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배출량 '유지' 성공해도 935조원 손실

입력 2021-09-13 09:32 수정 2021-09-13 09:3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6)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트위터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6)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초안을 두고도, 최근 통과된 탄소중립 기본법에 담긴 2030년 감축 하한선(2018년 대비 최소 35%)을 놓고도 산업계에선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저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이유 때문일까요. 나름의 방식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없다는 판단도 한몫했을 겁니다. 충분한 이익이 눈앞에 보인다면, 경영자에게 '부족한 시간'은 한낱 핑계에 불과할 테니까요.

과연, 그 셈법은 맞았을까요? 기업들이, 산업계가 2030년 35% 감축에 반발하고,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상의 산업부문 배출량에 반발하게 된 '금전적 이유'는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 기업들이 각자 판단한 '숫자'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니, 이를 '검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런데, 이 계산을 한 결과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한국 경제가 기후위기로 입게 될 경제적 타격이 액수로 구체화한 것이죠.

#온실가스_유지어터_성공해도_수백조_손실
232조원. 우리가 지금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그대로 유지할 때, 2050년까지 발생할 경제적 손실의 규모입니다. 앞으로 30년간 해마다 평균 GDP의 0.4% 손해를 보는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인 2070년엔 손실 규모가 무려 935조원으로 늘어납니다. 2070년 예상 GDP의 2.5% 수준입니다.

 
(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


“우리가 아무 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 경제적 손실이 이만큼이나 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거의 해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어만 갔죠. 2018년, 역대 최고점을 찍은 이후 조금씩 배출량이 줄었다곤 하지만 그러한 '미미한 감소세'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 덕분일지, 코로나로 인한 경제활동 감소에 따른 것일지 해석은 분분한 상태고요.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2050년 232조원, 2070년 935조원이라는 손실액은 앞으로 30년 넘는 시간 동안 '배출량을 유지'할 때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엔 이 숫자는 '더블' 그 이상이 될 겁니다.

“도대체 어떤 NGO가 기업들 목을 죄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내놓은 거냐”, “Economy의 E자도 모르는 작자의 주장”이라고 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수치는 글로벌 회계 및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가 내놓은 결과입니다. 딜로이트 경제연구소는 기후변화 경제보고서인 '아시아 경제의 터닝포인트: 기후행동은 어떻게 우리의 미래 경제를 이끌 수 있을까'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위의 숫자는 그중 '한국 경제의 터닝포인트'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물론, 글로벌 회계 및 컨설팅 그룹의 '셈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여전히 있을 겁니다. 충분한 연산 능력과 모델링 프로그램, 뛰어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컴퓨터를 갖고, 각종 경제적 지식을 갖춘 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935조원_손실을_부르는_것은
딜로이트는 “대부분의 경제적 사고는 사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경제 예측들은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 노력을 설명하지 않고 있고,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배출집약적 성장에 대해 딜로이트는 “한국은 농업 집약적 국가에서 기술 혁신의 글로벌 선도국 위치에 이르기까지 빠른 성장과 경제의 변화를 경험했다”면서도 “이러한 변화로 인해 경제적 발전 측면에서의 큰 성과를 이뤘지만 그만한 대가가 뒤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21세기 들어 에너지 수요는 55%나 증가했는데, 그 대부분을 화석연료로 충당하게 됐다는 겁니다. 결국 지구에서 11번째로 가장 많이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나라가 됐고요.

최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강화 입장에 대해 재계에선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 중심의 환경에서 한국 산업의 감축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업부문의 온실가스가 늘어나는 데에는 이런 다배출 업종만의 영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딜로이트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에너지 수요는 21세기 들어 70% 가까이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수요의 대부분은 화석연료로 충당했고요. 기후위기 대응에 발 빠르게 나선 EU라고 제조업에 손 놓고 있는 지역이 아니죠.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업종을 '감축 못 하는 이유'로 삼는 것은 적확하지 않은 겁니다.

 
(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


그렇다면, 앞으로 50년 동안 935조원의 손실을 부르게 될 우리의 '선택'들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금의 배출집약적 산업구조가 유지되면 그 결과는 바로 기온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생산 요소에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노동자의 업무 및 생산성이 악화되는가 하면, 사망률과 질병률이 높아지고, 갑작스러운 폭우나 가뭄이 반복되면서 토지 생산성이 ㄸ?ㄹ어지고, 집이나 공장, 인프라 등 기존 자산을 복구하는 데에 돈과 시간이 투입되면서 새로운 투자가 어려워집니다.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입니다.

이러한 935조원의 손실 중 절반가량은 서비스 업종에 집중됩니다. 딜로이트는 향후 50년간 한국 경제가 입게 될 손실이 서비스업의 경우 445조원, 제조업은 190조원, 소매 및 관광업은 1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


딜로이트는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 경제의 충격으로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심각하게 고전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직접적인 손실뿐 아니라 그에 따른 보험, 보건의 문제가 생기고, 그러한 손실과 관련된 기업이나 금융 서비스까지 손실이 이어진다는 겁니다. 2070년까지 서비스 산업이 해마다 입게 될 부가가치 손실은 18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제조업은 어떤 상황을 직면하게 될까요. “공단 설비가 밀집한 남부 및 남동부 해안 지역은 태풍의 영향으로 생산 차질 등 빈번한 피해를 입는다”며 “태풍이 더 빈번해지고, 위력이 더 강해지면서 제조업 관련 항구 등 인프라도 더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게 딜로이트의 설명입니다. 그로 인한 손실 규모는 2070년까지 연간 평균 8조원에 달하고요. 또, '기타'로 표현되긴 했습니다만 소매 및 관광업, 건설업과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 역시 해마다 평균 10조원 넘는 손실을 입을 전망입니다.

#아직_기회는_남았다
 
(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


물론 보고서에 이러한 암울한 전망만 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딜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급격한 탈탄소화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2070년까지 2300조원에 달합니다.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묶었을 때, 우리가 얻게 될 경제적 이익이 이 정도 규모라는 거죠.

보고서는 그 과정을 이렇게 구분 지었습니다. ① 2025년까지 신속하고 과감한 기후 행동, ② 2025~2040년 과감한 기후 계획을 실행하는 10년, ③ 2040~2050년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로 제한, 최악의 기후변화 영향 방지, ④ 2050년 한국 및 세계 경제 탈탄소화, ⑤ 2070년 현대적이고 번영하는 넷제로 미래를 위해 2070년 이후까지도 기온 상승폭 1.5℃ 제한 유지. 계속해서 1.5℃라는 선을 지킴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지키고, 거기서 수천조 규모의 추가 이익을 낸다는 설명입니다.

 
(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


딜로이트가 강조한 한국 대응의 핵심은 “발 빠른 대응”이었습니다. 보고서는 “향후 몇 년간의 정책과 투자 결정이 한국과 전 세계가 물려받을 경제와 기후변화 양상을 크게 좌우할 것”이라며 “기회의 문이 좁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의 경제학을 이해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다수의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 결정에 이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제 막 '탈석탄'을 외친 대한민국이지만 보고서는 '탈탄소'라는 키워드를 강조했습니다. 딜로이트가 내놓은 '2070년까지 2300조원 이익'은 급격한 탈탄소화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환 초기에는 한국이 경제를 조정하여 저탄소 기조로 전환하는 데에 상당한 비용이 수반될 것”이라면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을 모면하고,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면서 발생하는 편익은 비용을 능가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결과 2070년 한국의 GDP 성장률은 5.1%, 증가액은 295조원으로, 2070년 한 해에 최고 가치의 다국적 대기업 하나가 더해지는 수준이 된다는 전망입니다.

 
(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


그렇다면, 앞으로 50년간 2300조원의 이익을 부르게 될 우리의 '선택'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보고서는 3가지 큰 틀을 제시했습니다. ① 변화의 가치화, ② 에너지 전환, ③ 연료 변경이 바로 그 틀입니다.

변화의 가치화를 통해 탈탄소화 정책 투자를 부르고, 이를 통한 새로운 기술 발전은 비로소 배출집약적이었던 과거의 경제 구조를 바꾸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의 변화는 경제 활동의 가격에도 반영이 되고, 감축의 속도는 곧 감축을 위한 경제적 비용을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 딜로이트의 설명입니다. 감축에 투입되는 돈도 '가치'지만, 감축으로 얻는 것들 역시 '가치'인 것이죠. 또한, 탈탄소를 위해선 에너지 전환이 필수입니다. 탈탄소화 노력과 비용의 변화로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이 늘고, 이를 통해 한국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을 촉진하게 됩니다. 최종 수요단계서도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지면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더욱 커집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산업은 탈탄소 기술을 확보하게 되며, 이는 곧 산업으로의 투자 활성화를 부르게 됩니다.

 
(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자료: 딜로이트 경제연구소)


탈탄소는 비단 발전에서의 탈화석연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업과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원이 전기로 바뀌거나 저배출 연료원으로 바뀌고, 그러한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에너지 프로슈머(Producer+Consumer, 생산자이자 소비자)를 이끌어냅니다. 생산과 소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는 거죠. 더욱 깨끗하면서 더욱 저렴한 에너지를 갖게 됨으로써 경제적 산출물의 생산성 역시 높아집니다. 이렇게 되려면 당장 석탄과 석유의 사용량은 어떻게 변해갈까요. 전체 에너지믹스에서 석탄과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초 기준 95%에서 2050년 30%로 줄어야 합니다. 이 30%는 아주 일부의 석탄(4%)과 석유 기반 에너지원(26%)으로 구성됩니다.

이 모든 과정의 첫 단추는 바로 2021~2025년, 우리가 어떤 '첫 결정'을 내리고 '첫 행동'에 나서는지에 달려있습니다. 보고서는 “향후 몇 년간이 급격한 탈탄소화의 발판이 마련되는 시기”라며 “정부와 규제당국, 재계와 시민사회가 내리는 의사결정은 초기의 진전에 탄력을 가하며 빠르고 광범위한 탈탄소화를 추진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을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희망적인 분석이기도 하지만 이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결국 악순환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 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배출량 '유지' 성공해도 935조원 손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