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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주도·광주 진압…'보통사람' 내세워 1인자로

입력 2021-10-26 20:03 수정 2021-10-2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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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 개인의 별세 소식은 그 자체로 애도해야겠지요. 다만 그것이 생전 남긴 '과오'를 가릴 순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 노태우 씨는 쿠데타를 이끈 신군부의 2인자이자 광주 유혈 진압의 장본인입니다. 그렇게 잡은 권력으로 주요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6.29 선언으로 직선제가 도입된 뒤엔 야권 후보의 분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대사의 '그늘'이었던 그의 인생을 김필준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의 중심에는 전두환, 노태우 두 육사 동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신군부'는 이듬해 광주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했습니다.

그렇게 출범한 전두환 정권에서 노씨는 장관, 여당 대표 등을 지내며 2인자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당의 대선 후보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터져 나왔고 6월 항쟁의 끝에 노씨는 결국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6·29선언을 발표합니다.

이어 대선을 앞두고 내건 '보통 사람' 이란 슬로건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전직 대통령 노태우 : 이제 온 세상은 이제 민주화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민주화, 참 좋지요. 얼마나 좋습니까? 민주주의의 물결이 엄청나게…]

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노씨는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임기 중엔 '5공 청산' 요구를 받았고, 전임자이자 친구인 전씨를 백담사로 보내야 했습니다.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진행되면서 전씨와 함께 나란히 법정에 서는 처지가 됐습니다.

대법원은 쿠데타를 주도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혐의 등을 인정해 징역 17년,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으나 전직 대통령의 예우는 박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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