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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6주년I왜,독일①] 벤츠·BMW·휴고보스가 나치 히틀러 전범기업?

입력 2021-08-17 11:38 수정 2021-08-1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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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8·15 광복 76주년입니다. 일본은 아직 책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적극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그래서 JTBC는 같은 전범국 독일을 다시 주목했습니다. 망각하는 국가와 반성하는 나라. 이 차이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저희 취재진이 독일 현지를 찾아 그동안 덜 알려진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 히틀러가 사랑했던 벤츠의 과거

메르세데스 벤츠는 누구나 아는 고급 브랜드입니다. 그러나 전범 기업이라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히틀러는 벤츠 자동차를 사랑했습니다. 행진에 동원된 차량은 대부분 벤츠였습니다. 벤츠는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상징과 같았습니다.

벤츠는 '더러운 전쟁'으로 폭발적 성장을 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와 군수품 생산 반독점 계약을 얻었습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경제적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벤츠의 성장은 피를 머금은 성장이었습니다.

벤츠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히틀러의 모습.벤츠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히틀러의 모습.
특히 벤츠의 군수품 생산 상당 부분을 맡은 건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고문과 죽음이 일상인 가혹한 환경. 보상은 없고 노동력만 제공하는 사실상 노예 상태. 벤츠는 이런 공짜 노동자를 부리면서 이익을 극대화했습니다.

독일 고급 승용차 브랜드 BMW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제동원 노동자들이 전투기와 폭격기 엔진 등을 생산했습니다. 유대인과 동유럽 노동자들이 만든 군수품은 동족을 학살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노동자들은 기계나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생산하고, 상태가 안 좋아지면 '폐기'됐습니다.

■ 박물관 만들어 과거 민낯 그대로 드러내고 반성

전쟁이 끝났고 이 두 기업은 어느새 엄청난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패전 뒤 독일은 둘로 갈라졌고 사과와 배상 책임을 졌지만, 개별 기업은 주문을 받았고 생산했을 뿐이니 법률적으로는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기업은 부끄러운 민낯을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독일 사회 전체 분위기가 무책임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았고 기업 생존을 위해선 사과와 책임인정이 필수였습니다.

두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 기억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벤츠 박물관엔 히틀러가 탔던 승용차와 동일 모델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한쪽 벽면엔 강제 동원 확인 문서나, 사고일지 같은 기록물들을 보존했습니다. 모두 피하고 싶은 기억이지만 그대로 직시했습니다.

벤츠 박물관에 히틀러가 탔던 승용차와 같은 모델이 전시돼 있다.벤츠 박물관에 히틀러가 탔던 승용차와 같은 모델이 전시돼 있다.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사고일지와 확인 문서 등이 전시돼 있다.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사고일지와 확인 문서 등이 전시돼 있다.
뮌헨 BMW 박물관은 더 상세히 강제동원 문제를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처참한 현장 사진과 함께 당시 강제 동원된 노농자들이 생산한 엔진 등을 전시해놨습니다.

BMW 박물관 강제동원 관련 전시 공간. 강제노동 현장 사진과 생산 제품 등을 전시해놨다.BMW 박물관 강제동원 관련 전시 공간. 강제노동 현장 사진과 생산 제품 등을 전시해놨다.
전시 공간 한쪽에선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강제동원 관련 해설이었습니다.


"1942년부터 수용소에 있었던 전쟁포로들을 강제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에도 기계 옆을 지켰으며, 별도 마련된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매우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사망했습니다."
-BMW 박물관 안내음성

■ 나치 군복 만들던 '휴고보스' 뒤늦게 공식 사과하기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션 브랜드 휴고보스도 전범기업입니다. 나치 군복을 생산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나치가 독일 대중을 파고드는 데는 세련된 디자인의 복장도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드러내지 않던 휴고보스는 2011년 뒤늦게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습니다.

히틀러가 입은 코트와 군복 등은 휴고보스가 만들었다.히틀러가 입은 코트와 군복 등은 휴고보스가 만들었다.
■ 전쟁으로 급성장한 독일 전범기업들, 경영전략상 사과·배상 분석도

독일 전범기업들이 오늘날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나치 히틀러에 부역했던 영향이 컸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업들 역시 이를 인정합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피해자 사과·배상을 하고 있습니다.

오롯이 기업 스스로 한 결정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전후 서독 재건을 도운 미국은 강제동원과 학살 등 과거사의 완전한 청산을 요구했습니다. 전범기업으로선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으면 기업 활동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었습니다. 나치기록관 크리스티나 톨룩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도 작용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기업 이미지 재고와 해외 수출 전략 차원에서도 사과는 필요했을 겁니다. 톨룩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회사인데, 이런 강제 동원 문제가 있다는 건, 매우 나쁘게 작용할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이제 당연해졌고 오히려 "아직 부족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기업의 운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옳은 방향이라고 보고 있어요."
-마니크, 독일 시민

"좀 더 (배상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쟁에 관여했던 일부 회사들은 배상이 오히려 모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코넬리우스 쉐펠, 독일 시민

■ 독일 기업과 정부가 출자해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독일 기업들은 정부와 함께 피해자 지원 재단도 만들었습니다. '기억책임미래재단'입니다. 6000개 넘는 독일 기업이 독일 정부와 공동으로 약 6조 원을 출자했습니다. 피해자 지원과 교육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독일 정부는 전쟁 범죄 피해자 배상 등에 지금까지 100조 원 넘는 돈을 썼습니다. 취재진은 기억책임미래재단 대표를 만났습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제국에 징집돼 강제노동에 끌려온 외국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은 대략 1300만여 명으로 집계됩니다. 저희 추산으로 대략 2천만 명 정도가 강제노동에 동원된 걸로 보입니다. 그들의 고통과 부당함에 비한다면 지금 이 금전적 지불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안드레아 데스팟, 기억책임미래재단 대표

■ 최소한 사과도 거부하는 일본 전범기업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분명한 건 최소한의 사과조차 거부하는 일본 전범기업들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앞서 JTBC는 전후 해체됐다던 일본 핵심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여전히 돈과 사람으로 얽힌 하나의 그룹이라는 걸 보도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면서 큰돈을 벌어가고 있습니다. 전범기업이었다는 사실은 교묘하게 숨기거나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 사과와 배상은 절대 거부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우리 대법원 판결도 무시합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란 입장을 반복할 뿐입니다. 피해자의 상처는 그대로인데 가해자는 다 지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건물 모습.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건물 모습.
〈관련 기사 = 서로 다른 회사라더니 가족회사 '미쓰비시'…강제동원 무시하고도 한국서 승승장구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3918〉


취재진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 강제동원 피해자 사과나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 계획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답변은 냉정하고도 기계적이었습니다.

"특별히 예정된 건 없다. 재판은 재판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중공업 관계자, JTBC와의 전화통화 중

JTBC는 묻고 싶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를 강제로 데려다 기계처럼 이용하고 희생시킨 걸 단지 비즈니스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독일과 일본의 전범기업, 범죄 행위는 같았지만 이후 걸어온 길은 달랐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많은 이름 모를 피해자들과 아직 남은 분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사과가 전해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윤석·하혜빈 기자 americano@jtbc.co.kr

(제작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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