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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입력 2022-04-07 15:24 수정 2022-04-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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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5년 만에 드디어 관객들을 만난다. 5년이 흘렀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이슈화 되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는 5년 전 제작된 영화가 시국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아이러니함과 동시에 씁쓸함을 자아낸다.

2017년 5월 29일 크랭크인, 같은 해 8월 27일 크랭크업 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김지훈 감독)'는 2022년 4월 27일 개봉을 확정짓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영화 안 팎으로 터진 이슈에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던 시간. 하지만 운명의 타이밍은 존재했다.

7일 진행된 제작보고회에서 고창석은 "5년 동안 빛을 못 보고 사라질까 가슴을 졸였다. 죽은 줄 알았던 니 부모 얼굴이 살아 돌아와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든다"며 "외면 받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기에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고 전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스스로 몸을 던진 한 학생의 편지에 남겨진 4명의 이름,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을 그린 작품이다.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감독과 배우들은 엊그제 촬영을 마친 듯 작품에 대해, 그리고 현장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표현하고자 했던 진심이 깊고 명확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이라는 소재는 그간 다양한 매체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다뤄졌다. 다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시점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맞춘다. 학교 폭력을 행한 가해자와, 그러한 가해자를 키워낸 부모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김지훈 감독 역시 "가해자를 중심에 두고 들끓는 분노와 반복되는 아픔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일본의 극작가이자 고등학교 교사인 하타사와 세이코가 각본을 쓴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2008년 일본 초연, 2012년 국내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는 하루의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의 설정에 각색과 재해석을 더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된 이야기를 펼친다.

"10년 전 우연히 연극을 보고 너무 놀랐다"는 김지훈 감독은 "직접적으로 표현된 제목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주변에서 '영화 제목은 바꾸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이 제목이 영화의 주제와 담고자 하는 함의, 분노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지훈 감독 개인에게는 1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작품이다. 2010년 영화화를 결정짓고 시나리오 작업에만 6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김지훈 감독은 "갈망하는 마음으로 처음 원작자를 찾아 뵀을 때도 연극 형식과 스토리 특성상 '(영화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실제로 예상보다 많이 어려웠다. 내가 부족한 탓이었겠지만 생각은 있는데 응집이 잘 안 되더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감정은 촬영 현장까지 이어졌다. 김지훈 감독은 "다른 작품을 할 땐 배우들의 질문과 내 답들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제시하거나 합의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각자의 마음과 표현 방식이 많이 달랐다. 무엇이 정답인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더라. 죄책감도 느껴지고 부끄러움도 느껴져서 힘들었다. 방향을 찾아가기 보다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고 덧붙였다.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배우들은 작품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야말로 캐릭터에 온전히 빠져 들었다. 매 작품 '캐아일체'를 완성하기로 정평이 난 배우들이지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무엇과 비교해도 달랐고, 또 달랐다.

이번 작품에서 설경구, 고창석, 오달수, 김홍파는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네 명의 아버지로 분한다. 천우희는 사건을 둘러 싼 아이들 반의 예비 담임으로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 문소리가 피해 학생의 어머니로 미(美)친 열연을 예고한다. 김지훈 감독은 배우 캐스팅 비하인드를 함께 털어놓으며 '왜 이 배우들이 아니면 안 됐는지'에 대한 이유와 고마움을 드러냈다.

가해자의 아버지이자 변호사인 강호창 역의 설경구는 "이런 이야기는 건드려지고 소개가 돼 많은 분들이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며 "모든 부모가 이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 아이의 말을 끝까지 믿어 보려고 하는 부모 역할에 충실 하려고 했다. 믿음까지 없다면 연기하기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정말 아니구나' 믿어야 할 것 같았고, 믿고 싶었다"고 밝혔다.

'타워'에서 설경구와 함께 호흡 맞췄던 김지훈 감독은 "설경구 배우는 그 사이 더 많이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성숙함을 담고 싶기도 했고, 배우고 싶기도 했다. 사석에서 한 번씩 만나면 '진짜'라는 것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나 역시 진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진짜를 같이 공유해 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상의를 많이 할 수 있는 버팀목 같은 느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촬영 막바지 중요한 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고. 리허설 신이 곧바로 OK 됐을 정도로 변호사 강호창에서 아빠 강호창으로 감정이입의 순간을 완벽하게 표현해낸 설경구다. 설경구는 "작가님이 써 준 글도 좋았는데, '지금 내가 여태까지 느꼈던 걸 솔직하게 다 써보자'는 마음이 들었고 그걸 짧은 글에 담아내 봤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 재판장을 설득해야 한다'는 욕구로 쓰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사회 초년생'으로 인생의 사건을 겪게 되는 송정욱 역의 천우희는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가해자 부모들을 보며 피해자 친구를 조금 더 도와주고 조력하려는 인물이다. 다만 경험치가 없어 진실에 다가가려고 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유약하다. 때론 고지식해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윤리적이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복합적 감정들을 표현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원작 낭독 공연과 연극까지 챙겨 봤다는 천우희는 사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출연을 한 번 거절했다. "사회적 이야기에 대해 항상 관심이 있기 때문에 '표현되면 좋겠다.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영화화는 또 다른 문제 아닌가"라고 조심스레 운을 뗀 천우희는 "처음엔 작품의 팬으로만 남고 싶더라. 근데 지금은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이 기회와 인연을 다 놓칠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 너무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천우희 캐스팅에는 설경구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캐스팅 회의 과정에서 '송정욱 역은 무조건 천우희여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지만 첫 번째 제의는 천우희가 거절했던 것. 이에 설경구는 천우희의 번호를 수소문해 직접 전화를 걸었고,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김지훈 감독은 천우희 캐스팅에 대해 "애걸복걸했다"는 표현까지 사용했을 정도로 간절했던 마음을 엿보이게 했다.

설경구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쭉 올라온다. 송정욱은 사실 고발인의 역할이다. 정말 중요한 인물이고, 나 역시 '천우희여야 한다'는 뜻에 동의했다. 그땐 '우상'을 함께 찍기 전이라 잘 몰랐던 시절인데 실례를 무릅쓰고 용기 내 전화를 걸었다. 논리적인 설득도 못 한 채 그저 '하자'고 집요하게 부탁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천우희는 "논리정연하지 않았던 한 마디가 나를 '탕' 쳤다"며 흡족해했다.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학폭 가해 학생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해당 학교의 수학 교사인 정선생 역의 고창석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큰 분노를 느꼈다. 특히 배우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부모이기도 한데, '나였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했을 때 좀 자신이 없어지더라. 영화를 찍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정말 내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지만 뜻깊게 작업했다"는 인간 진정성의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정선생은 '옥스포드 출신 수학 선생'으로 영어로 수학을 가르치는 인물. 고창석 입장에서는 연기적 스킬에 감정적 동요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설정을 소화해야 했다. "일단 영어를 달달달 외웠다"며 미소 지은 고창석은 "솔직히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피해 학생의 엄마가 절규하는 것을 들으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 신이 있었다. 그 분위기를 집중시키는 게 힘들었다. 연기하면서 죄책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싱크홀'에서도 고창석과 함께 했던 김지훈 감독은 "처음 '수학을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 고창석 배우의 연기를 본 다른 분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분이냐'고 하더라. 그 정도로 유창한 연기를 해냈다"며 "감독으로서 모시고 싶은 배우들이 있는데 고창석 배우 역시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흔쾌히 받아 주셔서 감사했다"고 인사했다.

이와 함께 김지훈 감독은 피해 학생의 엄마로 나선 문소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감독은 "아픔을 가장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마냥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느낌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까지 던질 수 있는 메타포가 돼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문소리 배우님도 모두가 강력하게 원했던 배우였다"고 고마워했다.

 
"분노와 공감" 뻔뻔한 학폭 가해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종합)

영화는 진지하고 무겁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행히 정반대였다. 배우들은 입을 모아, 또한 자청해서 행복했던 현장을 자랑했다. 고창석은 "영화가 아니라 연극 한 편을 하는 기분이었다. 선배님들과 저녁에 모여 치열하게 이야기 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짖궂게 심부름을 시켜도 오히려 심리적으로는 도움이 돼 좋았다"고 단언했다.

천우희도 "난 완전 막내였다. 선배님들에 비하면 아기 아닌가"라며 웃더니 "너무 감사할 정도로 그간 출연했던 작품 중 손에 꼽을 만큼 훈훈하고 끈끈하고 행복하고 좋았던 현장이다. 선배님들, 감독님과 술 한 잔 씩 하며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고, 그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무엇보다 '허허' 웃으면서 연기 하시는 것 같은데, 보면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더라. '아, 역시 고수들이다' 했다"고 깜짝 에피소드를 꺼냈다.

이에 대해 설경구는 "왜 그랬냐면, 우리가 NG를 낼 때마다 벌금을 내기로 했다. NG 안 내려고 그랬던 것이다"라며 너스레를 떨더니 "실제로 돈을 모아서 커피차도 샀다. 문구는 고창석이 정했다"고 거들었다. 고창석은 "진짜 NG 내면 벌금 내는 것을 전 스태프들이 감시했다. '어? 고창석 NG 냈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문구를 '더러워서 쏜다'라고 정했다"고 말해 타고난 센스를 엿보이게 했다.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 그리고 가해자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 보기에 더 큰 공분을 살 수 있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다. 끊임없이 자행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의 굴레에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어떤 얼굴을 보여주며 문제적 도발을 일으킬지 영화 전반을 둘러싼 진정성에 관심이 쏠린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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