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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BIFF' 임권택 감독 "압박 받아도 좋았던 영화…이젠 놓아줄 때"

입력 2021-10-07 19:06 수정 2021-10-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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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BIFF' 임권택 감독 "압박 받아도 좋았던 영화…이젠 놓아줄 때"

영원히 기억 될,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임권택 감독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한국인 최초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The Asian Filmmaker of the Year)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1962년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를 시작으로 102번째 영화인 '화장'(2014)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며 아시아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한국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2002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2005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사에 이름을 뚜렷이 새겼다.

이날 간담회에서 임권택 감독은 "끝난 인생"이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할 정도로 영화와의 거리감을 두려 했지만, 평생을 영화 감독으로 살아온 만큼 애정은 곳곳에서 묻어났다. 걸출한 후배 감독들의 등장과, 세계적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성장과 발전에 누구보다 기쁜 마음을 표한 것이 바로 임권택 감독이다.

특히 임권택 감독은 기념비적인 자리를 빌어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직접 전하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은 "한번도 칭찬을 안해서 늘 꾸중을 많이 듣고 사는 우리 집사람에게 이런 자리에서 처음으로 칭찬을 하고 싶다. 신세 많이 졌다. 수입도 별로 없어서 넉넉한 살림 아닌데, 잘 견뎌줘 아직도 내가 영화감독으로 대우 받고 살 수 있게 해줬다"고 고백, 현장을 찾은 아내의 눈시울을 붉혔다.

간담회 초반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을 하더라도 '아, 늙은이가 저 모양이 됐구나'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겼던 임권택 감독. 마이크를 잡은 손은 떨려도 영화에 대한 열정과 내공은 사라지지 않기에,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여러 번의 폭소와 감동을 자아낸 입담은 모두에게 빛나는 존경심을 표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임권택 감독과 일문일답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 소감을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누구든 받으면 좋은 것이 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영화를 만들어 또 어디에 출품해서 상을 받아야 할 환경에 살고 있지는 않다. 끝난 인생인데(웃음) 그럼에도 상을 받게 됐다. 상이라는 것이 받는 사람들에겐 격려가 되고 위안이 되고 또 노력할 수 있는 분발심을 갖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끝난 인생에서 공로상 비슷하게 받은 것 같아 좋기도 하지만 더 활발하게 생이 남은 분들에게 가야 할 상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혹시 차기작을 구상 중인가.
"이제는 내가 아무리 친해지고 싶어서 간절해도 스스로 영화로부터 멀어져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100여 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남겼지만, 직접 찍지 못해 아쉬운 작품이 있다면.
"어지간한건 다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못 찍은 것은 우리 무속, 한국 사람들의 종교적 신성 안에 무속이 주는 것들을 영화로 한번 찍어 봤으면 싶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사양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관객들이 영화를 다시 많이 찾게 될까.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한다. 심심해지면 그래도 영화관이 제일 시간 보내기 좋고 위안 받기 좋은 매체니까. 영화가 생긴 이래 쭉 그래왔다.(웃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장애를 받고 있지만 극장에 가고 싶어하는 심정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좋은 영화만 양산되면 언제라도 호황을 맞을 수 있는 것이 영화가 아니겠나 생각한다."

-개막식에서 후배 임상수·봉준호 감독이 시상을 맡았다. 후배 감독들을 보는 소감은 어떤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를 보면서 나 스스로도 그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짜증나는 구나' 하는 허점들이 있었다. 근래에는 거의 그런 허점이 보이지 않고 (후배 감독들이) 꽤 완성도 높은 영화들을 내고 있다. 한국 영화에 대해 불만없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무래도 '얼마나 완성도 높게 제작됐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신경쓰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영화도 이제는 세계적 수준에서 별로 뒤쳐질 것이 없는 것 같다."

-'기생충'을 보고 너무 좋아서 봉준호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고 들었다.
"너무 좋았으니까.(웃음) 그간의 내 영화도 그렇지만, 늘 우리 영화를 보면 완성도면에서 어떤 불완전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미흡했던 것이 사실인데, 봉준호 감독 같은 분들의 영화가 상당히 완성도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젠 '우리 영화도 좋아지고 있다'를 넘어 '세계적 수준에 들어가 탄탄하게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안심이 되겠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 그래서 돈 가진 제작자를 쉽게 작살내는게 또 영화다. 하하. '제작자 죽이기'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영화들이 내가 했던 때보다는 요즘 덜 한 것 아닌가 싶어 안심스럽다."

-지금까지 영화 인생을 되돌아 본다면.
"내 역량은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상을 타오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있었다. 여기 계시는 분들도 압력에 가세해서 사람을 고달프게 했다. 하하. 그런 것이 영화 인생을 너무 쫓기면서 살게끔 만들지 않았나 싶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영화를 즐기면서 찍었어야 하는데, '너무 고통 안에서 작업을 했구나' 싶더라. 내 책임은 아니고 다 여러 분들이 기여한 셈이다.(웃음)"

-'취화선'으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쥘 때 마음이 조금은 놓이지 않았나.
"마음 놓인다기 보다 빚진 것 같았다. 잔뜩 기대를 보내고 있는데, 내 능력으로는 안된다는 열패감 이런 것도 있었고. 그러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그나마 체면이 서게 됐다. 영화제, 수상이라는 것이 나를 옥죄었던 것 같다. 영화 인생을 조금 더 훨훨 살았으면, 내 작품도 훨훨 활기로웠을 것 같은데, 맨날 상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지나갔으니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도 잘 지내왔다.(웃음)"

-20대 신인감독 임권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나이 들고나서 어떤 젊은 패기로 산 나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웃게 된다.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고 '참 많이 까불고 살았네' 하면서 웃는 것이다. 무엇인가 착각했기 때문에 헛바퀴 돌면서 살지는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코스를 잡았나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뭐 이런 정도를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인생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준 동료는 누구인가.
"한번도 칭찬을 안해서 늘 꾸중을 많이 듣고 사는 우리 집사람. 처음 이런 자리에서 칭찬하고 싶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웃음) 수입도 별로 없어 넉넉한 살림 아니었는데, 잘 견뎌줘서 아직도 영화 감독으로 대우 받고 살게 해줬다. 우리 마누라에게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린다. …울 줄 알았더니 안 우네. 하하."

-영화 인생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를 한다면.
"102편을 찍은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나를 죽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다.(웃음) 그럼에도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화가 좋아서, 그거 좇아 살았던 사람이다."

부산=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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