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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절박한 취준생 농락했다…취업 미끼로 '비대면 대출사기'

입력 2021-07-26 13:32 수정 2021-07-26 13:50

사기범 계좌로 수만불 해외송금 "추가 피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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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범 계좌로 수만불 해외송금 "추가 피해 가능성"

비대면 취업 사기범들이 녹취가 남지 않은 보이스톡으로 피해자에게 업무 지시를 하던 모습. [JTBC뉴스룸]비대면 취업 사기범들이 녹취가 남지 않은 보이스톡으로 피해자에게 업무 지시를 하던 모습. [JTBC뉴스룸]
어려운 형편에 스스로 학비를 벌며 졸업을 준비 중이던 20대 대학생 박모씨는 지난달 유명 알바 사이트의 구인 정보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월 200보장, 파트타임, 칼퇴근 가능'이란 평범한 조건의 광고회사 일자리였습니다.

이력서를 받은 회사는 커피숍에서 면접까지 본 뒤 박씨에게 합격 통보를 했습니다. 코로나19로 감염 우려가 있으니 첫 2주간은 재택근무를 하며 비대면 교육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회사 담당자가 카톡과 녹취가 남지 않는 보이스톡으로만 연락하는 게 어색했지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구한 일자리였고, 회사는 홈페이지는 물론 네이버에 주소까지 등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JTBC 취재 결과 진짜는 단 하나도 없는 비대면 취업대출 사기였습니다.

카페서 면접 "2주간은 비대면 교육"

현재 잠적한 사기꾼들은 박씨에게 마케팅 교육 자료를 건네며 입사를 위한 개인 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용 업무폰이 필요하다며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니 휴대폰을 개통해 보내라고 했고, 카톡에서 확인만 하고 삭제할 테니 신분증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알고보니 대출에 필요했던 졸업 고등학교와 주소까지 요구했습니다.

비대면 사기범들이 피해자에게 취업 합격을 통보한 문자. [JTBC뉴스룸]비대면 사기범들이 피해자에게 취업 합격을 통보한 문자. [JTBC뉴스룸]
박씨는 "저같은 청년들은 경력이 많지 않아 당장 배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사기꾼들이) 자료를 달라고 재촉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했습니다. 사기꾼들은 이런 박씨의 개인 정보를 활용해 저축은행에서 1000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박씨가 출근 일주일째 되던 날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신용조회를 해봤더니 자기도 모르는 대출이 이뤄졌고, 이후 사기꾼들은 바로 잠적했습니다.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들은 박씨의 신분증에 자신들의 얼굴까지 합성해, 영상 통화로 이뤄지는 은행의 '비대면 대출 검증 절차'도 통과했습니다. 박씨는 저축은행의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저축은행에선 "신분 검증 절차를 모두 거쳐 박씨의 이름으로 대출이 됐다"며 "수사엔 최대한 협조하겠지만, 현재는 돈을 되돌려주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사건을 접수한 하남경찰서는 사기꾼들을 추적 중입니다.

비대면 사기범이 피해자의 신분증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뒤 은행 대출 '영상 심사'를 받는 모습. [JTBC뉴스룸]비대면 사기범이 피해자의 신분증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뒤 은행 대출 '영상 심사'를 받는 모습. [JTBC뉴스룸]
좁아진 취업문, 절박한 취준생 노려


"누가 이런 사기에 당하겠어?"라고 말씀하시는 독자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막상 취재해보니 사기는 정말 치밀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취업문이 좁아지며 올해 5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학교를 졸업·중퇴한 뒤 입사를 준비하는 취준생이 85만 9000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사상 최대치인데 이런 절박한 청년들은 속을 수밖에 없는 범행이었습니다. 박씨는 "사기꾼들이 돈을 빼돌린 은행 계좌를 확인해보니 은행으로부터 이미 해외로 5만불 이상 송금됐단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단 뜻입니다.

JTBC는 취재를 시작한 뒤 사기꾼들이 만든 번듯한 회사 홈페이지를 살펴봤습니다. 'CREW'라고 해서 회사 직원들의 사진도 실명과 '000팀장'이란 직책과 함께 올려져 있었습니다. 회사 주소에 사업자 등록번호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온 사진들을 다운받아 구글 이미지에 검색해보니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들 사진을 포토샵으로 오려 붙여 도용한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 정성을 들여 자신이 취업한 회사의 홈페이지를 검증하는 취준생은 많지 않습니다.

비대면 사기범들이 만든 가짜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들. 한 로펌 변호사들의 사진을 그대로 오려붙였다. [홈페이지 캡처]비대면 사기범들이 만든 가짜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들. 한 로펌 변호사들의 사진을 그대로 오려붙였다. [홈페이지 캡처]
로펌 변호사 사진 오려붙여, 주소도 가짜

네이버 주소에 등록된 회사 주소로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전혀 다른 스타트업 회사였습니다. 같은 주소에 있는 회사 관계자는 JTBC에 "주소는 우리가 맞는데, 정말 황당하다"며 답답함을 드러냈습니다. 피해자인 박씨는 "네이버에 주소도 등록돼있고, 사기꾼들이 사업자 등록증도 보내 의심하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기를 눈치챈 뒤에는 직접 찾아가는 게 두려웠다고 합니다. 사기꾼들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기꾼들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재택근무가 가능해 자신들의 위치와 신분을 속일 수 있는 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고 네이버에 주소만 등록해 놓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비대면 취업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절박한 심정에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JTBC뉴스룸]비대면 취업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절박한 심정에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JTBC뉴스룸]
박씨는 자신이 빌리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된 돈을 다시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제2금융권이라 이자도 높고, 신용도 깎인 상태입니다. 다시 일자리를 구했지만 매달 월급의 절반을 넘게 쏟아부어야 합니다. 박씨는 "사기도 사기지만, 내가 정말 어려울 때 신용이 깎여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할까 봐, 그게 더 두렵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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