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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2026년 탄소국경세, 2035년 내연기관 스톱"…EU가 쏘아올린 '제법 큰' 공

입력 2021-07-19 09:32 수정 2021-07-19 10:38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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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8)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최소 충족 요건들을 살펴보는 사이, 국내외 곳곳에서 커다란 이슈들이 속속 터지고 있습니다. IEA(국제에너지기구)의 '2050 넷 제로' 보고서 뜯어보기를 잠시 멈추고 또 하나의 '커다란 소식'을 먼저 전해드립니다.

EU발 탄소중립 정책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4일, EU 집행위는 2030년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와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다양한 기후위기 대응 법안이 담긴 '핏 포 55 패키지(Fit for 55 Package)'를 발표했습니다. 2030년,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줄이겠다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담긴 법안입니다.

2019년 연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취임 첫 날 “2050년, 유럽이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이 되길 월한다”며 그린뉴딜을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EU가 쏘아 올린탄소중립의 공은 '작은 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은 날마다 구르며 눈덩이처럼 커져 2021년 7월엔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치는 '제법 큰 공'이 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26년 탄소국경세, 2035년 내연기관 스톱"…EU가 쏘아올린 '제법 큰' 공

이 법안 패키지엔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확대할지, 각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유럽 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어떻게 바꿀지, 자동차나 항공기, 선박 등 수송 부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건축물들은 어떻게 변화할지… 항목별로 세세히 담긴 내용만도 수천 페이지에 달합니다. 이번 주 연재에선 이중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신설, ② 신차 탄소배출 기준 개정, ③ 항공 및 해양 부문 연료 규제, ④ 1990년 대비 온실가스 55% 감축 등입니다.

'핏 포 55' 패키지 법안 주요 내용 (자료: 브뤼겔)'핏 포 55' 패키지 법안 주요 내용 (자료: 브뤼겔)


EU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탄소감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지역입니다. 단순히 EU 차원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각종 규제들을 내놓고 있죠. EU 역내 기업들로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존의 산업 설비를 개보수하거나 새로운 시설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프라에도 많은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주요 거점마다 한, 두 곳씩 있던 대규모 발전소에서 각지로 전기를 보내주던 과거와 다르게 이젠 바다, 해안가, 산, 도심 곳곳에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이뤄지면서 발전설비와 송·배전망의 변화도 불가피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의 비용은 늘었지만, 실제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를 얻었죠. 해마다 우상향하던 온실가스 배출 그래프의 방향을 꺾는 데에는 많은 고통이 수반됐습니다. '남들은 여전히 기존의 방식대로 양껏 탄소 배출을 하며 저렴하게 제품들을 만들고 있는데 왜 우리만 손해를 봐야 하느냐' 이런 목소리가 거셀 법도 한데, 그 목소리는 예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고생하면,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내놓을 거야'라는 신뢰 덕분입니다.

#설마가_현실로_탄소국경조정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은 꽤나 오랜 시간 논의됐던 내용입니다. EU 역내에서 제품 생산을 하는 데에 있어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막대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EU에 수출하는 제품들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부담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정식 명칭은 탄소'국경조정'이라고 하지만 결국 관세처럼 작용하게 되죠. 우리가 '탄소세'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1월,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박상욱의 기후 1.5] Brace for impact! 현시로 다가온 우려〉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해드린 바 있죠. “대비해야 한다”, 대비하려면 하루빨리 “그에 상응하는 감축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카드가 있다', '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정도다', 'WTO를 통한 각종 문제의 소지가 있다' 등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란 '기대 섞인' 주장들이 쏟아졌고요. 이렇게 우리가 '먼 미래'라며 별다른 준비를 안 하고 있던 사이, EU는 이를 보다 탄탄히 구성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주요 내용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주요 내용


철강과 알루미늄, 시멘트 등 당장 다 배출 산업부터 CBAM이 적용됩니다. 앞으로 1년 반 후부터는 EU에 해당 품목을 수출할 때, 탄소 배출량을 EU에 신고해야 하죠. 2년의 시범 기간이 지나면 단순히 생산 과정이나 제품 생산에 투입된 원자재의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만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전력 소비를 통한 간접적인 탄소 배출까지도 포함하는 것도 검토 중입니다. 똑같은 '저공해 공정'을 통해 제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제품을 만든 국가나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탄소국경세의 금액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동안 왜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각국의 전경련 같은 기구들이 정부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해왔는지 그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사단법인 넥스트는 이번에 발표된 CBAM 내용에 대해 “그간 논의됐던 것보다 의무 범위가 축소됐다”며 “주요 무역 상대국들의 반발과 WTO 제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쉬운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라고 말씀드립니다만, EU는 이를 관세와 같은 세금의 성격이 아닌 '조정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시범 기간 탄소 배출량을 신고하는 것도 '수입자'이고, 향후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때에도 수입자가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메커니즘이 만들어졌죠. 게다가, EU 역내에서처럼 수출하는 나라에서 자체적으로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를 운용하고 있다면 이를 인정해주고도 있습니다.

#내연기관의_예상보다_빠른_몰락
EU는 이와 더불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이브리드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도 포함됩니다. 다시 말해, 2035년부터는 'only 전기차', 'only 연료전지차'만 판매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다른 산업 분야보다 발 빠르게 전환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당장 이번에 나온 '핏 포 55' 패키지와 별개로 자동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주요 자동차의 탄소 배출량 (자료: 각 제조사)국내 주요 자동차의 탄소 배출량 (자료: 각 제조사)


당장 올해 유럽에서 신차 판매에 나선 자동차 회사들의 경우, 판매한 자동차의 평균 탄소배출량이 95g/km를 초과해선 안 됩니다. 이를 초과하면, 내년에 1g당 95유로의 과징금을 내야 하죠. km당 95g이라는 기준 자체는 이미 내연기관 자동차만 판매해서는 달성할 수 없는 기준입니다. 가장 탄소배출량이 적은 경차도 1km를 갈 때 100g 넘는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고 있으니까요.

이번에 발표된 법안에 따르면, EU는 현재 95g/km인 기준을 2030년 55% 감축하게 됩니다. 1km를 갈 때 평균 42.75g의 온실가스를 뿜어내야 하는 겁니다. 이 정도만 해도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는 판매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판매하는 차량의 라인업을 하이브리드, 전기차, 연료전지차 등으로 구성해야 달성 가능한 정도죠.

당장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습니다. ACEA의 수장을 맡고 있는 올리버 집세 BMW CEO는 “EU 집행위원회가 내놓은 야심 찬 기후 목표들은 관련 이해 당사자들 모두의 끈질긴 헌신이 필요하다”며 “2030년 자동차 탄소 배출량 기준을 더욱 강화하는 이 같은 제안은 보다 짧은 시간에 전기차 수요의 급증이 일어나야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집행위 역시 전기나 수소를 충전할 인프라 확충 계획을 함께 내놨다”며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자동차 제조사뿐 아니라 각국 정부나 기관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공해차 전환의 책임이 제조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또한 “EU의 각 기관들이 규제를 만들거나 특정 기술을 금지하는 것보다 혁신을 일으키는 데에 집중하길 바란다”고도 꼬집었죠.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는 EQS의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파리 협정의 약속을 EU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빨리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료: 메르세데스 벤츠)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는 EQS의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파리 협정의 약속을 EU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빨리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료: 메르세데스 벤츠)


EU의 강력한 '한 방'에 보수적인 답변을 내놓은 ACEA였지만 시장은 꽤나 빠르게 이러한 정책에 맞춰 변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 4월 브랜드의 첫 럭셔리 전기차인 EQS를 출시할 때 이렇게 선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파리 협정에서 약속한 바를 EU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 이르게 달성할 것”이라고요. 마치 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말입니다.

#이젠_비행기도_배도_감축_압박
수송 부문 가운데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의 압박이 약했던 항공기와 선박도 이젠 피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당장 2025년부터 EU 역내 공항(일부 소규모 공항 제외)에선 청정항공유를 급유해야 합니다. 또한, EU 역내 해운 업체들도 이젠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해 배출권을 할당받고, 할당된 양을 넘어서는 경우 배출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배를 띄우는 데에도 이젠 그저 '유류비 절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EU 항공 및 해운업계는 탄소세를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간 탄소세 대상에서 빠져 있었던 항공 등유에도, 선박용 연료에도 탄소세가 붙게 됩니다.

항공기나 선박의 경우, 당장은 EU 역내에서의 규제에 그치지만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결국 대외적으로도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을 오가는 여객기나 화물기, 여객선이나 화물선은 당장 저탄소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하는 거죠.

#역대급_감축_목표의_의미
이러한 모든 조치들은 2030년 '1990년 배출량 대비 55% 감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 중 하나입니다.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감축 노력을 기울이고, 가장 먼저 가시적인 성과를내고 있는 EU라도 쉽지 않은 목표죠. 하지만 스스로 이러한 강력한 목표를 내걸고, 이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대외적으론 강력한 '압박'의 수단이 됩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야기하는 국제회의 무대에서 EU의 발언권이 막강해지는 것은 물론, 향후 온실가스와 관련한 국가 대 국가의 논의 혹은 논쟁 과정에서도 '우린 이 정도나 하고 있는데?'라며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게 되죠.

[박상욱의 기후 1.5] "2026년 탄소국경세, 2035년 내연기관 스톱"…EU가 쏘아올린 '제법 큰' 공


2020년, 코로나 19 등으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배출량은 6억 4860만톤에 달합니다. 1990년 배출량의 2.2배죠. “1990년 대비 55% 줄이겠다”는 EU와 맞서서 무엇을,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지난 9~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양일간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장관들은 한목소리로 탄소세를 지지했습니다. 그다음 날 열린 국제 기후 콘퍼런스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금융기관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는지 심사하겠다”며 “금융안정감독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 FSOC)가 기후변화 문제를 분석할 것”이라고도 밝혔죠.

(자료: 미 의회 전문지 '더 힐' 홈페이지)(자료: 미 의회 전문지 '더 힐' 홈페이지)

이런 가운데 오는 22~23일, 이번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G20 환경 및 기후, 에너지장관 회의가 열립니다. 전경련은 EU의 '핏 포 55' 발표에 “정부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국제무역규범의 원칙을 해치지 않도록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중국 등 관련국과의 국제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G20 장관들이 한목소리로 탄소세를 지지하며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드라이브에 동참한 가운데, EU뿐 아니라 미국 역시 탄소국경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올까요. 전경련의 바람대로 “EU의 탄소국경조정은 국제무역 규범을 해치는 결정”이라고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한국 역시 배출권거래제를 보다 실질적으로 잘 운영하겠다”고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별다른 이야기 없이 다른 장관들의 이야기를 잘 듣기만 하다 올까요.

EU가 내놓은 '핏 포 55'에 대해 매우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각 산업 분야에 세부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추후 연재를 통해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제사회는 지금, 어떻게 해야 2050년 넷 제로를 달성할 수 있는지, 그 답을 찾지 못한 상태가 아닙니다. 많은 국제기구가, 전 세계 연구자들이 이미 로드맵을, 최소한 달성해야 하는 것들을 로드맵의 형태로 발표했죠. 그중 IEA가 내놓은 로드맵을 최근 [박상욱의 기후 1.5]를 통해 상세히 전해드리는 중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그 답을 실천할 '의지'뿐일지도 모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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