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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지나도 사고 순간 또렷" 일터의 죽음, 목격자의 고통

입력 2021-06-22 20:26 수정 2021-06-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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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2일) 뉴스룸은 일터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의 고통에 주목했습니다. 그날의 또렷한 기억, 그리고 떨쳐지지 않는 죄책감에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배양진, 어환희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기자]

지난 4월 고 이선호 씨의 사고 모습입니다.

300kg짜리 철근을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는 이 사람, 바로 동료 A씨입니다.

유족에게 처음으로 사고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A씨/고 이선호 씨 동료 : 아드님 있는 데에 그게 떨어진 거야. (떨어지면서 그래서 바로 깔렸다는 말이야?)]

두 달이 지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A씨를 찾아 나섰습니다.

[고 이선호 사고 대책위 관계자 : 지금은 (인터뷰는) 어려운 상태로 보입니다. 사고 당시를 여쭤본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본인 동의를 받아서 어렵게 정신과 주치의를 만났습니다.

[김성주/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차 소리만 들어도 너무 깜짝 놀라고, 쿵쿵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고… 아직은 작업장 가기가 두렵다…]

악몽과 죄책감에 잠도 잘 못 잔다고 합니다.

[김성주/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본인이 꺼내려고 했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고,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고… 잠이 들면 그 꿈을 꾸니까 잠을 잘 수가 없고…]

하지만, 사고 이후 일주일 간 정신과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김성주/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일을 나가다가 일은 못 나가게 되고, 근데 계속 생각은 나고… 조기개입을 했었어야 하고요.]

2년 반이 지났지만 그날, 그곳의 기억은 너무나도 또렷합니다.

[이인구/2018년 12월 김용균 사고 최초 목격자 : 맥박을 짚었는데 얼음장 이상으로 찬 것 있죠. 가슴이 덜컹 내려 앉으면서…그게 '커트 커트' 스크린처럼 돌아가고.]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인구/2018년 12월 김용균 사고 최초 목격자 : 돌아가고도 싶은데 이제는 살도 16kg 찌고 기억력이나 의욕 같은 것도 떨어지고…]

고마운 형, 그리고 친한 동료가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본 뒤 그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달라졌습니다.

[고봉진/2017년 10월 사고 목격자 : 일상이 모두 바뀌어가지고 긴장하면 떨고, 이렇게 땀 흘리고…]

[박모 씨/2020년 4월 사고 목격자 : 컨트롤이 잘 안 되고, 좀 많이 거칠어진 것 같아요. 왜 내가 가족들한테 화를 많이 내지?]

[남모 씨/2021년 1월 사고 목격자 : 소리가 크게 나거나 어둡거나 이런 게 생기면 화가 나더라고요.]

'끊임없이 괴롭히는 그날의 잔상'

[고봉진/2017년 10월 사고 목격자 : 뉴스에 일주일에 한두 건씩 (사고 소식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럴때마다 제가 겪었던 것이 계속 기억이 나요.]

[박모 씨/2020년 4월 사고 목격자 : 회사에서 올해만 해도 두 명이 돌아가셨거든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드니까…]

'멈추지 않는 죄책감'

[남모 씨/2021년 1월 사고 목격자 : 계속 그냥 눈물이 나왔어요. 제가 될 수도 있었잖아요.]

[고봉진/2017년 10월 사고 목격자 : 4년이 지났어도요. 제가 최고로 힘든 것이 죄책감. 차라리 내가 트러블 조치를 했다면…]

[박모 씨/2020년 4월 사고 목격자 : (언제쯤 괜찮아질 거라고 막연하게 예상되는 건 있으세요?) 막연한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빨리 좀 낫고 싶은데 왜 안 나을까?]

[앵커]

이 내용 취재한 어환희 기자가 지금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뒤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기자]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추정은 해볼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목격자, 가족들을 포함해 적어도 한 명 이상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습니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가 882명이니까, 적어도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사망사고를 보고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겁니다.

하지만 산재로 인정받는 경우는 전체의 10%도 안 되는 걸로 추정됩니다.

[앵커]

왜 이렇게 비율이 낮습니까? 승인이 잘 안 나는 건가요?

[기자]

승인율은 꽤 높습니다.

하지만 신청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트라우마로 산재가 인정되는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조가 있으면 산재 신청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것도 어렵습니다.

또 하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사업장의 태도입니다.

이 내용은 리포트로 준비했습니다.

치유를 위한 골든타임은 사고가 난 지 일주일에서 4주까지입니다.

[이주연/충남근로자건강센터 심리상담사 : 이 기간 놓쳐서 트라우마로 진행되면 그때부터는 오랜 치료 기간이 걸려요. 일상 자체가 트라우마에 잠식돼 버리는 거예요.]

하지만, 당장 사업장의 벽에 부딪힙니다.

직접 구조에 나섰지만,

[박모 씨/2020년 4월 사고 목격자 : 저를 보면서 '나 좀 살려줘, 숨을 쉴 수 없어, 너무 힘들어…' 그 눈빛도 계속 생각이 나고…]

사업장은 트라우마가 아니라고 합니다.

"사고 순간을 본 게 아니었다"는 이유입니다.

개인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동료 노동자 : (회사에선) 그 정도면 되지 않았냐, 복귀해라, 괜찮은 것 같은데 남자가 그 정도 뭐…]

트라우마 예방 센터는 올해 13곳으로 늘었지만, 사업장이 바뀌지 않으면 큰 효과가 없습니다.

[허윤제/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 부대표 : 왜 사업주가 트라우마 예방을 해야 하냐,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는 개인이 챙기면 되는데 (그런 식이죠.)]

고용노동부가 트라우마를 관리하라고 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대응을 사업주의 의무로 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상그래픽 : 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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