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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중) 훼손하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입력 2022-06-20 09:00 수정 2022-06-20 09:0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36)

전 세계 육상 탄소의 33% 품어준
'글로벌 탄소 저장고' 습지
산림보다 귀한 '보물' 습지, 위기에 빠지다

습지 훼손되면 품었던 탄소 다시 대기로 배출돼
결코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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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36)

전 세계 육상 탄소의 33% 품어준
'글로벌 탄소 저장고' 습지
산림보다 귀한 '보물' 습지, 위기에 빠지다

습지 훼손되면 품었던 탄소 다시 대기로 배출돼
결코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

지난주에 이어 습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지구에서 불과 7%의 면적만으로 멸종위기생물 100만종의 살 곳을 제공해주는 습지는 우리 인간에게도 값진 보물과 같습니다. 습지에서 생계를 살아가는 이들만도 10억명에 달할뿐더러, 최근 어떻게든 줄여보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탄소의 흡수 및 저장 기능도 뛰어나죠. 전 세계 육상 탄소의 3분의 1을 습지가 저장 중인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중) 훼손하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이러한 습지의 숨겨진 역할은 우리가 연구하고 조사한 끝에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알지 못했다면, 습지는 예나 지금이나 그저 발만 푹푹 빠지는, 온갖 벌레들이 가득한 불편한 장소로 남았을 겁니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비료 대신 이탄층을 논밭에 뿌려왔습니다. 이 역시 켜켜이 쌓인 동식물의 사체가 작물을 키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은 덕분입니다. 습지를 지키려면, 더 나아가 복구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습지를 '제대로' 아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지난주 연재에서 설명드린 대로, 습지의 탄소 저장량은 일반적인 산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산림에 해당하는 온대림의 4.5배, 흔히들 '지구의 허파'로 부르는 열대림의 2.8배에 달하죠. 지구에서 불과 7%의 면적만으로도 습지가 육상 탄소의 33%를 저장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최근 6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한 IPCC의 워킹그룹 II 저자인 명수정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습지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습지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습지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습지의 대표적인 가치나 기능은, 여러 생물의 서식처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물다양성을 유지시켜주고, 환경오염물질을 정화시켜주기도 합니다.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를 완충해주는 역할도 하죠. 물을 머금고 있다가 가뭄 때에는 우리가 '녹색 댐'이라 부르는 산림처럼 물을 내뿜어주고, 홍수 때에는 물을 더 많이 흡수해서 저장해주는 겁니다. 도시와 상대적으로 가까이 위치한 습지의 경우, 습도나 온도에 대해서도 완충 기능을 해줍니다. 또한 기후변화 시대에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해서 흡수원으로써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PCC 워킹그룹 II 저자)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1970년대 이후, 습지의 3분의 1 이상이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러한 습지의 가치를 알았다면, 이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돌아오는 편익을 알았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중) 훼손하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지난 2016년 기준, 전국의 내륙습지는 파악된 곳만 2499곳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이들 습지 가운데 1400여곳을 살펴봤더니 165곳이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조사 대상의 약 12%에 달합니다. 91곳은 당초 조사 때보다 면적이 줄어들었고, 74곳은 아예 사라져버렸습니다. 훼손된 원인은 우리 인간에 있었습니다. 훼손된 사례 가운데 약 90%의 습지는 경작지, 도로 또는 기타 시설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습지는 위기에 빠져버렸습니다.

“습지는 산림이나 다른 유형의 생태계에 비해 무척 쉽게 개발의 대상이 되고는 합니다. 특히, 논 습지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산속의 습지는 산을 깎아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논 습지는 그저 습지를 메우고, 땅속의 물길을 돌리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발하기 쉬운 것이죠. 그동안 이런 개발의 대상이 되면서 국내 습지는 많이 사라져왔습니다. 이런 도시화나 개발 등 토지이용의 변화는 습지의 가장 큰 위협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후변화 그 자체도 습지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뭄은 습지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죠.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 역시,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그러한 생물이 습지로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또 다른 위협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PCC 워킹그룹 II 저자)

'아무 쓸모 없는 땅을 가치 있게 활용하겠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땅이 매우 쓸모 있고, 그 자체로 가치가 컸으며, 훼손으로 정작 엄청난 피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겁니다.

#지키면_보물상자_훼손하면_판도라의상자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중) 훼손하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지난주 연재에서 설명드렸듯, 기존의 산림과 습지를 그대로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해마다 4Gt 가량의 탄소배출 감축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감축 효과를 낼 수 있는 선택지는 전체 43개 선택지 가운데 단 4개뿐입니다. 감축 잠재량 순으로는 ① 태양광발전, ② 산림, 습지 등의 보전 및 용도변경 지양, ③ 풍력발전, ④ 탄소격리 농법 이렇게 넷이죠. 습지의 훼손은 이러한 감축 잠재량이 큰 흡수원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단순 '흡수원 상실'을 넘어 '배출의 급증'을 부른다는 점은 더 큰 문제입니다. 바로, 습지의 훼손은 '탄소 저장고'의 뚜껑을 열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습지엔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의 사체들이 땅속에 켜켜이 쌓여 탄소의 형태로 땅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훼손 등으로 이러한 습지가 파헤쳐지면,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다시 대기중으로 방출됩니다.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뿜어져나오는 것이죠. 습지를 훼손하는 행위 자체가 배출 행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박홍철 국립공원공단 기후변화연구센터 박사

“습지의 토양엔 많은 양의 탄소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토양이 젖은 상태로 유지되어야지 그 속의 탄소도 유지될 수 있는데, 습지가 말라버리고, 그 탄소가 공기에 노출되면 온실가스로 외부로 배출되는 것이죠. 그래서 기후변화 관점에서 위험하게 될 수 있는 겁니다.”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PCC 워킹그룹 II 저자)

온갖 생태계를 통틀어 1헥타르당 가장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습지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습니다. 습지의 탄소 저장밀도가 높다는 것은, 반대로 훼손되면 그만큼 어마어마한 고농도 배출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습지의 고농도 온실가스 배출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아직까진 대규모 상용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에 앞서 자연기반 저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도 습지의 보호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의 첫걸음은 앞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첫걸음은 아직 부족한 상태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중) 훼손하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국립공원공단은 최근 전국 22곳의 국립공원에 대한 탄소 저장량 평가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국내 내륙습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매우 귀한 자료가 나온 겁니다. 각 생태별 단위면적당 탄소 저장량을 살펴본 결과, 습지의 경우 여타 다른 생태 대비 적은 저장량을 보였습니다. 앞서 IPCC의 평가 결과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그 어떤 생태 부문 대비 가장 높은 탄소 저장밀도를 보였던 곳이 습지였지만 국내 조사에선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이는 연구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국내 연구 과정에선 토양 샘플을 50cm 깊이로 채취했고, 해외의 경우 1m까지의 탄소 저장량을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습지마다 접근성은 천차만별입니다. 하이킹하는 마음가짐으로 찾아갈 수 있는 습지도 있지만, 험난한 산속을 거쳐서야 만나볼 수 있는 습지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습지에서 가로세로 1m, 깊이 50cm의 수분을 잔뜩 머금은 토양 샘플을 들고 연구실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죠. 결국 정확하고 심층적인 분석을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인력, 각종 지원이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이렇게라도 샘플을 채취해 연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습지는 국립공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립공원 내 주요 습지로는 위의 지도에 표시한 6곳을 꼽을 수 있습니다만, 실제 전체 습지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습지보전법에 의해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만도 전국 48곳, 면적으로는 1573㎢에 이릅니다. 또한,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습지센터가 전국 조사를 통해 발굴해낸 전체 습지의 수는 2499곳에 달합니다. '습지가 어디에 얼마나 있다'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각각의 습지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알아내기엔 우리는 아직 인적·물적 자원 투입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사이, 우리나라에서 습지는 '귀한' 흡수원이 아닌 배출원으로 분류되고 말았습니다.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습지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습지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습지 정의에 따르면, 호수나 하천, 논 등도 습지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이들 장소는 물을 받아놓은 물 그릇과 같은 상태가 되면, 즉 혐기성 상황에선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를 뿜어내게 되죠. 하지만 이탄 습지와 같은 습지 종류는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지금의 습지 정의에 따르면, 국내에선 아무래도 하천이나 호수의 면적이 많아지게 되고, 그 결과를 반영하면서 '습지=배출원'이 된 것이죠. 탄소중립에 발맞춰 습지가 흡수원으로써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습지에 대한 배출계수가 개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배출계수가 개발되지 않았죠. 이 때문에 습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함께 관련 배출계수 역시 계속 개발되어야만 합니다.


또한, 지금도 국내 습지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습지 조사와 각종 인벤토리로써의 자료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중입니다. 하지만 습지라는 장소가 건조기에는 줄어들고, 습할 때에는 늘어나는 곳이다보니 면적 산정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습지에 대한 정확하고, 세세한 현황 조사가 좀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와 더불어 습지에 서식중인 생물상이라든지 각종 생물다양성 현황에 대해서도 보다 상세한 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PCC 워킹그룹 II 저자)

개발보다 보전에 따른 편익이 더 크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인 연구로 확인된 상태입니다. '자연보호는 의미 있는 일이니 불편을 감수하자'는 차원의 일이 아닌 것이죠. 국가 차원에선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1톤이라도 더 흡수하고, 대기에서 격리시켜둘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자연기반 해법을 강조하려면, 그 자연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습지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인정하게 된다면, 습지를 보호하는 일은 더욱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그 가치만큼 '보호 노력'의 가치 또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자연 보호'와 '생물다양성 증진'에서 인간이 빠질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생태계 밖에 있는 존재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자연기반 해법에 기반한 정책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감과 참여 없이는 성공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보다 상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중) 훼손하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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