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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총탄에 목숨 잃어…'고 김오랑 중령' 비극의 가족사

입력 2021-11-25 20:11 수정 2021-11-25 23:08

"전두환, 하늘에서라도 삼촌 만나면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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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하늘에서라도 삼촌 만나면 사과하라"


[앵커]

이번엔 12.12 군사반란의 피해자들 이야기입니다. 전두환 씨의 사망 소식에 이들 역시 원통해했습니다. JTBC가 당시 신군부에 의해 희생된 군인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전 씨가 하늘에서라도 피해자를 만나면 꼭 사과하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송우영 기자입니다.

[기자]

취재진을 만난 고 김오랑 중령의 조카 김영진 씨는 먼저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끝내 전두환 씨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김영진/고 김오랑 중령 조카 : 죽은 사람들한테라도 참 미안하다든가, 죽기 전에라도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죽었으면 전부 다 지금 이렇게 전부 울분 안 터질 거 아닙니까?]

1979년 '12·12 군사 반란' 당시 35살이던 김 중령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습니다.

당시 쿠데타를 일으킨 뒤 정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던 신군부 세력에 맞서다가 사살됐습니다.

[김영진/고 김오랑 중령 조카 : 삼촌도 안에서 (반격) 사격을 했고. 권총을 여섯 발인가 쐈다고 하니까. 삼촌은 (정병주) 사령관을 지키기 위해서 같이 있었던 거고.]

김씨는 "김 중령의 죽음과 함께 가족들의 삶도 파탄났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진/고 김오랑 중령 조카 : 우리 부친은 그 소리(사망 소식) 듣고 나서는 딴 그것 없이, 희망 없이 매일 막 술을 그렇게 많이 드시고 하더니만 결국 (돌아가셨어요.)]

충격에 실명까지 한 김 중령의 아내도 오래 전 사망했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배상 소송을 하던 1991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김 중령의 고향인 김해시에는 2014년 '참 군인 김오랑 흉상'이 세워졌습니다.

김씨는 "끝내 전두환의 사과를 못 받은 게 한"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영진/고 김오랑 중령 조카 : 삼촌 살아 계셨으면 내가 얼마나 더 좋았겠노. 근데 참 전두환은 죽어 버리고. 삼촌 있는 데로 갔으니까 거기서 만나면 그때 뭐라고 하든가 해라.]

(PD : 라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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