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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입력 2021-09-06 09:32 수정 2021-09-06 09:3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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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5)

우리나라의 첫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나온 데에 이어 탄소중립 기본법 또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습니다. 기본법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최소치'가 담겼고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와 “과도한 목표”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졌습니다. 탄소중립의 실현을 원하는 쪽도,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려는 쪽도.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겁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성공했습니다. 탄소중립이라는 키워드 자체의 '바이럴'엔 성공한 거죠.

뉴스와 유튜브 곳곳에서 탄소중립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른 나라들은 아무도 안 나서는데 왜 한국만 난리냐'는 댓글은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응 중 하나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나라, 147개국에 달합니다. 이미 달성한 나라는 두 곳(수리남, 부탄). EU뿐 아니라 개별 국가로도 13개 나라가 탄소중립법을 입법 완료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기서 가장 '막내'인, 14번째 입법 완료 국가인 셈이고요. 입법은 됐다고 하지만 이들 나라 가운데 강화한 2030년 감축목표를 확정하지 못 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심지어, 아직 탄소중립법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 했거나 아직 입법안이 나오지 않은 나라들도 대부분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확정한 상태죠.

현재 탄소중립법이 발의된 나라는 2개국입니다. 입법까진 않더라도 37개 나라가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중이며, 탄소중립이라는 방향은 확정하고, 목표 시점을 논의중인 곳도 79개국에 달합니다. 유별나지도 않거니와 선진국 가운데엔 우리보다 앞선 진행 상황을 보이는 곳이 훨씬 많습니다.

이렇게 탄소중립으로의 여정에 박차를 가하려면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재생에너지의 확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이야기할 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가격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전 세계에 걸쳐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는 급격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2010년, 1MWh(메가와트시)당 381달러에 달했던 태양광 발전의 단가는 2020년 57달러로 낮아졌습니다. 육상풍력의 발전단가는 1MWh당 89달러에서 39달러로 떨어졌고요. 석탄이나 LNG 등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보다도 저렴한 발전원이 된 겁니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해당하는 집광형 태양광이나 해상풍력의 발전단가 역시 화석연료와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재생에너지는 비싸다'라는 이야기가 계속되는 이유, 바로 세계 평균과는 '딴판'인 우리나라의 발전단가에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IEA(세계에너지기구)와 NEA(OECD 산하 원자력기구), IRENA(국제재생에너지기구)의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석탄 발전단가는 MWh당 52달러. 세계 평균(114달러/MWh)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세계 평균의 배에 달하죠.


분명 화석연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어떻게 가장 저렴한 전력원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량과 에너지 수입량을 살펴보면, 비슷한 추이를 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전력 소비량이 줄어들 때엔 에너지 수입량 역시 줄었고, 전력 소비량이 급증할 때엔 에너지 수입량 역시 크게 늘었습니다. 최근 들어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수입의존도는 90%를 넘습니다. 이러한 수입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재생에너지고요. 햇빛은, 바람은 수입하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석탄화력발전LCOE가 낮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발전단가를 책정하는 데에 있어 탄소배출 비용이나 기타 사회적 비용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해외에선 석탄발전소가 지불해야 하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가격이 더해졌고, 질소산화물과 이산화황 등 미세먼지 전구물질로 사회에 미치는 피해 역시 이 가격에 더해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석탄이 가장 저렴한 발전원인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석탄이 실제로 '가장 저렴'하다기보다는 '이상한 가격표'를 갖고 있는 나라가 된 셈입니다. 그 이상한 가격표 덕분에 국내에서 석탄 한 톨 캐지도 않고도 석탄발전은 가장 저렴한 발전단가를 기록하게 됐고요. 석탄광산이 있는 호주조차 태양광 발전이 가장 저렴한 발전원인데 말입니다.


이처럼 '석탄이 가장 저렴한 발전원'인 나라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 국가들이 해당합니다. 그런데, 일본과 베트남은 그나마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나아 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일본과 베트남은 발 빠르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나섰습니다. 베트남에선 지난해 12월, 단 한 달의 시간 동안 6GW 규모의 옥상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됐습니다. 순식간에 해당 설비의 '세계 3대 시장' 반열에 올랐죠. 일본의 경우, 가정용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시스템)의 신규 설치 규모가 최근 2년 만에 배가 됐습니다.

반면 국내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더디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는 곧 관련 산업의 발전 속도 저하로 이어졌죠. 산업의 발전 속도가 더디니 단가가 떨어지는 속도 역시 마찬가지. 세계 평균의 감소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일부 선진국에선 재생에너지가 이미 전체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뛰어넘는 수준이 됐습니다. 세계 평균으로 놓고 보더라도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10%를 넘겼죠.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대. '세계 평균을 낮추는 쪽'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재생에너지 산업이라는 '새로운 먹거리' 시장에서 한국이 자리 잡을 틈이 사라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석탄 한 톨 안 나는데도 석탄이 가장 저렴한 전력원으로 취급된다', '그러니 굳이 지금 당장 돈 안 되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필요가 없다', '재생에너지 시장이 없으니 관련 산업도 없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우리나라가 한때, 글로벌 재생에너지 산업을 이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풍력발전용 윈드타워를 만드는 세계 1위 업체도, 태양광 패널의 글로벌 판매 1위 기업도 모두 우리나라 기업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2020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양의 태양광 패널을 공급한 10개의 기업 중 8곳은 중국 기업이었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이 시장에서 패권을 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출도 수출이지만 기본적으로 중국 내 대대적인 태양광 발전 확대라는 든든한 디딤돌 덕분이었습니다.


풍력발전의 핵심인 터빈 시장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국의 GE와 덴마크의 베스타스가 압도적인 1, 2위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중국도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Top 10' 가운데 6개 기업이 중국 기업일 정도죠. 생산량이 늘어나고, 노하우가 쌓일수록 시장 경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높아진 시장 경쟁력은 곧 저렴한 가격을 의미하고, 저렴한 가격은 보급의 확대로 이어지죠. 예상을 뛰어넘는 해외 재생에너지 발전 산업의 성장을 지켜보면 문득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자칫,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우리나라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어쩌나, 한 번 설치하면 수십 년을 이용할 발전 설비인 만큼 해외 설비들로 가득 찬다면 국내 산업이 성장할 기회는 사라지는가 하는 걱정 말입니다.

여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의 숨은 고리는 또 있습니다. 바로 전기요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IEA 평균을 밑돕니다. 다른 나라들보다 에너지 자립도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날마다 변화무쌍한 화석연료 가격으로 인해 주유소 앞엔 장사진이 만들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입산인 전기지만 우리 개개인이 배터리에 전기를 미리 저장해두는 경우는 없죠. 긴 외출 시간,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부족할까 걱정돼 보조배터리를 챙기긴 하더라도 말입니다.

유럽 사람들이 유독 한국 시민보다 지구를 더 걱정해서 냉난방을 덜 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해외 기업들은 저마다 에너지 사용량을 체크하는 솔루션을 구매하고, 시민들은 집의 단열을 높이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일까요? 돈을 써서라도 전력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도리어 '돈을 아끼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저렴한 전기요금이 갖는 장점도 분명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접근성'을 자랑하니까요. 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면, 지속적인 적자를 감수할 각오 역시 필수적입니다. 또한, 전기요금은 그대로 두더라도 발전단가의 뒤틀린 산정 기준을 바로 잡지 않는 이상,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고민이나 공론화 없이 그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몇%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만 이야기하는 것은 한낱 프로파간다일 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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