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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입력 2021-07-07 09:02 수정 2021-07-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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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 '亞 거장 의기투합' 샤머니즘 영화
| '곡성' 나홍진 감독 제작·'셔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연출
| 페이크 다큐로 풀어낸 공포·호러·고어물…잔혹·선정성 '최고치'


출연: 나릴야 군몽콘켓·싸와니 우툼마·씨라니 얀키띠칸·야사카 차이쏜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장르: 공포 외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31분
한줄평: CCTV를 조심하라
팝콘지수: ●●●●○
개봉: 7월 14일
줄거리: 태국 산골마을,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단순한 '흥미'로만 접근하지는 않기를 강력히 경고한다.

어떠한 상상과 예측도 시간 낭비다. 지난 2일 공식 시사회를 통해 첫 베일을 벗은 후 '랑종'에 대한 다양한 후기와 반응이 전해지면서 예비 관객들의 추측도 쏟아지고 있다. '곡성' 등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이 모두 그러했듯 '랑종' 역시 오랜만에 영화 자체로 이야기 장을 펼치는데 성공했고, 타오르는 화제성은 개봉 후 더욱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랑종'은 기획 단계부터 "미쳤다"는 의견을 줄잇게 만들었던 ''곡성' 나홍진 감독과 '셔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만남'의 기대치를 결과물로 고스란히 내놓았다. "둘이 만났는데 평범한 영화가 나오겠어?"라는 예상을 하고 봐도, '이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마음 먹고 봐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랑종'에 비하면 '곡성'은 전체관람가 수준이다.

호러를 넘어 고어물에 꽤 익숙한 관객이거나, '랑종'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은 관객이라면 아주 기본적인 정보 외 한 톨의 스포일러도 모른 채 극장으로 향하길 추천한다. 그렇지 않다면 있는 스포일러, 없는 스포일러를 모두 끌어안고 봐도 무방하다. 알고봐도 소름끼친다.

 
[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곡성' 이후 일광(황정민) 캐릭터의 전사를 그려보고 싶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캐릭터로 전혀 새롭게 전사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랑종'의 뼈대를 완성한 나홍진 감독이다. 시나리오 원안을 집필했고, 기획·제작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리고 실제의 날 것과 같은 생생한 영화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을 연출 적임자로 낙점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셔터'로 태국 호러 영화의 새 지평을 열고, '피막'으로 태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태국 영화계의 스타 감독.두 감독의 만남만으로 프랑스 조커스 필름(The Jokers Films) 측은 일찍이 '랑종'의 프랑스 배급을 결정했고, 개봉일이 확정되자마자 외신도 떠들석했다. 여기에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제경쟁 섹션 부천 초이스 부문 초청까지 따냈다.

호불호마저 영화의 묘미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타협도 하지 않은 채 쭉쭉 치고 나간다. 재미는 있지만 밍숭맹숭한 순한 맛만을 남겼던 최근 영화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브레이크 없는 직진의 매운 맛을 확인할 수 있다.


 
[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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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 세계관


성스러우면서도 습하고 스산한 태국의 이국적 정취 아래 날뛰는 혼령들을 막아설 재간이 없다. 태국어로 무당을 뜻하는 '랑종'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태국 이산 지역의 한 가족이 경험하는 미스터리 현상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해 모든 장면을 실제처럼 생생하고 강렬하게 담아냈다. 대를 이어 조상신을 모셔온 무당 님의 인터뷰가 시작되는 순간,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관객들은 혼동하게 된다.

'랑종'은 크게 '님의 세계'와 '밍의 세계'로 나눠 관객을 초대한다. 일찍이 모두가 숭배하는 신을 내려받은 무당 님의 삶에서 이상 증세를 보이며 기이한 현상을 이끄는 밍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오프닝이 너무나도 평온하고 안락하기에, 숱한 반전을 이겨내고 맞이한 엔딩의 충격이 더욱 거세게 남는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 하다가 '억' 소리도 내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홍진 사전에 용두사미는 없다.

무엇보다 '랑종'은 스크린 속 카메라 형식으로 극중 촬영팀이 님과 밍을 둘러싼 사건과 현상을 포착하는 새로운 연출 방식을 택했다. 끝까지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은 직업 정신은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카메라를 박살내고 싶은 공포도 동시에 샘솟는다. 혹여 '영화관 밖으로 나갈까 말까'가 고민 된다면, 마지막 기회는 '퇴마의식 6일 전'이다.

 
[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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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을 완성한 1등 공신은 단연 무당 님을 연기한 배우 싸와니 우툼마다.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했기에 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을 섭외해야 했고, 싸와니 우툼마는 비주얼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며 최적의 캐스팅임을 증명한다. 신내림을 거부했던 과거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무당의 삶에 적응한 인생. 과장된 연기하나 없이 초연하면서도 힘있는 존재감으로 신뢰를 높인다.

관객들의 감정을 널뛰게 만드는 주역 밍 역의 나릴야 군몽콘켓은 설레는 로맨스를 제외한 모든 연기를 '랑종'에서 펼쳤다. 빙의 된 이후 모션들은 반복되는 설정과 만들어진 듯한 연기의 어색함이 티가 나기도 하지만, 모델로 잠깐 활약했을 뿐 연기 활동은 사실상 전무했던 배우가 스스로도 감당 안 될 정도의 열연을 소화해냈다는 것 만으로도 대견하다.

나홍진 감독이 쌓은 '랑종'의 서사는 촘촘하다. 가문에 얽힌 비밀이 따로 존재하고, 숨겨진 인물도 더 있다. '곡성'처럼 관객들의 믿음을 갈피 잡지 못하게 만들며 여러 번 배신한다. 바람따라 줏대없이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심경으로 '곡성'을 마주했다면 '랑종'은 천년묵은 고목나무를 뿌리채 뽑아 내쳐버리는 기분이다. 근간을 흔들고 소생 불가의 상태로 만든다. 그와중에 소소한 웃음도 챙겼다.

신을 모시는 연례 행사, 어둠 속 퇴마 장면 등은 태국 특유의 문화와 접목돼 신선함을 자아낸다. '곡성'에서 일광 황정민과 외지인 쿠니무라 준이 선보인 기싸움의 강렬함 만큼은 아니지만 독특하다. 밍이 변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설정들이나, '검은사제들'이 떠오르는 악령 퇴치 등은 꽤 익숙하기도 하다. '추격자' 슈퍼아줌마처럼 탄식을 불러 일으키는 캐릭터도 등장한다.

 
[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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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감까지 드는 후반부


사실 휘몰아치는 후반부는 점점 현실감과 동떨어져 스크린과 객석을 완벽하게 분리시켜 놓는다. 귀신 나오는 공포보다 잔인한 잔혹함에 혐오감과 역겨움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사담으로, '링'과 같은 공포영화는 절대 볼 수 없는 기자도 '랑종'은 두 눈 똑바로 뜨고 한 장면도 빠짐없이 담아냈다. 어깨는 두 번 들썩, 동공지진은 딱 한번 찾아와 스크린 모서리로 시선을 넘긴 것이 전부다.

문제는 흔히 생각하는 공포의 느낌과 결이 다른, 별개의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다는 것. 밤길이 무섭지도, 특정 장소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워지지도 않지만, 산책 나온 강아지와 아이가 누워있는 유모차는 차마 쳐다볼 수 없다. 더 무서운건 엔딩으로 치닫을 수록 눈 앞에 펼쳐지는 엄청난 장면에 어느새 적응이 되고 있다는 것. 물론 관객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이해도와 충격의 수위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시사회 직후 곧바로 지적된 일명 '강아지 장면'은 동물애호가 혹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관객들이라면 거두절미 '무조건' 피하기를 권유한다. 절대 비추천이다. '랑종'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이 그 장면이 맞나, 내가 이해하고 있는게 맞나'를 여러번 질문하게 만들지만 해당 장면은 기절할 정도다. 스토리의 연결고리를 떠나 장면 자체가 주는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텍스트로 옮겨 적을 수도 없다. 개봉 전 리뷰는 때론 예비 관객을 위한 안내문이 되기도 한다. 웬만하면 관객들의 관람 재미를 빼앗지 않기 위해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중하지만, 이번 만큼은 우회적으로 언급을 해서라도 '경고 딱지'를 붙일 수 밖에 없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잔혹함이나 선정적 장면을 팔아 흥행하겠다는 생각은 절대 없었다"고 했으니, 이 정도 예고는 감독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나홍진 감독은 그간 국내 정서에 맞게 온갖 선을 다 지켜 왔다는 것을 '랑종'으로 확인시킨다. "'곡성'은 코미디 영화다"는 5년 전 나 감독의 표현도 이제야 이해 가능하다. 누구도 금기 시키지는 않았지만 굳이 건드리지도 않았던,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벅찬 소재들을 '랑종'은 다 끌어 모았다. '랑종' 세계관에서는 금단의 선도, 희망도 없다.

 
[리뷰] 문제작 '랑종' 안내문 빙자한 경고문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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