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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물건도 정도 가득…20년째 섬마을 달리는 '만물트럭'

입력 2022-06-20 20:51 수정 2022-06-2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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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물건을 가득 싣고 섬마을을 달리는 트럭이 있습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 타고 한 시간 반을 가야 하는 섬을 찾아가서 주민들과 정을 나눈 지 20년째인데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만물트럭'을 밀착카메라 이상엽 기자가 따라가 봤습니다.

[기자]

붉은 달을 품은 섬, 자월도.

올해 예순여섯 살 권병도 씨의 트럭이 달려갑니다.

섬 주민들에게 물건을 팔러 가는 길입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길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달린 지 어느덧 20년째입니다.

[권병도 : 두부, 콩나물, 오이, 호박…요구르트. (요구르트 발음이 좋은데요.) 요구르트. (좋습니다. 출발하실까요?) 네.]

집 앞에 도착한 트럭, 할머니가 감자와 고추를 고릅니다.

[최춘화/인천 옹진군 자월도 주민 : 이렇게 생긴 거 싫어. (비슷하게 생겼네.) 내가 이렇게 뚱뚱하냐? 너무 적지? (3천원.) 조금 더? (더 넣어.) 조금만 더 넣냐? 한 움큼 더 넣는다.]

크림빵, 단팥빵보다 떡볶이가 먹고 싶은 다른 손님, 농이 오갑니다.

[백조자/자월도 주민 : (빵?) 빵 말고 떡볶이 있는 것 같더만. (없어.) 그거 먹을까 하고 물어본 거야. 이것만 살 거야. (물건 사는 데 연구해. 농담하지 말고.)]

결국 오이와 양배추, 바나나를 집어듭니다.

[백조자/자월도 주민 : 이 사람 찍으러 1년에 한번씩 오는 것 같아. 우리 아들이 보고 엄마 나왔다고. (영상편지 한번…) 부산에 사는 아들아, 딸내미와 잘 지내고 있나.]

노란 꽃길을 지나 들어선 또 다른 마을.

이번엔 토종닭과 과일이 인기입니다.

[박병민/자월도 주민 : (푹 고아서 그저께 한 마리 먹었거든.) 토종닭, 양념통닭…포도가 없어서 서운하네.]

미역은 다 팔리고 없습니다.

[강패례/자월도 주민 : 저번에 미역 사서 끓였는데 좋더라. (또 뭐가 맛있었어요?) 맛있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저리 가.]

마트보다 반값이나 쌉니다.

[이미라/자월도 주민 : 마트에서 수박 2만2800원에 샀는데 여긴 1만3천원. 사장님은 물가가 안 올라가요. 올리셔야 해요. 아니, 아니에요.]

5백여 가구가 사는 이 섬엔 마트가 많지 않고 그나마도 몰려 있습니다.

2주에 한 번 섬에 들르는 권씨의 트럭은 그래서 항상 반갑습니다.

[김종남/자월도 주민 : (잘 아세요?) 제일 잘 알지. 섬에서 저 형님 아니면 식당 못 해요.]

[권병도 : (저 개도 좀 아세요?) 몰라. 똥개겠지. 어머니, 잠깐만. 미란이 엄마야.]

끼니를 거른 채 섬 곳곳을 다닌 지 14시간.

자월도의 해가 바다 너머로 저물어갑니다.

[권병도 : 여기 20년이 넘었어. 돈 벌어서 딸들 대학 보내고. 섬 사람들이 항상 고맙지. 오로지 섬과 나의 약속. 그걸 지켜야 하잖아. (인생은 어떤 것 같으세요?) 한마디로 개판이지. 손가락이 돌아갈 정도로 열심히 살았잖아. 오늘 삼촌 덕분에 내가 편했지. 고생 많았어.]

빈틈없이 채워 남김없이 건네고, 반쯤은 남겨뒀습니다.

내일은 소야도에 갑니다.

[권병도 : (오늘 베개는 설탕이에요?) 오늘 베개는 콩가루. 잠은 잘자. 눕자마자 잠들어. (편안한 밤 되십시오.)]

고향을 떠나 한 섬마을에 닻을 내린 건 사람 때문입니다.

끝없이 멀어지는 수평선에 언젠가 닿을 거란 믿음으로 내일도 닻을 올립니다.

인천 자월도에서 밀착카메라 이상엽입니다.

(VJ : 김대현 / 인턴기자 :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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