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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종사도 첫 '방사선 피폭' 산재 인정 "일반인 80배"

입력 2021-06-18 14:42 수정 2021-06-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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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방사선 피폭으로 백혈병에 걸려 숨진 승무원이 산재 판정을 받은데 이어 이번엔 같은 병에 걸린 조종사가 산재 판정을 받았다. [JTBC캡처]지난달 방사선 피폭으로 백혈병에 걸려 숨진 승무원이 산재 판정을 받은데 이어 이번엔 같은 병에 걸린 조종사가 산재 판정을 받았다. [JTBC캡처]
32년간 대한항공에서 조종사로 근무하다 2017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인 A씨가 지난 16일 산재 판정을 받았습니다. 북극항로 등 고위도 노선을 다니며 방사선에 피폭돼 백혈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이 항공기 조종사의 방사선 피폭 산재를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달엔 전직 비행 승무원이 항공업 종사자 중 방사선 피폭 산재 인정을 최초로 받은 바 있습니다.

두 사람을 대리한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비행 승무원의 방사선 피폭 문제가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가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대한항공 노사는 최근 일련의 산재 판정 이후 조종사 및 승무원에 대한 방사선 피폭량 관리 협의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A씨의 산재를 인정한 업무상 질병판정서 중 일부.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실]A씨의 산재를 인정한 업무상 질병판정서 중 일부.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실]
방사선 피폭량 높은 고위도 노선 비율 75%
김 노무사와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실을 통해 JTBC가 확보한 A씨의 업무상질병판정서와 역학조사 의견서 등에 따르면 A씨는 32년간 19,337시간을 비행했습니다. 이중 로그 기록이 남아있는 비행시간 10,979시간 중 A씨의 고위도 노선(북극항로 포함) 비행 비율은 75%에 달합니다. 위도가 높을수록 조종사와 승무원의 방사선 피폭량도 늘어납니다.

지난달 산재 판정을 받은 전직 승무원 B씨의 경우 고위도 노선 탑승 비율이 30% 정도였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런 기록을 통해 A씨가 운항 중 노출된 우주 방사선 선량을 약 98.93msv로 추정했습니다.

■"원자력 관련 직군 대비 10배, 일반 직군 대비 80배"
김 노무사는 이 수치 역시 A씨의 피폭량을 2배 이상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측정 기준에 따라 방사선 피폭량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노조위원장 출신인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도 "중장기 연구용역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항공기승무원의 우주 방사능 안전기준 마련과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A씨의 이런 수치도 원자력발전소나 병원 방사선사 등 방사선 관련 직군의 피폭량보다 10배 이상 높습니다. 일반 직종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80배까지 벌어집니다.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는 "A씨의 업무와 급성 골수 백혈병 발병 간의 인과관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습니다.
 
A씨와 지난해 숨진 전직 승무원 B씨 모두 방사선 피폭량이 높은 북극항로 근무 비중이 높았다. [JTBC캡처]A씨와 지난해 숨진 전직 승무원 B씨 모두 방사선 피폭량이 높은 북극항로 근무 비중이 높았다. [JTBC캡처]
■산재 결과 기다리는 또다른 조종사 가족 "아직도 믿기 어려워"
A씨는 생존한 상태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달 최초로 방사선 피폭 산재 인정을 받은 전직 승무원 B씨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산재 판정까지 3년이 걸렸는데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 겁니다. 김 노무사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 환자의 상태가 순식간에 나빠진다"고 했습니다.

올해 4월 전직 대한항공 조종사 출신인 남편 김모씨(63세)를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떠나보낸 김선화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김씨는 남편이 숨지기 2주 전 "반드시 이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고 싶다"며 남편의 동의를 얻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습니다.

평상시 그 누구보다 건강했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이유를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조종사의 방사선 피폭' 관련 자료를 발견한 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대기업과 법적 분쟁을 하는 게 힘들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김씨는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일"이라 전했습니다.

 
지난 4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진 전직 대한항공 조종사 김씨와 그의 부인 김선화씨(윈쪽)의 모습. [김선화씨 제공]지난 4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진 전직 대한항공 조종사 김씨와 그의 부인 김선화씨(윈쪽)의 모습. [김선화씨 제공]
김씨는 "비행이 천직이었던 남편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사에 누를 끼치길 원치 않았다"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숨진 김씨는 다른 조종사들에게 사정이 생기면 그 누구보다 먼저 나서 빈자리를 메우던 동료였습니다.


김씨에 따르면 남편이 처음 증상을 드러낸 건 지난해 11월이었습니다. 올해 4월 숨졌으니 단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겁니다. 김씨는 당시 남편과 캐나다에 있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피곤하다"며 코피를 흘렸고 피가 멈추지 않아 인근 병원에 들렀다가 급성 골수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씨는 "당시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지난 4월 숨진 김씨가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모습. [김선화씨 제공]지난 4월 숨진 김씨가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모습. [김선화씨 제공]
■ "숨진 남편, 어떤 조종사보다 최고였다"
숨진 조종사인 김씨 역시도 방사선 피폭량이 많은 북극항로를 중심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산재 판정을 받은 A씨와 유사한 사례입니다. 김씨는 "남편의 산재를 신청할 때만 해도 방사선 피폭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항공 승무원과 조종사는 없었다"며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고, 다른 항공 노동자들을 위한 일말의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어 택한 일"이라 했습니다.

김씨는 어제도 40여년간 함께 살아왔던 남편 사진을 정리하며 숨진 고인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JTBC에 "남편이자 기장이었던 그이의 비행은 어떤 조종사보다 최고였고 또 자랑스러웠다"며 63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떠난 남편이 너무 그립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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