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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다'라 불린 여성 노동자…'제2의 전태일들' 이야기

입력 2022-01-20 20:24 수정 2022-01-2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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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2년 전,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면서 자신의 몸을 불태웠습니다. 그 부탁을 지켜낸 사람들은 이름 대신 '시다', '공순이'로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홍지용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임미경 (다큐 '미싱타는 여자들') : 아버지가 여자는 공부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1973년, 열세 살 임미경 씨는 그렇게 중학생 대신, 평화시장 '시다'가 됐습니다.

한 줌의 빛도 허락하지 않던 공장 다락에서 소녀들은, 하루 16시간 일만 했습니다.

[신순애 : (바지) 무릎 쪽이 쑥 나와 가지고 옷을 입으면 5분도 안 돼서 이렇게 (부어서) 부풀어 있는 거야.]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뒤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생겼고 3년 뒤 노동교실이 생겼습니다.

공짜로 공부 할 수 있다는 소리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신순애 : 나는 늘 7번 시다, 아니면 1번 오야 미싱사로 불렸지. 신순애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으로 쓴 거예요.]

[박태숙 : 근로기준법이란 것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내 자아를 찾아갈 수 있었던…]

근무시간 단축을 이뤄냈고, 노동자 10명 이상이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제도도 바꿨습니다.

1977년,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구속되고 노동교실이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노동 교실 사수 투쟁' 사건입니다.

[임미경 : 어머니를 석방하라. 노동교실을 돌려 달라. 제2의 전태일은 내가, 여자지만 내가 되겠다.]

결국 구속되고 그 뒤에도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5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온 자신들의 투쟁일기가 지금의 노동자에게도 힘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임미경 : 여지껏 살아줘서 고맙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살아오면서 애썼다.]

(화면출처 : (주)영화사 진진)
(영상그래픽 : 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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