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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화제작' 정준영 팬이 만든 '성덕' 이 시대 모든 팬 위한 위로

입력 2021-10-11 14:10 수정 2021-10-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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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 26회 부국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성덕' 뜨거운 화제
| '정준영 팬' 출신 오세연 감독, '박사모'까지 담아낸 패기
| "분노에서 시작…흑역사, 백역사로 바꾸고파"

"제가 좋아했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이제 모르겠어요. 먼 미래에도 행복하게,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네요. 그게 진정으로 성공한 덕후 아닐까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스타가 아닌,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었던 나, '팬'의 존재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된 '성덕(오세연 감독)'이 올해 부국제에서 뜨거운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감독의 소개에서 알 수 있듯 '성덕'은 과거 정준영이 알고 있을 정도의 정준영 팬이었던 오세연 감독이 충격적인 실망과 분노에 휩싸여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슷한 팬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누구도 반박못할 현실 다큐는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동반한다.

연예면을 넘어 사회면에 등장한 나의 스타로 인해, 좋아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모든 추억도 흑역사로 바뀌어버렸다. 사고친 스타 한 명에 상처받은 팬들은 과연 몇 명일까. 오세연 감독은 일명 '팬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속에서 '팩트에 의한 공감과 위로'에 집중한다.

혹자들은 단순하게 "그러게 연예인을 왜 좋아하냐"며 비아냥거리지만 감정이란건 그렇게 간단치 않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일단 내 스타를 믿어보려 하지만, 흐름의 결과 결국 그러했던 나에게 내가 실망하는 구조다. 돌고 도는 분노의 방향성을 누구도 쉽게 알아줄 리 없다.

그런면에서 '성덕'은 결코 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누가 어떤 사고를 쳤다'는, 이미 사실로 확인 된 무쓸모한 존재들을 조명하지 않는다. '나는 상처 받은 적 있는데, 혹시 너도 그랬니? 지금은 어떻니'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번쯤은 필요했던 대화의 창구가 되어준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오세연 감독은 소재에 의한 소재를 위해 무조건적인 발품을 팔기 보다 본인은 물론, 익히 잘 알고있는 주변 지인들을 등장시킴으로서 투박하지만 진짜 다큐멘터리의 묘미를 보인다. 조민기 팬으로 소개되는 모친의 이야기는 아찔한 탄성과 뭉클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더 나아가 탈덕하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들어보고자 '박사모'를 찾아가 환기시키는 분위기는 그저 가벼운 재미를 위한, 시시콜콜한 가십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님을 확인시키기도 한다. 박장대소부터 눈물까지. 올해 가장 화려한 리액션이 터졌던 작품으로 기록 될 전망이다.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당초 한 회차 상영을 예정했던 '성덕'은 11일과 13일에도 관객들을 만난다. 이와 관련 담당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이 공개되기 전부터 SNS를 통해 이미 기대작으로 소문이 났던 것으로 알고 있다. 티켓도 일찌감치 매진됐다"며 '성덕'의 실질적 인기를 언급했다.

'성덕'을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고루하고 진중하고 재미없는 장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면에서 이 작품은 새로운 세대의 감독이 이전 다큐멘터리가 어떤 형식이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만든 신선함이 돋보였다"고 평했다.

이어 "프로래머 입장에서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재미있는 영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큐 장르에서도 흥행 스코어가 대박나는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성덕'이 그러한 영화가 되어주길 희망한다"고 애정했다.

다음은 오세연 감독 관객과의 대화(GV) 일문일답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정말 마음에 와 닿는 영화였다. 실례가 안된다면 감독님의 휴대폰 뒷자리나 비밀번호가 여전히 0221(정준영 생일)은 아닌가.
"되게 예리하다.(웃음) 팬 분들은 다 알 것이다. 처음엔 오빠의 생일, 나만 생각하는 오빠와 나의 기념일 등 날짜로 모든 중요한 비밀번호를 등록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제일 익숙한 숫자여서 찾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최근까지도 그 숫자를 썼는데, 0과 1, 2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어 1221로 바꿨다. 이렇게 말해버려서 다시 또 바꿔야 할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궁극적 이유와, '성공한 덕후'의 성공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내 감정은 '분노'였다. 너무 화가났고 '내가 만들 수 밖에 없는 영화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아직도 남아있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응원하고 좋아하고 지지할 수 있지?' 싶어 사실 그 분들을 만나보는 것이 첫 목표였다. 근데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정말 그 분들과 다른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더라. 그 분들을 만나도 비난하고 조롱하는 마음 밖에는 안 들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팬 분들을 응원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분들의 목소리는 그냥 이 영화에 안 담는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으로는 그 분들도 안타까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도 싫었고, 특히 '정준영 아직 좋아한다, 돌아와라'라는 목소리가 피해자 분들에게는 2차 가해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 상처받은 팬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면 남아있는 분들에게도 보이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마음은 촬영을 하면서 바뀐 것인가.
"맞다. 애초 계획과는 달라졌다. 2019년 3월 사건이 터진 후 마음을 추스리고 4월, 5월부터 기획해 최근 완성 했으니까, 결정적으로 바뀐건 지난해였다. 코로나도 있었고, 생각할 시간도 많아져 정리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 흑역사를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지.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일단 흑역사를 갖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혹시나 누가 나에게 '야, 너 정준영 팬이었더라?' 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그래, 나 팬이었다. 어쩔래!' 하는게 낫지 않나 싶었다. 하하. 백역사로의 전환이랄까? 친구들에게도 많이 어필했다.(웃음) 그리고 인터뷰는 물론 우리 엄마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내 친구들이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 공감하기 쉬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더 많아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왜 부끄러워 해야 하지? 죄 지은 놈이 부끄러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흑역사이기는 하지만 '이거 좀 재미있긴 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추가 편성이 시급할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정준영 사건을 첫 보도했던 기자를 만난 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넓어진다. 이전까지는 또래 아이돌 팬층에 집중했다면, 그때부터 일명 '박사모'로 지칭되는 박근혜 지지자들을 조명한다. 영화가 산으로 가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전환하는 과정에서 고민은 없었나.

"처음부터 '박사모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남아있는 팬 분들과 박사모가 겹쳐보이는 지점이 있더라. 다만 '내가 이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장 오랫동안, 깊게 했다. 편집을 하면서도 계속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굳이 내레이션으로 말하지 않아도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니까. '오히려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 그런 방향으로 편집했다."

-서울역 앞에서 찍힌 분들은 이렇게 등장한다는 것을 알까.
"일단 내가 정준영 팬이어서 거기에 갔다는건 모른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는 건 알았다. 유튜브에 굉장히 올라가고 싶어 하셨는데(웃음) 촬영하고 있다는건 인지를 하고 받아주셨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상 검증도 당하고. 하하. 촬영을 하고 있는데, 같이 촬영하러 간 언니와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여!' '문재인 대통령 아니에요?' '박근혜잖아!' 식의 대화도 하더라.(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학교 내부 피드백은 어땠나.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과라 하더라도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가르쳐주는 수업은 없다.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후에는 학교를 3학기까지만 다니고 쭉 휴학한 채 혼자 했다. 학교에서의 어떤 피드백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정도였다. "


-굿즈는 다 버렸나.
"그게! 내가 굿즈를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하하. 여러분, 사실 그렇다. 우리 영화에 굿즈들을 소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굿즈의 행방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다만 영화감독으로서 혹시라도 그때 촬영한 촬영본이 날아가버리면 어떡하지 싶어 보험처럼 뒀다. 이건 정말 변명이 아니다. 캐리어 하나에 다 넣어서 마법의 다락에 넣어놨다. 만약 '성덕2'를 만들게 된다면 불태우는 장면을 찍겠다. 결론은 안버렸다."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이 아무래도 팬들의 이야기 담다 보면 좋은 이야기만 나오는건 아니다. 명예훼손이나 그런 것들은 걱정되지 않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고 '자기 전에 누가 날 후려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아주 없는건 아니다. 법적 자문을 안 받아본 것도 아닌데. 이런 영화가 나온 적이 없으니까 변호사 분들도 당황하시더라. 주변에서는 '정준영에게 고소 당하면 '성덕2'를 찍어라'라고 하는데, 정준영의 과거 팬으로서 오로지 정준영만 생각해 본다면 부끄러워서 고소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영화제 자리가 아니면 보여드리기 힘든 영화라는 생각도 한다. 지금 말했던 여러가지 부분들 때문에도 그렇다. 그래서 부국제에 더 감사하고 방법은 계속 고민하도록 하겠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영화 '성덕'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어딘가에 있는 정준영 씨가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싶은지, 오랫동안 지켜 봤으니까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 것 같은지 말씀 부탁한다.
"음…. 그분들이 보고 '각성했으면 좋겠다' '보고 반성해라' 그런 마음보다는 궁극적으로 팬들을 위해 만든 영화다.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팬 분들이 보고 어떤 반응 보일지' 그걸 가장 최우선으로 염두했다. 뭐 그 분은 보든 말든 상관 없지만, 만약 본다면…. 근데 반응을 상상한다는건 이제 너무 어렵다. 내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지 않았나. 내가 상상하더라도 다를 수 있고 이제는 함부로 그런 상상들을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만약 본다면 살짝 눈물 흘리면서 '하, 팬분들 죄송하다' 했으면 싶다. 근데 그걸 공개적으로 알리지는 말기. 그냥 혼자 조용히 살아가기."

-다큐를 웃으면서 볼 수 있다는게 행복한 경험이었다. 기차 신이 많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다녔는지 궁금하다.
"내가 기차 타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서울·부산 오가면서 지내야 하다 보니까 평소에도 많이 타기는 한다. 이번에 촬영하면서는 처음 기차 탔을 때가 생각나더라. 그 사람을 생각할 때도 있고, 나를 생각할 때도 있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보니까 혼자 앉아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다녔다. 그래서 기차에서 쓴 대사를 실제 내레이션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를 '기행문'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다. 내가 나와 같은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동하는 장면들을 여러 번 넣게 됐다."

-아이돌 팬 문화. '덕질'이라고 하는 것은 긍정적 면도 있지만 그것 자체에 대한 안 좋은 시선도 많다.
"덕질의 부정적인 면은 다양하다. 이제는 정말 엄청나게 큰 문화가 됐으니까. 당연히 여러가지 나쁜 점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내가 굳이 이 영화에서 그런 점들까지 다루지 않은 이유는 그 이야기는 조금 다른 내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팬들 내부적인 문제 보다는 지금은 스타의 문제에 따른 그 뒤의 팬들에 대한 영화이다 보니 그런 부분들은 다루기가 애매했다."

-한 회 상영이 아쉽다. OTT나 정식 개봉에 대한 계획은 없나.
"SNS에서도 인기가 아주 폭발이었다는 것을 잘 안다. 많이 돌아다니더라. 하하. 아무래도 부국제에서 전 세계 최초로 상영을 했다 보니까 개봉 논의까지 진전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개봉하려고 노력 중이다. OTT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당분간은 부국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하게 될 것 같다. 지금 당장 어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작사 SNS를 통해 가장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이렇게 많은 분들과 내 영화를 보는 경험이 처음이다. 너무 감동적이었다. 사담을 말하자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국제에서 시민 평론단으로 활동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내 영화를 상영하게 됐다. 내가 진정한 '부국제의 성덕이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부산=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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