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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입력 2022-04-18 09:00 수정 2022-04-18 09:04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7)

IPCC 6차 평가보고서의 '마지막 보고서' 발표
IPCC 워킹그룹 III의 6차 평가보고서, 그래픽으로 살펴보기
기후위기의 과정과 원인, 이를 막는 방법에 대해 195개국이 '만장일치' 동의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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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7)

IPCC 6차 평가보고서의 '마지막 보고서' 발표
IPCC 워킹그룹 III의 6차 평가보고서, 그래픽으로 살펴보기
기후위기의 과정과 원인, 이를 막는 방법에 대해 195개국이 '만장일치' 동의한 내용은?

지난 4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새로운 보고서가 공개됐습니다. 워킹그룹 III(제3실무그룹)의 6차 평가보고서가 나온 겁니다. 앞서 지난해 8월에도 분명 “IPCC가 6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고 했는데, 같은 보고서가 다시 공개된 것이냐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IPCC는 크게 3개의 실무그룹(WG)과 1개의 TF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무그룹은 각각의 '전문 분야'에 따라 3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1실무그룹은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살펴보는 집단입니다. 제2실무그룹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영향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취약성, 이에 적응하는 방안 등을 살펴봅니다. 제3실무그룹은 온실가스 감축을 비롯해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따져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이들 그룹은 정기적으로 '평가주기'라는 것을 갖습니다. 지난 2015년, 파리협정이 채택된 해는 6차 평가주기가 시작하는 해였습니다. 앞선 5차 평가주기에선 기후변화에 있어 우리 인간의 책임과 우리가 마주할 리스크에 집중했다면, 6차 평가주기에선 파리협정을 통해 국제사회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에 합의한 만큼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와 솔루션을 함께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그렇게 각 실무그룹은 2015년부터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관련 연구자료들을 취합하고, 이를 종합해 195개 회원국이 모두 만장일치 한 내용만이 평가보고서 SPM(정책입안자를 위한 요약본)에 담깁니다. 이 때문에, 각각의 보고서가 만들어질 때마다 예정대로 일정이 끝난 사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각국의 견해와 입장이 다른 만큼, 한 문장씩 만장일치 통과 과정을 거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제3실무그룹의 보고서에선 치열한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그간의 기후변화 현황과 향후 전망을 다루는 것이 아닌, '어떻게 온실가스를 줄여나갈 수 있나' 그 방법론에 대해 다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방법을 놓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죠.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에 나서자는 쪽과 원자력을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는 것처럼요.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일단, 날이 갈수록 현실은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2015년, 국제사회가 뜻을 모아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폭을 2℃ 이내로 묶자고 합의했습니다. 2018년, 우리나라 송도에서 열렸던 IPCC 총회에선 회원국들은 만장일치로 이 상승폭을 1.5℃로 강화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고요. 1.5℃만 올라도 지구의 환경, 자연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의 실생활에도 막대한 변화와 문제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강화하는 사이에도 우리는 온실가스 배출을 좀처럼 줄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2011~2020년 지구 평균 기온은 기준점인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때보다 이미 1.09℃ 오른 상태입니다.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의 관계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고, 이에 기반해 전망 역시 가능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2050~2055년 사이 탄소중립을달성해야만 1.5℃ 목표를 지켜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만약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못 하고, 수년간 증가세를 이어간다면, 탄소중립을 달성해야만 하는 시점은 더 당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뿜어낼 수 있는 총량(탄소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이 내놓은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한다고 했을 때, 그에 따라 탄소중립 시점이 2065~2070년 즈음으로 늦춰졌을 때, 우리는 1.5℃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실패하고 맙니다. 지금의 2030 NDC를 보다 강화하고, 감축의 고삐를 더 당겨야 한다는 것이죠. 반면, 온실가스 감축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감축의 고삐를 죄지 못 한다면, 그래서 그 누구도 감축의 부담 없이 서서히 줄여나간다고 했을 때, 2100년 지구의 평균 기온은 기준점 대비 무려 2.7℃나 높아질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실은 이보다 더 뜨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195개국 가운데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은 수치인 만큼, 상당히 보수적으로 '누그러뜨려진' 전망이니까요. IPCC 보고서 속 경고는 '순한 맛' 경고인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IPCC는 1990년부터 온실가스의 종류별 배출량도 살펴봤습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불소계 가스 등 다양한 가스별 배출량입니다. 특히, 이산화탄소의 경우 배출되는 과정에 따라 종류를 구분 지어서 통계를 산출했습니다. 전체 온실가스에서 화석연료와 산업부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절반 이상이었던 이산화탄소인데, 2019년엔 그 비중이 64%로 급증한 것이죠. 온실가스의 증가세에서도 특이점이 발견됐는데, 특히 2000년대의 증가 속도는 남달랐습니다. 1990년대, 연평균 0.7% 증가했던 것과 달리 2000년대엔 연평균 2.1%씩 늘어났습니다. 물론, 2000년대 화석연료와 산업부문 이산화탄소 배출이 반짝 감소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예상 가능한 이유,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였습니다. 위의 그래프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2020년 역시 코로나로 반짝 배출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IPCC는 온실가스의 추이를 살펴보다 이산화탄소 외에도 주목해야 할 온실가스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온실가스별 증가 속도를 살펴봤더니, 불소계 가스의 증가세가 다른 온실가스를 압도했던 겁니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30년의 시간 동안 전체 온실가스 배출은 154%가 됐습니다. 그런데 불소계 가스는 1990년 배출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2019년 354로 3.5배가 됐습니다. 도대체 불소계 가스가 무엇이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불소계 가스가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합니다.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달구는 데에 미치는 영향을 1이라고 했을 때, 불소계 가스는 최소 140배에서 최대 2만 3900배에 달합니다. 앞선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간신히 탈석탄 고개 넘었더니…이젠 LNG도, 벼농사도 걱정〉에서 메탄의 위험성과 감축 문제를 전해드렸는데, 불소계 가스 역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과정에서도,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서도, 동물이 트림을 하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나옵니다. 아산화질소의 경우 바다에서도 뿜어져 나오고요. 하지만 불소계 가스는 자연 상태에선 나올 수 없는 가스입니다. 그 책임이 100% 인간의 활동에 있는 겁니다.

HFC 류 가스는 각종 냉매에 두루 쓰이고 있습니다. PFC 류 가스는 아웃도어 의류나 제품을 만들고, 반도체를 제조하는 과정에도 쓰이죠. 육불화황은 각종 발전, 송·배전 체계에 절연물질로도 사용될뿐더러, 최근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는 LCD와 LED, OLED, 반도체의 생산 공정에 쓰입니다. 철강 등 제조업 비중이 높아 탄소 감축에 불리한 것은 익히 알려졌었는데, 이젠 우리나라 '첨단 산업'의 상징인 반도체 산업 역시 온실가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IPCC의 보고서에 이러한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선, 이 보고서에서 다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는 것을, 또한 그 연구 결과에 대해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제사회가 '탄소중립'을 외치며 발 빠르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가운데, 이젠 '온실가스 중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이미 국제사회는 불소계 가스 감축을 시작한 상태입니다. 세기말인 1999년, 세계반도체산업협의회는 업계 PFC 배출량을 2010년까지 10% 줄이기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6차 평가보고서를 통해 불소계 가스 배출량이 다른 온실가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증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이를 토대로 각국은 정책 마련에 나설 것이고, 산업계 역시 대응에 박차를 가할 겁니다. 단순히 '과학자들이 그렇게 말했대'라고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이죠.

IPCC는 온실가스 감축을 주제로 한 이번 6차 평가보고서에서 각종 감축 옵션별 감축 잠재량과 비용을 산정한 결과 역시 소개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막대의 길이가 길수록 감축 잠재량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와중에 그래프를 채워둔 색은 감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의미하죠. 새로운 감축 옵션들 가운데 현존 기술 대비 저렴한 옵션은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감당 가능한 비용'의 수준을 약 100달러 선으로 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의 관건은 바로 에너지에 있습니다. 어렴풋이나마 그럴 것이라 생각됐었지만, 이렇게 그래프로도 극명하게 드러났죠. 가장 많은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 옵션은 바로 연료의 전환, 에너지 전환입니다. 화석연료를 쓰던 공정을 전기나 수소 등으로 바꾸는 일, 기왕이면 석탄으로 만든 전기를 쓰기보다 천연가스로 만드는 일까지 현시점에서 적용 가능한 모든 옵션이 다 포함됐습니다. 이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양은 연간 2Gt 가량으로 추산됐습니다.

두 번째로 감축 효과가 큰 것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일입니다. 단순히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 외에도 똑같은 일을 할 때 필요한 에너지 자체를 줄이는 것, 어찌 보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죠. 우리가 체중 감량을 하려고 할 때, 식단을 지방 위주의 식단에서 단백질과 섬유질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연료 전환'에 해당한다면, 근력을 키워서 몸의 기초 대사량 자체를 높이는 일은 '에너지 효율'에 빗댈 수 있겠습니다. 점차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CCUS의 경우, 예상보다 감축량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에 언급된 주요 감축 옵션들 가운데 감축량은 가장 적으면서도 비용은 가장 비쌌죠. 사실상 가성비가 가장 떨어지는, 사업성이 가장 떨어지는 옵션이라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우리가 무언가를 제조하는 것이 아닌, 땅을 일구고, 활용하는 과정에서도 꽤 많은 감축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림업부문의 감축 옵션들을 살펴보면, 감축 잠재량의 단위가 산업부문의 감축 옵션보다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감축량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은 다름 아닌 '산림 및 임지 등의 전용 지양'이었습니다. 숲이었던 곳을, 녹지였던 곳을 다른 용도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서만도 연간 4Gt의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데에 195개국이 뜻을 함께했습니다.


다음으로 감축량이 가장 많은 것은 탄소격리 농법의 적용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전해드렸던 99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간신히 탈석탄 고개 넘었더니…이젠 LNG도, 벼농사도 걱정〉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나라 메탄 배출량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축산업(43.5%)이었습니다. 특히, 벼농사 중심의 우리나라 농축산업 구조상, 산업 내 배출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은 벼 재배였습니다. 농축산업 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논에서 뿜어져 나온 겁니다. 장내 발효, 가축분뇨처리는 순서대로 그 뒤를 이었고요.

산림의 관리, 산림 경영 또한 매우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법으로 꼽혔습니다. 생태계를 복원하고,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나무를 심고, 산림을 지속가능하게 경영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는 감축량은 연간 5Gt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부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앞서 산업부문에서도 이에 대한 힌트가 있었죠. 바로, 발전부문입니다. 물건을 만드는 데에 쓰는 전기를 무엇으로 만들어내느냐, 농축산업에 투입되는 장비를 어떤 에너지원으로 가동하느냐… 이는 다른 모든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지금의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이 모든 것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발전부문 주요 감축 옵션으로는 이 둘 외에도 바이오에너지, 수력, 지열, 원자력, 탄소포집저장(CCS), CCS가 적용된 바이오 전력, 메탄 배출을 줄인 석탄, 메탄 배출을 줄인 석유 또는 가스 등 광범위한 옵션이 담겼습니다. 195개국 가운데엔 선진국도, 개발도상국도, 경제·산업 발전이 더딘 국가 등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국가마다 선호하는, 혹은 적용할 수 있는 옵션에도 차이가 있고요. 이러한 다양한 나라들에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적어도 지금보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옵션들이 총망라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5개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한 발전부문의 감축 옵션별 감축 가능량은 과연 어땠을까요. 재생에너지, 그중에서도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가성비를 쫓아올 다른 옵션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각각 4Gt 안팎의 감축량을 자랑하면서도 비용 역시 매우 저렴했습니다. 범례에서 '현존 감축 기술 대비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을 뜻하는 파란색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칠해진 옵션 역시 이 둘 뿐입니다. 발전부문을 떠나, 다른 모든 부문을 살펴봐도 이렇게나 비용이 낮은 옵션은 없었습니다.

반면, '기술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원자력과 CCS의 경우, 생각보다 감축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 둘을 합쳐도 감축량은 2Gt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원자력의 경우, 얼핏 '눈 가리고 아웅 하기'처럼 보였던 '메탄 배출을 줄인 석유 및 가스'를 사용하는 것보다도 감축량이 적었습니다. '감축 옵션 항목에 포함됐다'는 것 외엔 크게 내세울 것이 없을 정도죠. 원자력과 CCS가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메인 스트림'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만약 국내 시민사회에서 이 같은 자료가 발표됐다면, 일각에선 “탈핵 진영의 선동”이라고 비난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IPCC의 회원국엔 원전을 두고 논란이 한창인 우리나라뿐 아니라 '원전에 진심'인 프랑스도 있습니다. 또한 극단적인 수치는 모두 배제됐습니다. 모든 국가의 과학자, 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연구자료를 면밀히 평가했고, 모든 나라가 동의하는 수준에서의 내용이 담긴 것이니까요. 그럼,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우선, 말 그대로의 '가성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20년간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와 더불어 보급량은 얼마나 늘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이 역시 특정 단체가 주장하는 수치가 아닌, 국제적으로 그 객관성을 인정받은 '195개국 만장일치' 데이터입니다. 태양광과 육상풍력의 경우, 이미 발전단가가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졌습니다. '아직은 비싸다'는 평을 듣던 해상풍력조차 화석연료 가격의 중윗값에 해당할 만큼 비용이 낮아졌죠. '상용화는 아직인 것 아니냐'고들 생각하는 집광형태양열조차10년새 화석연료 수준으로 비용이 반 토막도 더 났습니다. 화석연료에서 전기로의 에너지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사례인 전기차 배터리팩은 최근 10년새 가격이 85%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보급량은 급증했습니다. 태양광발전은 10년새 10배, 육상풍력은 3.5배, 해상풍력은 8배, 전기차 보급량은 100배 늘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입니다.

재생에너지가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지속가능성'입니다. 국내에선 유독 지속가능성이나 ESG 등을 이야기할 때에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인식이 큰 편입니다. 제대로 된 기준이나 지표 없이, 너도나도 '형용사'처럼 이 용어를 쓰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짜' ESG와 '진짜' 지속가능성엔 분명한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UN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만들었습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더불어 공생하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종류별로 나눈 것이죠. 이번 IPCC 제3실무그룹의 6차 평가보고서엔 각각의 감축 옵션이 이러한 17개 목표에 미치는 영향에도 주목했습니다. 발전부문의 주요 감축 옵션 가운데엔 SDG 달성에 기여하는 옵션도, 목표 달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옵션도 존재했습니다.

총 7개의 옵션 가운데 SDG에 미치는 긍정 영향이 가장 많은 옵션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번에도 풍력과 태양광이 선두를 달렸습니다. 반면, 원자력의 경우 SDG 8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SDG 9 '산업, 혁신, 인프라' 단 두 가지를 제외하곤 100% 긍정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었습니다. 반면 SDG 6 '깨끗한 물과 위생'에 있어서 CCS와 함께 7개 옵션 가운데 유일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옵션으로 분류됐죠. 양적 평가와 질적 평가 모두에서 발전부문 7개 주요 감축 옵션 가운데에 하위권에 머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원전의 기저발전화'를 넘어 '원전의 발전믹스주력화'를 외치는 주장이 '메인 스트림'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주장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IPCC와 195개 회원국이 과학과 숫자, 데이터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과는 달리 국내에선 '정치'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죠.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는 '프레이밍'으로 여론을 형성하면, 그 여론을 바탕으로 나름의 당위성을 얻는 방식입니다. 195개국의 집단지성, 그들의 만장일치를 뛰어넘는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다음 주 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과학이 증명한 기후위기에 정치가 끼어들 때 (상)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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