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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일자리 미끼 속아 1100만원 세금폭탄 홈리스...법원 "낼 필요없다"

입력 2022-01-17 18:48 수정 2022-01-19 18:22

1심 "명의 도용 당한 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강 씨 패소
항소심에서 뒤집혀..."세금 다 내라는 건 너무 가혹"
세금은 '무효'지만 넘어야 할 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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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명의 도용 당한 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강 씨 패소
항소심에서 뒤집혀..."세금 다 내라는 건 너무 가혹"
세금은 '무효'지만 넘어야 할 산 많아

JTBC는 2년 전 노숙 생활 도중 사기꾼의 말에 속아 명의를 도용당해 세금 폭탄을 맞게 된 강 모 씨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강 씨는 "세금을 낼 수 없다"며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약 1년 6개월 만인 지난 12일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서울고법 행정11부(배준현·송영승·이은혜 부장판사)는 강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친 않았습니다. 1심 법원은 항소심과 달리 강 씨에게 "세금을 내라"고 했고, 세금 미납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관련 기사: https://bit.ly/3A5Kx86 (〈 노숙하다 '일자리 미끼'에 속아…1천만 원 '세금 폭탄'(2020.06.15)〉


■'일자리 주겠다'며 개인정보 가져간 남자...알고 보니 사기꾼
강 씨는 13년 전 용산구 일대에서 주로 노숙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모르는 사람 2명이 다가와 '일자리를 주겠다'는 말에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별다른 의심 없이 제공했습니다. 이들은 강 씨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곧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지난 14일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강 씨.지난 14일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강 씨.


몇 개월 뒤, 강 씨 앞으론 1100여만 원의 세금을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모르는 사이 강 씨는 한 회사의 등기이사로 등록돼있었고, 42대의 법인 차량의 주인이 돼 있던 겁니다. 하지만 강 씨는 세금을 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적반하장으로 수사기관에선 밀린 세금과 자동차를 방치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신청도 막혔고, 파산과 회생절차로도 내지 못한 세금을 없애진 못했습니다. 강 씨는 결국 '소송'을 택했습니다.
강 씨에게 부과된 세금 목록강 씨에게 부과된 세금 목록

강 씨에게 부과된 자동차세 등 목록. 총 1100여만 원에 달한다.강 씨에게 부과된 자동차세 등 목록. 총 1100여만 원에 달한다.

■1심 "명의 도용당했다고 어떻게 믿나"
강 씨는 2020년 6월 용산구청과 평택시 등 세금을 부과한 지자체 3곳을 상대로 세금 부과가 무효이고,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평택시장은 차량 40대가 강 씨의 소유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강 씨에게 부과된 세금을 모두 직권으로 취소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강 씨가 명의를 도용당해 차량과 법인의 주인이 됐다는 걸 확인해준 것이 근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용산구청은 강 씨가 세금을 내야 한다며 끝까지 소송을 이어갔습니다.

1심은 강 씨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용산구에 강 씨 이름으로 등록된 차량 2대 등에 대해 부과된 세금 약 5백만 원을 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강 씨가 성명불상의 사람들로터 일정한 돈이나 숙식을 제공받고 그들에게 자기 명의로 중고차를 취득하는 것을 허락했을 가능성이나, (중략)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말에 속아 중고차가 필요하단 말을 믿고 명의를 사도록 허락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1심 판결문 중)

강 씨가 명의를 도용당했다는 걸 인정하기엔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겁니다. 또 강 씨의 명의가 도용당했다고 하더라도 세금은 서류상의 '소유 명의'를 기준으로 소유 여부를 판단하고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 씨가 자동차 소유주로 등록돼있는 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봤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항소심..."세금 다 내라고 하는 건 가혹해"
강 씨 측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2016년 3월과 2018년 9월, 이미 두 차례나 수사기관으로부터 차량 은닉, 자동차 관리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혐의가 없다는 점을 확인받은 바 있었습니다.

강 씨 측은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그리고 1심 판단으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지난 12일 법원은 강 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강 씨 앞으로 부과된 489만 7820만 원의 세금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판단의 기준은 1심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강 씨가 속아서 서류를 제공하고, 그 사용처를 알지 못한 이상 자동차가 강 씨의 명의로 등록돼있다는 이유 만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강 씨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2심 판결문 중)

재판부는 "강 씨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이 현저하게 부당하다"고 봤습니다. 또 "세금을 부과한 데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 현저하게 크면 이를 당연무효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강 씨 측은 판결을 반기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힘들었던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강 씨는 "그동안 바위에 계란을 쳐야 하는 기분이었다"며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강 씨 측 대리인인 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는 강 씨와 같이 명의도용으로 큰 피해를 본 비슷한 사례가 정말 많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사기 피해에 더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법원은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립 의지를 이런 식으로 꺾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강 씨 측 대리인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강 씨 측 대리인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

소송에서 이겼지만 싸움이 다 끝난 건 아닙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이번 소송은 세금 처분이 유효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김 변호사는 "이 세금으로 인해 압류된 건 풀리겠지만, 대부업체나 금융기관들에 의해 압류된 자산들은 또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용산구청이 불복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판결문 내용을 검토해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며 "아직 판결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용을 더 파악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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