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파리의 별'이 된 박세은 "질문 사라질 때까지 연습, 또 연습"

입력 2021-07-20 15:46 수정 2021-07-20 15:52

아시아인 최초 '에투알' 승급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아시아인 최초 '에투알' 승급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에투알이 된 발레리나 박세은. 〈영상취재= 이병구〉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에투알이 된 발레리나 박세은. 〈영상취재= 이병구〉

"박세은은 완벽한 모범사례다"

지난 6월, 파리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발레리나 박세은(32)이 아시아인 최초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이 됐다는 겁니다. 발레의 종주국 프랑스에서 불가능의 벽을 넘고 최고 자리에 오른 발레리나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를 에투알로 발탁한 오렐리 뒤퐁 감독은 "박세은은 항상 열심이고, 겸손하며, 테크닉이 있고, 예술성이 있다"며, "완벽한 모범사례"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발레리나 박세은은 한국에 돌아와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마이크 앞에서 그녀는 한국인 무용수가 에투알이 되기까지 10년을 돌아봤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러시아의 바가노바 기법을 기본으로 배운 후 프랑스에서 다시 기초부터 배워야 했다 말했습니다. 테크닉이 좋다는 게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까다로운 프랑스 예술계에서, "프랑스에선 프랑스 춤을 춰야지!"라는 질책에 흔들릴 때도 있었다 했습니다.

2016년 프리미에 당쇠르로 승급한 이후 프랑스 연금 파업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에투알이 되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했던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발레리나 박세은이 JTBC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상취재=이병구〉발레리나 박세은이 JTBC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상취재=이병구〉

JTBC 취재진이 발레리나 박세은과 나눈 이야기도 전해드립니다.

Q. 에투알로 승급했을 때 동료들이 '메리테'라며 축하해줬다고 들었어요.
A. '메리테'는 그 자리에 충분히 어울린다는 뜻인데요. 그동안 제가 보여줬던 것들, 쌓아왔던 것들을 좋게 평가한다는 말인 거 같아요. 10년 동안 파리 오페라에서 했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도 들었어요. 동료와 선생님, 심지어 스태프분들까지도 제가 에투알이 되길 함께 바랐던 것 같아요. 함께 기뻐해 주는 분들을 보니까 정말 감사했습니다. 혼자 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주변에서 "넌 에투알 자격이 있다"라는 인정을 받은 건데, 에투알의 자격이라는 건 뭔가요?
A. 쉽게 생각을 하면, 시간 내서 비싼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께 영감을 드려야 하잖아요. 관객이 기대하는 걸 채워줄 수 있는 무용수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하, 설명이 어렵네요, 춤이 훨씬 쉽네요.

Q. 무용수로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게 관객이 에투알에게 기대하는 모습일 것 같아요. 무대마다 혼을 쏟는 편인가요, 아니면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하는 편인가요?
A. 저는 후자 쪽이에요. 알아야 할 지식은 다 알고 시작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야 길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저는 창작이나 창조에 뛰어난 무용수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반면에 전통에서 배우고, 그걸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작품 준비를 할 때 오리지널에 가까운 춤을 구현하는 선배들 영상을 다 찾아보고 저만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Q. 뒤퐁 감독이 그런 노력을 높게 산 걸까요?
A.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가끔 제 공연에 옛 에투알 선배들이 보러 와주시거든요. 공연 보시고 '좋았다'는 말 많이 해주시거든요. 제가 존경하던 분들께 칭찬을 받을 때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열심히 하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떨 때 그런가요?
A. 러시아 춤에서 프랑스 스타일 춤으로 바꾸어가는 여정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도 잦았어요. 하지만 에투알이 돼서 더는 저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저를 오래 지켜봐 온 선생님이 제가 에투알이 된 직후 "됐어, 더이상 증명할 필요 없어. 춤춰, 이제."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그때 '아, 내가 부단히 증명하려 했구나. 내가 추는 춤이 프랑스 춤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애썼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에투알이 됐다는 건 그걸 마스터했다는 거니까 너무 증명하지 않고 조금 더 자유롭게 출 수 있을 거 같아요.

Q. '자신감이 없는 편'이라고 하셨는데요, 무대에 서기 전 자신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 해주는 말이 있나요?
A. '난 잘할 수 있어' '잘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는 안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예전에 몇 번 있긴 했었거든요. 돌이켜보니 그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공연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그 상태에서 공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마음속 질문이 사라질 때까지 연습하는 것 같아요.

에투알 박세은은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밝고 진지했습니다. 취재석에 앉아 무대에 선 그녀를 멀리서 볼 때는 수줍고 여려 보였는데,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어보니 발레 이야기를 할 때 눈은 빛났고 완벽주의자의 모습도 엿보였습니다. '당신을 지탱해 준 한 가지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는 마지막 질문에 "긍정의 힘이라고 확신한다" 말했습니다. 분명 모르는 사이 인종차별도 당했을 텐데 춤에 집중하느라 잘 느끼지 못했다며 웃는 그녀를 보며 에투알로서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