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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침략 맞선 정의로운 전쟁" 6·25로 애국주의 불지피는 中

입력 2021-07-04 06:08 수정 2021-07-06 11:12

美에 맞선 6·25 거론해 민족감정 극대화
참전 노병엔 100주년 최고 훈장도 수여

시진핑, 100주년 연설서 "조국 통일"
'대만 통일' 통해 장기집권 명분 쌓기
中 잡지엔 대만 공격 시나리오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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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맞선 6·25 거론해 민족감정 극대화
참전 노병엔 100주년 최고 훈장도 수여

시진핑, 100주년 연설서 "조국 통일"
'대만 통일' 통해 장기집권 명분 쌓기
中 잡지엔 대만 공격 시나리오도 등장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 동원된 인민해방군 헬기들 〈사진=신화사 캡처〉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 동원된 인민해방군 헬기들 〈사진=신화사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일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대만 통일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에 맞물려 대륙의 한 잡지가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 공격 시나리오를 공개했습니다. 일종의 심리전이죠. 시진핑 입으로 할 수 없는 하드코어 메시지를 미디어를 통해 방출한 겁니다.

공격은 3단계에 걸쳐 이뤄지는데 1단계는 대만 방공망에 대한 탄도미사일 공격입니다. 레이더기지와 공군기지, 미사일 기지가 타깃입니다. 2단계는 군 기지와 사회기반 시설 공격입니다. 주로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크루즈 미사일이 동원됩니다.

3단계는 전함과 지상군 미사일 공격으로 상륙 저지 시설을 무력화하는 겁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 동원된 인민해방군 헬기들. 〈사진=신화사 캡처〉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 동원된 인민해방군 헬기들. 〈사진=신화사 캡처〉

도상 시나리오와 현실은 괴리가 커 실제로 구현이 될 수 있을지는 상당히 불투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작전 계획이 대중들에게 퍼질 때 연상되는 효과는 실질적입니다. 미사일과 전함, 전투기들이 대만 상공을 어지럽게 돌아다닐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낳기엔 충분하니깐요.

대만 여론에 대한 군사 심리전의 저간에는 시진핑 연설에 담긴 두 번째 코드가 담겨 있습니다. 보기보다 더 복잡한 대만 문제입니다.

중국 대륙은 시진핑으로 대표되는 혁명 2세대가 권력을 장악했고 공고히 다지고 있습니다. 마오와 함께 국공내전을 함께 싸운 그야말로 대주주들의 자녀들입니다. 6·25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대만 통일 기회는 날렸습니다. 미완의 혁명이라고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중공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시 주석이 대만 통일에 대한 의지를 과시하자 대만 당국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시진핑 정권으로선 통일을 부정하고 현상유지 또는 독립을 주장하는 여론 기류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 기념식 모습. 〈사진=AP 연합뉴스〉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 기념식 모습. 〈사진=AP 연합뉴스〉

게다가 대만인들의 인구구조가 바뀐 것도 이런 기류가 일회성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코로나 창궐 전 2019년 가을 타이베이 현지 취재 내용입니다.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국민당이 대륙을 뒤로하고 대만으로 탈주한 지 70년. 양안(중국·대만)을 보는 대만인들의 시각도 달라졌다. 대륙 출신 1세대들이 사망했고 대만에서 태어난 2·3세대들은 1세대와 달리 대만에 대한 귀속감과 대만인으로서 정체성이 크다. 이 때문에 중국과의 통일이나 독립이 아닌 일단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다(중앙일보, 2019 11. 홍콩 지켜보던 대만인들 “독립 필요 없어…지금처럼 살겠다”).“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군이 대만으로 건너온 지 70년이 넘으면서 대륙 출신 1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대만에서 태어난 2세대, 특히 80년대 이후 태어난 3세대는 대륙 수복에 대한 욕구나 동기 등 자아 인식이 없습니다.

■ "타이베이는 중국 대도시" vs "베이징은 외국 도시"

양이 어느 정도 수위에 달하면 질적 내용이 바뀐다고 했던가요. 세월이 중국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버렸습니다. 대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볼까요.

“베이징 또는 항저우에서 오는 중국인들은 타이베이를 상하이나 선전 같은 자국의 대도시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모양이지만 우리 대만인들은 베이징이 서울이나 도쿄, 자카르타 같은 국제도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중앙일보, 2019 11. 홍콩 지켜보던 대만인들 “독립 필요없어 …지금처럼 살겠다”).“

지난 3월 대만 대륙위원회 여론조사에서 '중국이 대만인에 비우호적인 입장이라고 본다'고 응답한 사람은 60.6%나 됐었죠. 시진핑 집권 이전인 2011년의 40.8%보다 훨씬 악화된 수칩니다.

중국 대륙에선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들떠 있는 반면 대만에선 무시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만평. 〈사진=둬웨이 만평 캡처〉중국 대륙에선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들떠 있는 반면 대만에선 무시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만평. 〈사진=둬웨이 만평 캡처〉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서태평양으로 나가는 지정학적 요충이라는 측면에서 대만은 사활적 이익이 걸린 땅입니다. 인민해방군이 부단히 전력을 확충하고 있다지만 대만이 보유한 대함 미사일의 양과 질을 감안하면 대만 상륙은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대만 통일 문제는 시진핑 장기집권의 명분이기도 하지만 군사적·국제정치적 현실의 장벽이 높아 시간이 지날수록 쫓기는 입장이 되는 역설을 낳고 있습니다.

일장 연설할 자리가 생길 때마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강조하겠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부메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대만 문제는 양날의 칼입니다.

세번째 코드, '6·25'입니다.

중국은 미국처럼 상시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국공내전 이후 6·25전쟁 참전과 60년대말 소련과 벌인 국경분쟁, 79년 베트남 침공이 중국공산당이 주도적으로 벌인 전쟁입니다. 이게 다입니다. 국가 행사에 걸맞는 훈장을 수여하려 해도 옵션이 셋 밖에 없습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최고 훈장 수훈자에 6.25전쟁 참전 노병 3명이 포함됐다.〈사진=신화사 캡처〉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최고 훈장 수훈자에 6.25전쟁 참전 노병 3명이 포함됐다.〈사진=신화사 캡처〉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주년 기념 최고 영예 훈장 수훈자에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했다) 전쟁' 참전군인 3명을 포함했습니다.

1950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통일 목전의 한국군과 미군 주력의 유엔군을 38선 이남 평택까지 밀어냈던 인민해방군 노병. 그 노병이 이번에 훈장을 받은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중국은, 왜 이 시점에 6·25전쟁 수훈자를 끄집어내 우리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냐는 겁니다.

최고 영예 훈장 수여자들을 에스코트하는 베이징 경찰. 〈사진=신화사 캡처〉최고 영예 훈장 수여자들을 에스코트하는 베이징 경찰. 〈사진=신화사 캡처〉
최고 영예 훈장 수훈자 환영 행사에 차출된 학생들이 꽂다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신화사 캡처〉최고 영예 훈장 수훈자 환영 행사에 차출된 학생들이 꽂다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신화사 캡처〉
인민대회당 행사 요원들이 휠체어에 탄 수훈자를 들어 옮기고 있다. 〈사진=신화사 캡처〉인민대회당 행사 요원들이 휠체어에 탄 수훈자를 들어 옮기고 있다. 〈사진=신화사 캡처〉

■ 국공내전 이후 중국이 치른 3번의 전쟁

표면적으로는 미국 보란 듯이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류의 대미 메시지가 읽히지만 속내는 좀 더 복잡해 보입니다.

미국의 봉쇄 전략에 맞서 중국은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집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정상을 잇따라 만난 데 이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이 임박하자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양제츠 공산당 정치국원이 급하게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미·러 정상 회담 전에 러시아와 중국의 외교 사령탑이 머리를 맞대는 모양새, 뭔가 김을 빼는 일정이었죠. 미국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푸틴은 양제츠 접견을 피한 채 미·러 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했습니다. 미중간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는 외교 심리전이 이렇게 치열한 세상입니다.


행사에 참가한 소수민족 대표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대형 화면을 보고 있다  〈사진=신화사 캡처〉행사에 참가한 소수민족 대표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대형 화면을 보고 있다 〈사진=신화사 캡처〉

중국은 자국의 주미 대사 라인까지 동원해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와 긴밀한 대화를 나눈 양 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 강도와 방향이 만만치 않습니다. 1970년대 미·중 데탕트로 소련 봉쇄를 가동했던 그 솜씨로 이번엔 미·러 데탕트를 향해 거리를 좁혀가고 있습니다.

지난달(6월) 16일 미·러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두 개의 강대국(two great powers)'이란 말로 푸틴 대통령의 체면을 한껏 높여줬습니다. 지역 강국이 아니라 빅2의 위상으로 대접해준 겁니다.

외교에 능한 러시아의 속내를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에서 러시아와 있었던 불미스런 분쟁을 이 시점에서 자극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 패전 다름 없는 베트남 침공 '잊혀진 전쟁'

1979년 베트남 침공은 중국공산당에겐 '잊혀진 전쟁'입니다. 간신히 체면치레만 한 사실상 패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선 베트남전을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편입니다. 시나브로 잊힌 전쟁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2017년 말 개봉돼 2주만에 박스오피스 10억 위안(약 1700억원)을 돌파해 화제를 모았던 펑샤오강 감독의 영화 '팡화(芳華·youth)'입니다.

79년 베트남 침공전을 다룬 영화 '팡화' 〈사진=바이두백과 캡처〉79년 베트남 침공전을 다룬 영화 '팡화' 〈사진=바이두백과 캡처〉

문화대혁명에 이어 개혁·개방, 1979년 2월 중·베트남전쟁 등 중국 현대사를 할퀴고 지나간 굵직한 사건의 격랑 속에서 문공단(文工團·군 소속 무용 예술단) 청춘 남녀들이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시대의 무게를 처연한 러브 스토리 안에 녹였습니다.

팡화는 당초 2017년 9월30일 개봉 예정으로 포스터까지 공개됐으나 '소재의 민감성' 등을 이유로 당국의 허가가 늦어지면서 연말에 개봉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인민해방군은 28일간 벌어진 전쟁에서 30만명을 투입해 중국 공식 기록상 2만7000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사망만 2만7000명이고 사상자는 3만명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79년 전쟁'은 전체 전황 차원에선 인민해방군이 베트남 북부 성도 랑 손을 점령한 상태에서 일방적 종전 선언과 함께 끝났지만 개별 전투에선 영화가 고증해 보여주듯 국공내전의 인민해방군이 아니었습니다. 병사들의 전투 수행 능력이 떨어졌던 거죠.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숙청의 소용돌이를 겪었던 혼돈의 사회상이 군대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6·25 전쟁은 중국공산당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집니다. 기만과 기습으로 미군을 곤경에 내몰기도 했고 강원도 현리에선 국군 군단 하나를 포위해 궤멸적 타격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1·4후퇴 때는 평택선까지 한미·유엔 연합군을 밀어내기도 했습니다.

■ '항미원조'표현, 북한 남침과 중국 개입 정당화

2010년 가을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6·25 전쟁을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북한의 기습 남침과 중국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발언이었죠.

'정의'라는 가치까지 얹어 이 전쟁을 항미원조로 규정했습니다. 민심을 모으고 민족감정을 극대화하기에 그만입니다. 게다가 천안문 성루에서 마오쩌둥이 ”중국 인민이 일어섰다“고 선포한 뒤 한반도 전역(戰役)으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중국공산당의 활동을 그린 조각품.    〈사진=바이두 캡처〉중국공산당의 활동을 그린 조각품. 〈사진=바이두 캡처〉

공산주의권 몰락으로 방향성을 잃었던 중국공산당. 공산당이 골몰 끝에 대체 이념으로 갈고 닦아왔던 중화 애국주의가 이제 본격적으로 근육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6·25전쟁은 민족주의를 가동시키기 좋은 소재입니다.

앞으로 유불리를 떠나 민족감정에 호소할 기회만 오면 6·25전쟁은 항미원조의 앵글에서 소환될 겁니다. 영화든 TV 드라마든 책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내년이면 한·중 수교 30주년 입니다. 하지만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후 시진핑의 답방도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탭니다. 중국에선 6·25전쟁 수훈자들이 '정의의 사도'로 등장하며 우리의 뼈아픈 기억을 소환합니다. 불편한 진실 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가운데 30년이 지나갑니다. 한·중관계의 현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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