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헌트' 정우성 "위험한 게임 성공…친구 잘 둬 호강하네요"

제75회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헌트'의 이정재·정우성이 팔레 드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 4층 Terrasse du Festival에서 국내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칸(프랑스)=박세완 기자 park.sewan@joongang.co.kr 〈사진=JTBC엔터뉴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라는 표현의 정석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배우 정우성이 영화 '헌트'('HUNT'·이정재 감독)로 14년 만에 칸국제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이하 칸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23년 절친 이정재와 함께다.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 초청작 '헌트'는 이정재의 첫 감독 데뷔작으로, 정우성은 투톱 주연으로 합류해 도전의 길을 함께 걸었다. 타 작품보다 기대치와 시선의 부담감이 상당할 수 밖에 없었던 바. 때문에 더 더욱 스크린 밖 의미에 도취되지 않고, 오히려 기피하며 한 작품에 정식으로 출연하는 배우로서 치열하게 덤빈 정우성이다.

배우는 치열했고 감독은 진심이었다.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 '헌트'에서 정우성은 김정도 역할을 맡아 역대급 인생 캐릭터를 완성했다. '정우성은 멋지다' '정우성은 잘생겼다'는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에게만 유일하게 인정 된 명제라 봐도 무방하다. 놀랍지도 않은 고정 수식어를 '헌트'는, 이정재 감독은 "여기서 더?"로 보여준다. 그저 "미치도록 멋있다"는 감탄만 둥둥 떠다닌다.

모든 결과물을 칸영화제에서 확인한 정우성은 "감독님이 절대 안 보여 주시길래, 나도 일부러 보여 달라는 이야기를 안 했다. 극장을 나오면서 '재미있게 봤어요? 자기가 재미있게 봤어야 하는데'라고 하길래 '시간 훅 가네. 수고했어요'라고 했다"며 웃더니 "예전에는 칸에 주인공으로 초청 돼 와도, 그들이 주인공 대접을 해줘도 꼭 손님으로 남의 잔치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완벽하게 축제의 여러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 좋다. '헌트'가 와 칸이 좋아하는 느낌이라 뿌듯하다"고 흡족해 했다.

이는 공식 일정이 아닌, 그냥 길거리만 걸어도 실감 가능한 부분이었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과장이 아니라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사인과 사진 요청을 받았고, 식당과 카페에서도 이 같은 반응은 끊이지 않았다. "부럽기도 할 것 같다"는 솔직한 질문에 정우성은 "아니에요. 친구 잘 둬서 호강하고 있어요"라며 더 솔직한 답변을 건넸다. 정우성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오는 기회는 다른 것이고, 이정재 배우에게 온 기회는 지금인 것이다. 역시 친구를 잘 둬야 한다"고 거듭 스위트한 미소로 화답했다. 명불허전. 어나더'정우성'레벨이다.

제75회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헌트'의 배우 정우성이 팔레 드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 4층 Terrasse du Festival에서 국내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칸(프랑스)=박세완 기자 park.sewan@joongang.co.kr 〈사진=JTBC엔터뉴스〉

-완성된 영화는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본 것인가.
"여기서 처음 봤다. (이정재)감독님이 안 보여주셨다. '만듦새가 완성된 다음에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라는 생각에 나도 일부러 보여 달라는 이야기를 안 하고 있었다. '자기야 봐~' 하면서 그 포장지를 깐느에서 풀어준 것이다.(웃음)"

-이정재 감독이 모든 것을 정우성, 즉 '김정도가 멋있어 보이게 준비했다'고 하더라. '정우성을 최고로 멋있게 찍는 사람이 나였으면 싶었다'고 했는데.
"음…. 감사합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캐릭터의 어떤 '멋' 그 자체 보다는, 상황적인 분위기가 멋스럽게 전달 되기를 바랐다. 작품이 스파이물이고 두 남성 캐릭터가 보여주는 행위들이 기본적으로 호감이 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배우나 감독과 작업을 할 때는 그것이 '누구냐'가 첫 번째 숙제인데, '헌트'는 박평호와 김정도, 이정재와 정우성이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 '좋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둘만 즐기고 있네?'라는 반응이 나오면 안됐기 때문에 더 치열해야 했고, 두 캐릭터 사이에서 계속해서 긴장감을 조성해야 했다. 그 대립각 안에서 오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땐 어땠나.
"제안하지 말라고 했다. 하하. 23년 동안 사실 함께 하려고 했던 다른 기획도 많았고, 의기투합해서 시나리오 개발도 했었지만, 마음만 갖고 진행할 수는 없는 상황들이 있었다. '헌트' 같은 경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두 캐릭터가 공존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는 작품인데, 초반 '남산'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로 처음 봤을 땐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다. 하지만 판권 계약을 하고, 정재 씨가 프로듀서로서 참여 할 생각으로 개발을 본격적으로 하니까 그때부터는 진심으로 응원을 했다. 나는 사감이 섞이지 않는 자세로 조언도 아닌 첨언 정도를 해주려고 노력했고, 정재 씨는 내 말이 다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는데 큰 부분부터 작은 부분까지 이야기 할 때 귀담아 듣고 고민하고 끊임없이 작업을 해내더라. 그래서 더 더욱 우리가 좋아서, '오케이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마음에 섣불리 시작하면 위험한 게임이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합류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

"사실 애초부터 마음에 없어서가 아니라 조심스럽다는 마음이 컸던 것이다. '우리의 의미만이 보이는 작품이 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생각이랄까. '23년만 조우'라고 해주시지만 사실 그건 우리만의 의미이고, 영화가 잘 됐을 때 그런 의미까지 새삼스럽게 돋보이는 것이지, 그 의미부터 앞서서는 안 됐다. 그런 마음이 조심스러웠다는 뜻이다. 이후 긴 시간 동안 작업이 이뤄지고, 우여곡절 끝에 사나이픽처스를 만났고, 연출을 본인이 해 보겠다고 결정했을 때 나 또한 '이쯤 되면 모든 것을 한 바구니 안에 담아서 계란이 하나 탁 깨지더라도 후회 없이 해 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김정도는 어떤 인물이라 생각했나.
"신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한 인간이 가져야 할 신념. 근데 그 신념이라는 것이 어떤 시기에 놓였느냐에 따라서 위험한 행위를 도출할 수도 있는 것이고, 갈등과 고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김정도는 시대적 배경 안에 신념을 지키려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박평호와 서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각자의 신념에 충실하기 위한 몸부림은 닮은꼴이라고 봤다. 평호 안에 정도가 있고, 정도 안에 평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액션신이 등장해 보는 맛이 높은데, 계단을 구르는 막싸움은 내 몸이 아픈 것처럼 본격적이더라.
"배급사나 홍보팀에 요청해 메이킹 필름을 한 번 보셔라. (너무 멋있나?) 아니. 둘이 체력이 딸려서 앉을 때도 '아이고', 일어설 때도 '아이고' 하고 있다. 하하하. 액션 촬영에 긴 시간을 투자할 수도 없었다. 끄집어 낼 체력이 없어 주먹질 한 번에 확 치열해 질 수 밖에 없었다.(웃음) 뭐 육체적 체력은 나이가 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정신적 체력은 더 유연해졌다. 그래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감독 이정재는 어땠나.
"본인 스스로의 성격이 되게 섬세하고, 판단에 있어서도 계속 돌아본다. 그런 모습들이 작업에도 고스란히 담긴 것 같다. 감독의 작업 진행이 더디면 함께 하고 있어도 감독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고독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고독을 자신의 집념으로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관건인데 결국 싸워서 이겨야지. 그리고 작품이 그것을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치열했던 '헌트'는 치열하게 완성됐다고 본다."

-배우로서 현장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독에게 특별히 요구했던 부분도 있었나.
"사실 요구라기 보다도, 감독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구현이 명확하게 장착돼 있기 마련인데, 가끔 그것이 대화를 할 때나 글로 썼을 때와 비교해 세팅이 돼 무빙으로 이어질 때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글로 썼을 땐 괜찮았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빛이 들어오고, 옆에 가방 하나 놓는 것도 맞지 않을 때가 생기는 것이다. 현장에서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난감하다. 신인 감독들은 특히 더 그렇다. 많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그런 상황이 펼쳐지면 감독 스스로가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직언을 할 수는 없다. 그건 위험해진다. 대신 감독님이 빠른 시간 안에 답을 찾아갈 수 있게끔 도왔다."

-어떻게?
"한숨을 쉬었다. (…. 그게 직언보다 더 무서운 것 아닌가?) 대놓고 되게 크게 '아휴~' 했던 건 아니고, 옆으로 스윽 지나가면서 '휴' 한 번 하는 정도였다. 왜 고양이들이 가끔 그런다면서.(웃음) 비슷했던 것 같다."

-본인도 연출작 개봉을 준비 중이다. 감독 대 감독으로는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나.
"'이런 작품 하고 싶어요. 저런 작품 하고 싶어요' '이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도다. 우리가 오래 함께 지내왔고, 비슷한 취미가 있을지언정 상상력의 결이라는 것은 분명 다르다. 각자의 개성이 있는 것이다.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라고 함부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서로 다름은 완벽하게 인정한다."

-'오징어 게임' 흥행에 이어 '헌트'의 칸 초청까지. 이정재의 행보를 바라보는 입장은 어떤가. 솔직히 부럽기도 할 것 같다.
"아니에요.(웃음) 친구 잘 둬서 내가 호강하고 있다. 역시 친구를 잘 둬야 한다. 하하. 진심으로 뿌듯하다. 어떤 하나가 있는데 그걸 누가 독차지 한 것도 아니고, 누가 누구 것을 빼앗은 것도 아니지 않나.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에게 오는 기회는 다르다. 이정재 배우에게 온 기회는 지금인 것이고. 무엇보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국의 다른 작품들도 가능성이라는 것을 얻었다. 칸도 그렇다. 예전에는 한국 배우들이 길거리를 왔다 갔다 해도 그냥 '아시아에서 온 영화 관계자 누구인가 보다' 하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지금은 지나갈 때마다 'Lee! Lee! 사진 좀 찍어줘요' 한다. 얼마나 좋냐. 심지어 공식 초청을 받아도 '이런 영화도 있는데 볼만해. 한 번 볼래?'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칸에서는 충분히 주인공 대접을 해주지만, 왠지 모르게 손님이 남의 잔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근데 최근에는 완벽하게 축제 속 여러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참 좋다. 올해 칸도 '헌트'가 칸에 와 칸이 좋아하는 느낌이다. 즐겁게 즐기고 있다."

-완성된 영화를 본 느낌은 어땠나. 아쉬움도 있을까.
"'의미에 도취되지 않고 치열하게 잘 했구나. 그게 결과물로 나와서 다행이다'는 목적은 이룬 것 같다. 다만 처음 봤으니까, 두 번, 세 번은 더 봐야 하지 않을까. 처음엔 자꾸 '이런 식으로 편집 됐네? 저건 빠졌네?'라면서 만드는 사람 관점에서 보게 된다.(웃음) 두 번째 땐 평호가 보일 것 같고, 정도는 세 번 정도 봤을 때 보이지 않을까 싶다. 늘 말하지만 연기한 당사자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100% 만족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뻔뻔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모든 일이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헌트'를 보는 한국과 외국 관객의 반응이 사뭇 다른 것 같다.
"그건 당연하다. 할리우드 영화도 우리가 보는 것과 로컬 관객이 보는 리액션은 다를 것이다. 인도 영화, 일본 영화 뭐든 그렇다. '어떤 면, 어떤 부분에서는 관대하게 즐기네. 어떤 면은 전혀 이해를 못했네' 디테일하게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다양한 반응 자체는 어떤 영화를 보든 똑같이 여러 갈래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첫 상영 후 극장을 나오는데 앞에 어떤 외국인 관객들은 '둘이 사랑하는 사이 같다'고 하더라. '러블리, 러블리'라고 하던데, 아마 박평호와 김정도의 감정선이 점점 변화되고 깊어지는 것이 보였던 것 아닐까 싶다. 특히 마지막엔 김정도가 박평호 이름을 몇 번이나 외치지 않나. 김정도 입장에서는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
"아, 퀴어물로 보나? 으하하하. 김정도는 박평호의 본 모습을 확인한 이후에 '이 인간의 신념도 나와 비슷한 점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아까 이야기했듯 평호에게서 자신을 봤을 것이다. 또 신뢰는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다. 그 신뢰가 잘못 됐다고 생각했을 땐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커진다. 평호에 대한 아픔, 스스로에 대한 아픔이 동시에 터진 것 아닐까 생각한다."

-상영 후 이정재 감독과 처음 나눈 이야기는 무엇인가.
"막 끝났을 때 극장 안에서는 박수를 치고 받느라 아무런 말도 못했고, 극장을 나올 때 '재미있게 봤어요? 자기가 재미있게 봤어야 하는데'라고 하더라. 감독님이.(웃음) 그래서 '수고했어요. 시간 훅 가네'라고 했고 '재미있어요'라고도 했다."

칸(프랑스)=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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