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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가스실 만행' 그대로 보존한 독일…일본은 왜곡·은폐

입력 2021-08-13 20:28 수정 2021-08-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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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 76주년을 맞아서 뉴스룸은 전범국 독일과 일본이 걸어온 길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독일은 과거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반성을 위한 첫 번째 원칙은 끔찍한 만행의 현장일수록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뒤 강제 노역 사실은 숨기려고 시도하는 일본과는 다릅니다.

하혜빈 기자가 독일에서 취재했습니다.

[기자]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철문에 문구가 또렷합니다.

독일이 운영했던 작센하우젠 수용소입니다.

수용소 노동은 강제로 끌려와 죽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제동원 노동자, 나치 반대 세력, 동유럽 전쟁 포로 등 수만 명이 감금됐습니다.

중립지대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입니다.

이 선을 넘을 경우 경고 없이 총을 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은 짓밟혔고, 고문과 이유 없는 죽음은 일상이었습니다.

이들의 노동은 모두 독일의 전쟁 물자 생산에 사용됐습니다.

[탄야 바이툴레비치/베를린 강제동원센터 : 당시 독일은 남성, 여성 노동자, 그리고 거리의 어린아이들까지 강제동원했습니다.]

20만 명 넘게 수용됐던 다하우 수용소.

유대인에게 샤워장이라고 속였던 살인 가스실이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독일 전역엔 이런 수용소가 3만 개 넘게 있었습니다.

상당수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전쟁 범죄를 기록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코리나 디 레오/다하우 강제수용소 관광객 : 나중에 저희 아이가 이곳에 돌아오게 되면 오늘 본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히틀러가 사망한 장소는 주택가에 방치돼 있습니다.

히틀러는 바로 이곳에 있었던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이렇게 작은 표지판만 세워놨는데요.

독재자의 끝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당시 강제 동원 노동자 수는 2천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농장이나 일반 가정집, 종교시설에서도 일했습니다.

[크리스티네 글라우닝/베를린 강제동원센터 : 강제노동은 나치가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보험 같은 존재였습니다. 피해자들은 평생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독일에서 전쟁 범죄에 대한 사과는 만행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작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인턴기자 : 김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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