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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너와 헤어지는 5일

입력 2022-04-26 21:00 수정 2022-04-2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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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JTBC 뉴스룸
안영일(50)씨는 지난달 17일 아내 정희숙(50)씨와 헤어졌습니다. 지체장애 1급인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던 아내는 코로나19 확진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씨는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아파트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돼 재봉틀로 직접 짠 옷을 휠체어 바퀴에 입힐 정도였으니까요. 세 아이는 조금씩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 도영(15)은 의젓한 장남으로, 둘째 딸 예진(13)과 막내딸 예서(8)는 아빠의 든든한 친구로 곁에 있습니다. 평범했던, 그리고 처절했던 다섯 가족의 못다 한 이야기를 지금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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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2일 (D-5)
=막내딸 예서가 감기 증상을 보이다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여보, 예서 양성이야. 괜찮을까? 우리도 검사받자. (예서야, 울지마. 괜찮아.)" 근무 중인 안씨에게 전화를 건 아내는 예서의 소식을 알리면서도 예서를 달래느라 바빴습니다. 이후 가족 모두 확진됐습니다. 아내는 코로나 검사 때 중증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몇 시간 뒤 아내는 물을 마시지도, 밥을 먹지도 못했습니다. 보건소는 쉬는 날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2022년 3월 13일 (D-4)
=확진자인 데다 장애인이어서 병원을 쉽게 갈 수도 없었습니다. 119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119는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줄 수는 있지만 병원에서 거부하면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병원 섭외를 먼저 해야 했습니다. 병원 역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1339에 전화했습니다. 질병관리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건소 연결을 안내받았고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상비약은 구토가 심해 복용하지 못했습니다.

△2022년 3월 14일 (D-3)
=집 근처 호흡기클리닉에 비대면 진료 요청을 했습니다. 처방받은 약은 구토방지제였는데 효과는 없었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병원 원장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불가능하단 거였습니다. 코로나 확진자는 거주지 구에 속한 병원에서만 진료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보건소 병실배정팀에 연락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2022년 3월 15일 (D-2)
=보건소 병실배정팀에 다시 한번 전화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인데 중증장애인이어서 보호자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물론 보호자인 안씨도 확진자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둘째 딸 예진이의 생일입니다. 다섯 가족이 확진됐다는 소식에 고모가 문 앞에 몰래 두고 간 케이크를 들고 다 같이 식탁에 모여 촛불을 켰습니다. 아내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2022년 3월 16일 (D-1)
=보건소 병실배정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남은 병실은 없지만 대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병원에 다다랐지만 주출입구로 휠체어를 탄 아내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엑스레이 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일어서야만 받을 수 있는 장비였습니다. 아내는 허리를 펼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채혈도 해야 했지만 의료진이 혈관을 찾지 못해 역시 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2022년 3월 17일 (D-DAY)
=새벽 시간, 잘 버티던 아내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다행히 격리병실 한 곳이 남았다는 소식에 안씨와 아내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막내딸 예서는 잠이 깼지만 아빠와 엄마에게 혼이 날까 무서워 자는 척을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아내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통보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받다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는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면 살 것 같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코로나 3년, 우리는 일상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일상은 코로나 이전도, 이후도 늘 외면받았습니다. 안씨는 생전 아내의 말을 떠올립니다. "여보, 세상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런데 당신을 만나서 세상에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 아내가 마주한 현실에서, 유일하게 기댈 곳은 집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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