 동물원을 없앨 수는 없다면,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면 남은 생을 끝까지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도리일 겁니다. 그러려면 먼저 동물을 돌보고 치료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복지부터 챙기는 게 순서라는 당연한 결론에 가 닿게 됩니다. 눈 감는 순간까지 전시된 수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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