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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국민 문맹률 80%라 군부독재는 숙명이었다?

입력 2021-11-01 21:19 수정 2021-11-0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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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제(30일)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나온 추도사가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문맹률이 80% 수준이라 육사 출신 엘리트들이 나라를 통치할 수밖에 없었단 취지의 말이었는데요. 국민들이 무지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군부 독재로 이어졌다는 논리도 문제지만 역사적인 사실로 봐도 틀린 주장입니다.

팩트체크팀, 최재원 기자가 따져봤습니다.

[기자]

노태우 정부에서 일했던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노재봉/전 국무총리 (10월 30일) : 국민의 문맹률이 거의 80%에 해당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통치 기능에 참여하게 되는… 1기생 장교들의 숙명이었다.]

과거 국민 문맹률 80% 수준이던 상황에서 노태우, 전두환 등 육사 1기(육사 11기·정규 1기) 장교들이 통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문맹률 80%, 언제를 말하는 걸까.

의무교육 수준이 낮고 한글 교육이 금지됐던 일제강점기 때 얘기입니다.

1930년 일본 국세조사 결과 조선인 문맹률 77.7%였습니다.

하지만 1945년 광복 직후, 대대적인 문맹퇴치 사업이 벌어지며 문맹률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시기 문맹률은 41.3%로 낮아졌고, 1950년대에 한 자릿수로 내려갑니다.

노태우, 전두환 등 육사 1기가 졸업한 1955년만 봐도 문맹률 12% 수준입니다.

[대한뉴스 제348호 (1962년 1월 20일) : 우리는 문맹자로 인해서 국가적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다 같이 힘써 나가야겠습니다.]

의무교육 취학이 90%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문맹률을 조사할 필요성이 사라져 1970년 이후 조사 자체가 한동안 중단되기도 합니다.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1979년은 문맹률 걱정이 이미 다른 나라 얘기가 된 시점입니다.

문맹률을 내세워 군부독재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는 겁니다.

이미 1960년에는 이승만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4.19 혁명이 있었습니다.

노재봉 전 총리가 '엘리트'라고 표현한 육사 1기들이 졸업 후 일선 군부대에서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5.16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시작된 건 다음해인 1961년입니다.

군사독재 전부터 우리 국민은 문맹을 극복했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는 겁니다.

(화면출처 : e영상역사관)
(영상디자인 : 허성운)

※'노태우, 전두환 등 육사 1기'란 표현은 정확히는 '육사 11기·정규 육사 1기'란 점, 보완 반영합니다.
※JTBC 팩트체크는 국내 유일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 인증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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