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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IEA "2050 탄소중립=2030 탈석탄"이라는데…한국 석탄투자는 '현재 진행형'

입력 2021-06-21 09:32 수정 2021-06-26 22:4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3)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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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3)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2/6

지난 79번째 연재에 이어 전방위적인 탄소 감축 압박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지난달 IEA(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엔 우리나라의 현실을 요즘 말로 '뼈 때리는' 내용이 여럿 담겼죠. ① OECD 국가의 경우 2035년까지 발전 부문에서 화석연료를 퇴출,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② 석탄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화석연료를 캐내는 행위는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③ 재생에너지는 대대적으로 빠르게 확대되어야 한다. 이 셋이 대표적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EA "2050 탄소중립=2030 탈석탄"이라는데…한국 석탄투자는 '현재 진행형'


우선, 지난 연재에서도 언급했다시피 IEA는 여타 글로벌 환경단체와 같은 '친환경적'인 곳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나리오가 결코 '환경만 생각해 시민사회나 기업, 정부에 지나치게 가혹한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IEA는 무엇보다 2020년대가 청정에너지의 급격한 팽창을 이루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우선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신규 설치 규모는 지금의 4배로, 전기차의 판매량은 지금의 18배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 IEA의 연구 결과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론 2030년, 연간 630GW의 태양광 발전시설과 390GW의 풍력 발전시설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현재 글로벌 자동차 판매 비중에서 5%에 불과한 전기차의 비중은 2030년 60%까지 높아져야 하고요.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해 2030년 달성되어야 하는 것들. 왼쪽부터 태양광·풍력 발전 용량, 전기차 판매량, GDP 에너지 밀도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해 2030년 달성되어야 하는 것들. 왼쪽부터 태양광·풍력 발전 용량, 전기차 판매량, GDP 에너지 밀도 (자료: IEA)


뿐만 아니라 GDP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해마다 4%씩 줄여야 한다는 것이 IEA의 연구 결과입니다. 1달러를 벌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되겠어?' 벌써부터 회의에 가득 찬 질문들이 들리는 듯합니다. 재생에너지는 여전히 '딴 나라 이야기'고, 전기차 역시 국산차로는 몇 종류 없는 데다 여전히 전기를 발전하는 데에 석탄의 비중이 가장 큰 상황에서 당연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2050년 탄소중립으로의 여정 '총 30년'의 시간 가운데 '초반 10년'에 이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는(혹은 요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2050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 해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들 (자료: IEA)2050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 해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들 (자료: IEA)


바로,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들로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변화(재생에너지의 대대적인 확대,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 확대 등) 대부분은 이미 상용화된 기술로 가능한 일인 것이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를 위해 우리가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 그리고 2020년 기준으로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통해 전체 저감 노력의 80%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 IEA의 설명입니다.

이는 한편으론 기쁜 소식이기도, 다른 한편으론 나쁜 소식이기도 합니다. '당장 우리가 충분한 감축 여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그런데,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한 마지막 노력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미 갖고 있는 기술력과 약간의 노력으로 초반엔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넷 제로'를 목전에 둔 상황에선 온실가스 1톤, 1kg을 줄이는 일이 기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어려울 것임을 보여주는 겁니다.

2020년부터 2050년까지, IEA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우리가 5년마다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간 목표들을 정리했습니다. 당장 올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신규 석탄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을뿐더러 신규 유전이나 가스전의 개발도, 석탄광산을 확장하거나 새로 개발하는 것도 멈춰야 합니다. (첫 마일스톤부터 우리나라는 삐걱거리는 셈입니다만) 2025년엔 더는 화석연료를 쓰는 보일러의 판매도 할 수 없습니다. 2030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60%가 전기차로 채워지고, 한국을 포함한 OECD 국가들에선 석탄발전이 단계적 폐쇄가 끝나는가 하면, 수소를 통한 발전도 850GW로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새로 짓는 모든 건물은 '탄소 제로' 준비를 마친 '그린 건축물'이어야 하고요.

2050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의 주요 중간 목표 (자료: IEA)2050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의 주요 중간 목표 (자료: IEA)


2035년엔 본격적으로 신차 판매에 있어 '내연기관 퇴출'이 전 세계에 걸쳐 이뤄집니다. 대형 트럭이라 할지라도 판매량의 50%가 전기트럭이고요. 또, 한국 등 모든 OECD 국가에서 적어도 발전 분야에서 만큼은 탄소중립을 달성합니다. 5년 후인 2040년엔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전 세계 발전분야의 탄소중립을 이룩해야 합니다. 신축·구축 할 것 없이 모든 건물의 절반이 '탄소 제로'여야 하고, 항공 역시 저공해 연료의 비중이 50%를 넘어야 하고요. 또한, 제아무리 중공업이라 할지라도 기존의 '고탄소 설비'의 90%가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2050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물의 85% 이상이 '탄소 제로 건물'로 변모하고, 글로벌 전력생산의 70%가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이뤄져야 비로소 탄소중립, 우리가 흡수할 수 있는 만큼만 내뿜는 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보다 더 큰 폭으로, 더 빠르게 감축 노력을 이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상용화하지 못 한(혹은 여전히 상상 속의 기술인) '탄소 포집'이 포함된 셈법이니까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1.5도 보고서의 주 저자인 조리 로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기후변화환경연구소 연구 책임자는 “IEA가 제시한 이번 로드맵을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데, 시나리오에서 상당 부분을 바이오에너지와 CCS(Carbon Capture Storage, 탄소포집저장)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은 이유입니다.

#그런데_한국은?
현재 건설 중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회사채 발행을 결정한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가 1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현재 건설 중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회사채 발행을 결정한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가 1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글로벌 스케일의 로드맵을 벗어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보겠습니다. 정부의 그린뉴딜 선언과 2050년 탄소중립 선언, 그리고 P4G 정상회의 등 여러 '이정표'가 되는 시기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 민간기업, 공적금융기관, 민간금융기관 등은 잇따라 탈석탄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언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번엔 다르겠지', '이미 해외 투자자들도 탈석탄 금융을 이행하고 있는데 설마'…'석탄금융 큰손' 농협은 이러한 생각이 전부 오산이었음을 깨우치게 해줬습니다. 지주사인 농협금융지주가 지난 2월,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것이 무색하게 NH투자증권이 현재 건설 중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공사 비용을 대기 위한 삼척블루파워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

'삼척블루파워'라는 회사명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석탄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회사명엔 '블루'를 앞세우고, 실제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은 뒤편에 물러나 있으니까요. 본래 이름은 포스파워, 포스코의 자회사로 2011년 출발했습니다. 2020년 3월, 지금의 이름으로 사명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지분 구조를 보면, 농협은행이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포스코에너지와 포스코건설이 3분의 1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삼척블루파워가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삼척 석탄화력발전소는 이제 약 40% 가량 지어진 상태입니다. 삼척블루파워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입니다. 회사설립 10년이 지나도록 아직 공정률이 절반을 넘기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필요한 전체 자금 4조 8790억원 가운데 20%만 자기 자본으로, 나머지 80%는 외부 자본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는데, 글로벌 탈석탄 흐름에 우리나라도 이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탈석탄 네트워크인 석탄을 넘어서(Korea Beyond Coal)는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여전히 8천억원에 달하는 공사비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탈석탄 금융에 나서면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채권 발행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돌연, NH투자증권이 단독으로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를 발행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NH투자증권은 당장 '탈석탄 선언을 어긴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지,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섭니다. 일견 타당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선언 내용은 “석탄화력발전 관련 신규 여신, 투자, 채권인수 전면 중단”이었으니까요.

현재 건설 중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회사채 발행을 결정한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가 1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현재 건설 중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회사채 발행을 결정한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가 1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건설 중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회사채 발행을 결정한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가 1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장 국내 신용평가사 3곳은 일제히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등급 전망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상태입니다. 이미 석탄발전소의 가동률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상황에서 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100% 출력 가동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당초 사업 계획 당시 '가동기간 30년 평균 가동률 85%'를 상정해 건설 원가를 회수할 수 있을 걸로 내다봤지만 85% 역시 불가능한 수준이죠. 탈석탄 움직임 때문만 아니라 미세먼지로 인한 비상저감조치 때문에라도 30년 평균 85%는 쉽지 않은 숫자입니다. 여기에,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는 무보증 사채인 만큼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탈석탄'을 이유로 이미 국내 자산운용사의 88.6%가 인수 거부를 선언했으니까요.

문제는, 발행한 회사채를 사가는 이가 없거나 적은 경우, 남은 회사채는 모두 NH투자증권이 갖게 된다는 겁니다. NH투자증권이 스스로 탈석탄 선언을 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죠. 현재 건설 중인 발전소를 석탄이 아닌 LNG로 전환해도 모자란 상황에 발전사도,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일까요. 이 부분만 다루더라도 몇 회의 연재에 걸쳐 설명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선 추후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일단, 오늘 간략히 살펴본 IEA의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최소 요건들만 따져보더라도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임엔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발전과 산업, 수송과 건물 등 각 부문의 종합적인 키포인트만 살펴봐도 글로벌 탄소중립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선 특히나요. 발전과 수송, 산업과 건물 등 세부 항목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우리나라만 유별나게 외친 선언이 아닙니다.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각 나라가 선언하고, 약속하고, 이미 어느 정도 이행되고 있는 일이죠. 그렇기에 앞으로 이어지는 연재들을 통해선 분야별 탄소중립 로드맵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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