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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입력 2022-03-02 15:38 수정 2022-03-0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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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 삼일절 개봉 1위…로버트 패틴슨 '더 배트맨' 리뷰
| '2년차 탐정'으로 활동하는 사회초년생 배트맨 활약상
| 판타지 고담시 배경으로 현실 범죄 주목 '피폐한 추리극'

출연: 로버트 패틴슨·폴 다노·조 크라비트·앤디 서키스·제프리 라이트·콜린 파렐
감독: 맷 리브스
장르: 액션·범죄·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76분
한줄평: 수트만 꿰입은 난세의 탐정
팝콘지수: ●●●○○
줄거리: 배트맨으로 활동한지 2년차인 고담시 도련님 브루스 웨인의 탐정 추리극

 
[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무적'과는 원래부터 거리가 먼 배트맨이었지만, 이번에는 더 어둡고 피폐하다. 트라우마에 갇히고 고담시에 묻혀버린 그 세계 유일무이 영웅. 특유의 세계관 안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채, 운명의 쳇바퀴만 돌고 도는 무자비한 인생이다.

80년을 지배한 히어로계 아이콘 배트맨이 '더 배트맨'으로 새롭게 돌아왔다. 때는 배트맨 생활 2년 차. 파릇파릇 젊은 배트맨을 기대하는 시선이 살짝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배트맨은 배트맨이다. 오히려 감정과 능력을 완벽하게 컨트롤하지 못하는 성장의 시발점으로 회귀했다.

'더 배트맨'은 벼랑 끝에 놓인 상징적 도시, 배트맨 세계관의 고담시를 배경 삼아 인간의 뒤틀린 내면을 거칠고, 신랄하고, 감정적으로 전달한다. 배트맨 이름 앞에 '더(THE)'를 붙이면서 '영웅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을 주요 메시지로 담았다.

언제나 일반적인 히어로물들과는 달리, 올블랙 수트에 '다크(DARK)'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배트맨은 어두운 고담시에서 더 어두운 존재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나는 복수다"라고 외치며 그림자의 길로 들어서는 배트맨의 삶과 심리를 '더 배트맨'은 176분을 할애해 촘촘히 다룬다.

 
[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맷 리브스 감독은 "배트맨은 전통적인 슈퍼히어로이지만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강박 속 집착을 통해 선악이 흐려지기도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기준으로, 인간성을 탐험하고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내가 집중했던 건 '균형'이었다. 배트맨은 자기 통제를 완벽히 하는 인물인데, 이번 영화의 배트맨은 그 통제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완벽을 향해 꾸준히 달리고 노력하는 여정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더 배트맨'은 맷 리브스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의 목표를 120% 충족시킨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작품을 완성해냈다. 다만 그것이 관객들이 원한 결과물인지는 미지수다. 너무나도 익숙한 조커를 데리고 신드롬을 일으켰던 신선함이 '더 배트맨'에는 아쉽게도 없다.

그래도 시작은 좋다. 1일 국내 개봉 후 첫날 19만 명을 동원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올해 개봉작 충 최고 오프닝 스코어다. 3월 원맨쇼 흥행 길의 포문을 연 '더 배트맨'이 침체된 극장가를 구원하는 또 하나의 히어로가 되어줄지 기대감이 상당하다.

피와 기가 쪽쪽 빨린 新배트맨


 
[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2년간 거리에서 범죄자들을 응징한 브루스 웨인은 정체불명 빌런 리들러(폴 다노)의 등장과 함께 탐정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3월 국내 대선에 맞춰 고담시는 새 시장을 뽑는 선거전에 한창이다. 어느 날 현직 시장이 얼굴에 테이프가 꽁꽁 감긴 채 살해되면서 살인범을 향한 추적의 물꼬가 튼다. 살인은 계획적이고 때론 예고되기도 한다. 초점은 비리 고위 공직자에 맞춰져 있다.

배트맨 입장에서는 사실상 본격 탐정 데뷔전이다. 새 배트맨으로 데뷔하는 로버트 패틴슨의 상황과도 결이 같다.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한들, 데뷔전은 참고할만한 경험이 쌓이지 못했기에 늘 어설프고 어리둥절해 하기 마련이다. 배트맨 역시 추적의 과정에서 고담시 도련님과 배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가문의 원죄와 연관된 이들의 진실에 거듭 혼란스러워한다.

로버트 패틴슨의 비주얼과 분위기는 '더 배트맨'이 원하는 인물상에 최적화 돼 있다. 판타지 로맨스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멜로와 히어로물 등 대중적인 장르는 대놓고 기피했던 로버트 패틴슨이 왜 '더 배트맨'을 택했는지 작품 자체가 답이다. 한번쯤은 연기하고, 갖추고 싶어 할 법한 강인하지만 유약하고, 신비롭지만 피폐한 이미지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모습을 더 깊이있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유와 명분은 충분하지만, 새로운 시리즈의 세대교체까지 예고했을 땐 그것을 만족시킬 장치도 곳곳에 배치시켜야 했다는 것. 배트맨을 연기한 배우의 나이가 어려졌다는 것 외 영화는 올드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뢰를 먹고 들어가는 기본적인 '배트맨 키워드'가 없다면 일반적인 액션물, 추리극과 큰 차별점을 내세우기 힘들다.

 
[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리뷰] 극악의 근무환경 '더 배트맨' 신입 탐정 피폐물

초창기의 배트맨을 그리기 때문에 수트 외 최첨단 기술은 딱히 없다. 히어로물 특유의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배트맨도 세계관 안에서 아직은 눈엣가시 존재라 홀로 입은 수트조차 둥둥 떠 보인다. 배트모빌의 등장도 스펙터클하지 않고, 펭귄과의 카체이싱 역시 치솟는 불길이 강렬하기는 하지만 여느 액션 영화들에서 숱하게 봐 온 그림이다. 올드한 감성을 레트로로 풀어내는데도 실패했다.

꽁꽁 숨어있는 빌런 리들리를 찾아내야하는 흐름으로 터지는 범죄는 극악무도하지만 빌런 자체의 힘은 약하다. 그나마 리들리를 연기한 폴 다노는 후반부 '돌아버린 연기' 한 방으로 존재감을 내비치지만, '펭귄' 오스왈드는 '콜린 퍼렐 맞아?'라는 질문이 제일 재미있는 무매력이다. 배트맨을 각성시키는 훗날 캣우먼 셀리나 카일(조 크라비트)이 유일한 숨통. 목표는 뚜렷하고 결정은 화끈하다.

시간적 배경이 과거로 넘어갔든, 배트맨이 아직 히어로 생활에 적응 중인 단계이든, 이를 표현하고 그려내는 방식까지 어설플 필요는 없다. 뚜렷한 한 방 없이 배트맨 캐릭터의 단점과 세계관의 한계점이 더 부각된 모습이라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서 이 작품을 조금이나마 더 즐기기 위해서는 끝까지 잊으면 안 된다. '더 배트맨'의 배트맨은 천하무적 히어로가 아닌 인간계 탐정이라는걸.

그 정체성를 부정하지 않고 '더 배트맨'의 세계에만 온전히 빠져든다면 무려 176분을 할애한 이 이야기가 딱히 지루하지는 않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천천히,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짚어내는 시간 활용이 몰입도를 쉽게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랜시간 앉아있어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육체적 피곤감만 아니라면 체감 러닝타임은 135분 정도로 계산해 볼 수 있겠다.

단순하게 표현해 '2022년판 배트맨'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비롯해 기존 배트맨 영화들과 어떠한 비교없이 '더 배트맨'이 전달하고자 하는 포인트에만 집중한다면 여운이 꽤 길게 남을 작품이다. 작품성은 약해도 예술성은 적절히 챙겼다. 조금의 힘이 더 남아있다면, 엔딩 크레딧 이후 마지막 1초의 쿠키영상하지 함께 하는 것을 추천한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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