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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수송부문 온실가스 감축, 전기차는 시작일 뿐…선박, 항공은?

입력 2021-07-26 09:32 수정 2021-07-26 09:4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9)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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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9)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5/6

EU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핏 포 55(Fit for 55)' 패키지 법안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이행을 강조하던 쪽에선 '예상보다 미약했다'는 평가들을 내놨지만 주변 국가들과 일부 기업들은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가 좀 어떻게 해봐라' 등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주 [박상욱의 기후 1.5]에서 살펴봤듯, '핏 포 55'엔 단순히 목표만 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 분야에 걸쳐 어떤 변화들이 필요한지 그 '로드맵'과도 같은 내용이 담겨있죠.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있지만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당장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고요.

IEA(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 뜯어보기, 다섯 번째 순서입니다. '이보다 더하면 더 했지,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각 분야별 정책의 '필수 이정표'가 담겨있습니다. 지난 연재들을 통해선 발전 부문에 이어 산업 부문에서의 탄소 감축, 탈화석연료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다배출 산업인 철강과 시멘트, 석유화학의 경우 산업 인프라의 교체 및 투자주기가 긴 만큼 늦어도 2030년까지 저탄소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타임라인을 지키지 못하면 자연스레 글로벌 2050 탄소중립의 흐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IEA의 분석이었죠.

 
[박상욱의 기후 1.5] 수송부문 온실가스 감축, 전기차는 시작일 뿐…선박, 항공은?


이번에도 이야기에 앞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 바로 IEA는 여타 글로벌 환경단체와 같은 '친환경적'인 곳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결코 '환경만 생각해 시민사회나 기업, 정부에 지나치게 가혹한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위의 항목들은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한', 소위 '최소 요구 사항'입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부문별별 탄소배출 시나리오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부문별별 탄소배출 시나리오 (자료: IEA)


이번 주엔 수송과 건물부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수송(주황색)과 건물(연두색)의 경우,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발전이나 산업부문보다는 배출량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부문인 만큼, 이 부문의 변화는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곤 합니다. 우리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만들어지느냐. 우리가 쓰는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바쁜 일상 속에 시민 개개인이 이것까지 고민할 시간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매일 우리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에 찾아오는 변화는, 우리가 매일 머무는 공간에 찾아오는 변화는 바로 체감하게 되죠.

#수송의_탈화석연료
수송부문의 탄소중립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나마 덜 숨 막히는 이야기'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이젠 '전통의 강호'들조차 발 빠르게 전기차를 도입한 덕분이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안도하긴 이릅니다. '수송'에 해당하는 것들은 승용차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수송부문의 분야별 탄소 배출량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수송부문의 분야별 탄소 배출량 (자료: IEA)


여러 운송수단 중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것은 경량자동차(Light Duty Vehicle, 승용차 및 5톤 이하 트럭)입니다. 대당 배출량은 다른 운송수단보다 적을지 몰라도 대수가 많다 보니 전체 배출량이 많은 것이죠. 우리가 흔히 '수송의 전환'을 이야기할 때 '전기 승용차'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경량자동차에 이어 대형트럭, 선박과 항공, 기타 도로운송수단(이륜차, 버스 등), 철도 순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뿜어내고 있습니다. 각각의 운송수단들은 출발점이 다를지라도 하나같이 2050년 0에 수렴하는 방향으로 그래프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울기가 다릅니다. 일반 승용차의 감축 기울기와 선박이나 항공의 기울기는 천지 차이죠. IEA는 “승용차의 경우 현존하는 기술을 이용해 전환에 나설 수 있지만, 대형트럭과 선박, 항공 분야는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IEA는 이 세 분야의 기술 성숙도를 따져봤는데요, '아직 갈 길이 먼'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는 대형트럭도 필요한 기술의 절반가량이 '아직 비용이 높고, 기업별로 기술 격차가 큰' 상황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프로토타입 수준이거나 아직 시연 단계에 그치고요. 선박의 경우 프로토타입 또는 시연 단계인 것이 더 많고, 항공의 경우 사실상 대부분이 프로토타입인 상황입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수송부문 연료의 변화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수송부문 연료의 변화 (자료: IEA)


수송 분야의 감축은 크게 두 축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IEA의 설명입니다. 하나는 전기차와 같은 전동화 기술을 통한 감축이고, 다른 한 축은 바이오연료나 수소 기반 연료 등을 활용한 저탄소 연료 기술을 통한 감축입니다. 당장 10년 후인 2030년만 하더라도, 전체 수송부문에서 화석연료의 비중은 70%까지 떨어집니다. 2040년엔 전 세계 수송부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연료는 전기가 되고, 2050년엔 전기 45%, 수소 기반 연료 28%, 바이오연료 16%의 연료 구성을 보일 전망입니다. 이 때 화석연료의 비중은 10%를 간신히 넘죠. IEA는 2030년 이후 선박이나 항공 분야에서 바이오연료의 이용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두 분야의 경우 상대적으로 전기나 수소를 이용하는 데에 제약이 있다고 본 겁니다.

단순히 화석연료의 비중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전체 연료 사용량 자체가 줄어들게 됩니다. '기술의 발달로 효율이 개선된다'는 의미죠. 이러한 효율 개선은 특히 일반 승용차와 5톤 이하 트럭 등 '경량자동차'에 있어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입니다. 운송 수단별 에너지 사용량 그래프를 보더라도 기타 도로운송수단이나 대형트럭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양 자체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의 친환경차 시장 점유율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의 친환경차 시장 점유율 (자료: IEA)


자동차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친환경차의 확산 속도는 차이를 보일 전망입니다. 일반 승용차가 해당하는 경량자동차의 경우 그 확산세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IEA는 2030년 경량자동차 카테고리에서 배터리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연료전지차의 판매 비중이 50(개도국)~75%(선진국)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2030년대 초반이면 친환경차의 판매 비중이 이미 100%가 될 것이라는 게 IEA의 전망이죠. 그 이후 달라지는 것은 친환경차 100%라는 범주 안에서의 변화입니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가 줄어들고 배터리전기차나 연료전지차로 그 빈자리가 채워지는 등의 변화 말입니다.

대형트럭의 경우 일반 승용차와는 다른 주행패턴에 따라 경량자동차 대비 수소연료전지의 비중이 더 큰 점도 눈에 띕니다. IEA는 “대형트럭의 경우 많은 짐을 싣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만큼 2020년대까지는 바이오연료가 주요 탄소 감축 방법으로 쓰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2030년이 지나면서 전기나 수소 관련 인프라들이 차차 구축됨에 따라 전기트럭이나 소수기반 연료전지트럭 등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게 IEA의 전망입니다.

문제는 선박과 항공입니다. 도로 위의 교통수단에 대해선 여러 기술이 이미 개발됐거나 활발히 개발 중인 반면 이 두 분야의 경우 '탄소중립'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살펴본 자동차와 달리, 또한 철도와 달리 선박이나 항공분야의 경우 2020년 현재 기준으로도 화석연료의 이용이 압도적입니다. 이는 철도와 선박, 항공의 연료 비중을 살펴본 그래프에서도 선명히 나타납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선박의 경우 빨간색(석유)으로 가득한 막대의 끝자락에 보라색(가스)이 살짝 보입니다. 항공은 거의 빨간색으로 가득한 상태고요.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철도, 선박 및 항공 분야 연료 변화 및 탄소 집중도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철도, 선박 및 항공 분야 연료 변화 및 탄소 집중도 (자료: IEA)


선박과 항공의 경우 다른 교통수단과 달리 전기의 비중이 거의 없는 수준으로 변화할 전망입니다. 다만 어떻게든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기에 여러 대안이 쓰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해서 선박은 최소한 84%를 저탄소 연료로 대체해야 합니다. 암모니아(46%), 바이오연료(21%), 수소(17%) 등을 이용하는 것이죠. 항공의 경우 2050년까지 바이오연료의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수소와 탄소를 합성한 새로운 항공기용 합성 연료의 비중 역시 33%까지 끌어올려야 하죠.

“이제 좀 전기차가 '핫'한줄 알겠는데 무슨 선박이랑 항공이냐”고 생각하는 사이, 이미 지구촌 곳곳에선 국가 차원에서 혹은 기업 차원에서 대대적인 연구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무슨?' '벌써?' '시기상조'… 이런 생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우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태양광 세계 1위' 타이틀이 우리나라의 차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정부도 시민사회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죠.

차라리 무관심에 그쳤으면 나았을까요. “태양광은 중금속 범벅이다”, “원전 없애려고 허황된 이야기 떠드는 거다”, “우리나라엔 맞지 않다” 등등 근거 없는 반대와 정쟁의 대상이 되어버렸죠. 그 사이, 태양광을 시작으로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의 주도권은 결국 다른 나라들에 넘어가게 됐습니다. 수송부문도, 산업부문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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