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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로서 한계 또 한번 깬 '더로드' 김혜은

입력 2021-09-20 08:42 수정 2021-09-2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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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은김혜은
배우 김혜은(48)이 배우로서 한계를 다시 깼다. 마지막까지 몰입도 높은 연기로 시선을 압도했다.


김혜은은 지난 9일 종영된 tvN 수목극 '더 로드 : 1의 비극'에서 야망녀 차서영 역을 소화했다. 극 중 아들을 유괴당해 사고로 잃었음에도 자신의 명예와 사회적 위치를 지키기 위한 인간의 극한 이기주의를 보여줬다. 캐릭터의 감정 변주를 탁월하게 그려내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자랑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김혜은은 아나운서로서 못다 한 꿈도 이뤘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97년 청주 MBC 아나운서로 데뷔,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던 김혜은. MBC 퇴사 후 2007년부터 배우로 전향해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상황. 15년 만에 돌아온 뉴스로 현실감 높은 연기를 펼쳤다.

 
김혜은김혜은
김혜은김혜은
-'더 로드' 종영 소감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작품이라 아직까지 여운이 많이 남은 것 같다. 끝났는데도 돌려보기를 하면서 내 연기가 부족하고, 여전히 작품 중인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11부를 봤다가 3부를 봤다가 하면서 '왜 연기를 저렇게 했지?'라며 보고 있다."

-앵커석에 앉았을 때 감정이 벅찼을 것 같다.

"진짜 내 인생이 그려지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성악을 그만두고 뉴스 앵커가 됐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다. 청주에서 아나운서에 붙고 서울 본사에서 기상캐스터를 하고 나서 만약 내가 원했을 때 9시 뉴스 앵커가 됐더라면 지금의 배우 김혜은이 있었을까 싶다. 인생은 참 살아볼 만한 것 같다."

-헤어스타일은 물론 메이크업, 액세서리까지 화려함을 추구하는 차서영 캐릭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차서영 역할이) 처음에는 화려하고 패셔너블하게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2회에서 죽다 보니 계속 상복을 입고 있고 이후의 상황이 감정적으로 붙어있어서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날짜들이 붙어서 D-5까지 나오고, 드라마 12회 중에서도 날짜가 쪼개져서 시간이 빠르게 넘어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의 블랙으로 변화를 줬어야 했는데 캐릭터 특성상 블랙만 입을 수 없어서 블랙 안에서 차서영에게 맞춰 어떻게 변주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컬러감을 줄 수 있는 역할이 나 하나이지 않나. 그래서 컬러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떤 점에 집중해 연기했나.

"이 여자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처음에 대본을 딱 받았을 때 '이런 여자가 세상에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도 연기를 하는 배우가 캐릭터를 잘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차서영을 담느라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이들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고, 그 일이 내 연기를 살리는 계기가 됐다."

-자연스럽게 차서영 캐릭터에 공감해 더욱 몰입도 높은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학대받다가 죽은 아이가 만약 목숨을 부지해 잘 살았다 하더라도 바르고 중심을 갖춘 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어쩌면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성공을 지향했거나, 그 성공도 균형 잡힌 것이 아니라 그냥 인정받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학대를 받았다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차서영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불쌍한 여자이지 않나. 모든 게 도구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한 영혼을 두고 상상을 해봤다. 아이가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살았다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성공이지 않았을까. 학벌, 좋은 직장,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앵커의 자리라면 학대당하고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지 않나. 그런 아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뭐든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아이가 자라온 과정을 상상하면서 어른이 된 차서영, 아이 차서영을 연결해 보니까 이해가 됐다."

-2회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과 자신의 욕망 사이 괴리감을 연기할 때 소름 끼치는 연기란 호평이 이어졌다.

"차서영이라는 캐릭터는 장면마다 난관이 있었다. 가장 진정성 있어야 하는 것은 아들을 외면하고 자기만을 아는 엄마였지만, 부검을 하기 위해 부검대 위에서 아들을 발견했을 때 차서영의 마음이 어땠을까 가늠하는 게 참 어려웠다. 나 같았으면 당연히 하늘이 무너져 내렸겠지만, 내가 아닌 차서영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은 그 울음이 차서영의 이후 상황을, 차서영이라는 인물에게서 자식에 대한 존재감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마저 쇼를 하면서 자식 앞에서 울면 기본적으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연기를 하고 싶지도, 연기를 하는 의미도 찾을 수 없겠더라. 그래서 복수심을 담은 울음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서영이 백수현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삐뚤어진 사랑이긴 하지만 그 사랑을 붙잡아 두고 싶어 아이를 담보처럼 남자를 붙잡기 위한 수단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근데 백수현에 대한 분노, 적대심 같은 감정들을 섞어서 내가 연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 한계로 다가왔던 부분이다. 그런데 그 장면이 한 번에 오케이 됐다. 배우로 살면서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는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전작 '우아한 친구들'의 강경자 캐릭터와 '더 로드'의 차서영이라는 인물 모두 각기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강경자는 그냥 멋있는 캐릭터였다. 내가 아닌 다른 누가 했어도 박수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 강경자 캐릭터를 할 수 있어 감사했다. '더 로드' 같은 경우는 글쎄, '이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몇이나 있을까?'란 생각부터 들고 처음부터 '왜 나지? 왜 내가 해야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운명적으로 다가온 숙제 같은 작품이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피하지 말고 내 인생의 숙제라고 생각하면서 풀어나가 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연기할 때 힘들었지만 그만큼 자신감도 얻었던 것 같다. 자신감을 얻었어도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데 막막하긴 마찬가지더라."

-지진희, 윤세아, 안내상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거나 영향을 받은 점이 있다면.

"지진희 선배는 진짜 존경할만한 점이 많다. 체력도 좋고 정신력도 좋고 긍정적인 마인드도 좋다. 무엇보다 배우고 싶었던 점은 에너지를 쓸데 쓰고 저축할 때 저축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탁월하다는 지점이었다. 대립하는 장면이 많아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돼서 많이 친해지지 못한 게 아쉽다. 안내상 배우가 남편이라 감사했다. 편하게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 늘 상대 배우들한테 영향을 받는다. 에너지 좋은 배우한테는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선순환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상대 배우가 누군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더 로드 : 1의 비극'이란 작품은 어떻게 기억될까.

"내키지 않았으나 무척 고마워하게 된, 애착하게 된 작품이다. 배우로서 내 한계나 내가 채워야 할 것을 드러나게 하고 그걸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 작품이다. (제안을 받고 겁이 났지만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했던 캐릭터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김혜은김혜은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더 로드'를 찍으면서 느낀 게 있다. 성공에는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이타적인 성공은 너무 힘들고 고생을 하면서도 서로 다 같이 박수를 쳐주고 기뻐한다. 이기적인 성공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성공을 자기 혼자 성공했다고 스스로 기뻐한다. 과정 중에 있는 팀원 전체가 사실은 이게 이기적인 성공인지 이타적인 성공인지 다 같이 알게 되고 그 과정에 서로 박수칠 수 있는 성공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는.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는 굉장한 푼수 엄마, 못 말리는 엄마, 똑똑하지 않고 자식들한테 엘리트 엄마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엄마의 삶이 아이들한테 삶의 원천이 되는 부지런한 농부 같은 엄마, 잔소리하고 훈계하는 그런 엄마가 아니고 매일 노동의 대가를 하는 엄마, 그런데 말할 때 보면 욕도 잘하고 그런 엄마 있지 않나. 일하는 엄마가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든 해내는 과정, 힘들어서 짜증도 내지만 힘든 과정을 해내는 모습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 그게 교육인 것 같다. 무슨 책을 읽고 점수를 몇 점 받는 이런 것보다 내가 난관이나 불가능한 일을 마주했을 때 나의 태도가 과연 어떠할까를 자식들이 보는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것들이 나중에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예전부터 더는 그려진 게 없었다 그냥 내가 살아가는 과정은 필모그래피가 이야기해준다 생각한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쉬운 작품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내가 해야겠다고 판단되면 마주해왔다. 좋은 역할, 좋은 이미지,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이미지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작품들에 이미 해탈했다.(웃음) 내가 했던 캐릭터 중에 좋은 역할이라고 하면 '이태원 클라쓰'의 강민정 캐릭터인 것 같다. 그런 작품만 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작품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인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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