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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의 '송암동 학살'…희생자 최소 8명 더 찾았다

입력 2021-05-12 21:47 수정 2021-05-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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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은 마을에서 놀던 소년들에게 또, 집에 있거나 길을 가던 시민들에게도 총을 쐈습니다.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있었는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광주 송암동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 사건만 해도 최소 여덟 명의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가 더 있는 걸로 드러났습니다.

정진명 기자입니다.

[기자]

[당시 공수부대원 증언 : 꼬맹이들 몇 명 그래 됐는데…그때 얼핏 서너 살밖에 안 보여요. 나중에 보니까 죽은 애더만. 사격 중지를 하라고 해도 안 돼요, 그게.]

광주 송암동에 살던 박순자씨는 아직도 1980년 5월 24일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11공수여단과 전교사 교도대 병력 사이에 오인 사격이 벌어진 날입니다.

[박순자/당시 마을 주민 : 방에도 다 쏴 버려서 옷이고 냉장고고 다 구멍 나고…]

오인 사격으로 군인 9명이 숨지자 계엄군은 보복에 나섰습니다.

마을 청년 3명을 집에서 끌어내 사살하고 길 가던 여성을 하수구까지 쫓아가 총격을 가했습니다.

11공수여단은 오인사격 전 저수지 근처에서 놀던 당시 12살 방광범, 11살 전재수군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모두 아무 죄가 없는 시민들이었습니다.

[박순자/당시 마을 주민 : 아니야, 데모하는 사람 아니야. 일반인이야 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인데 못 다니니까 집에 있었지.]

5월 21일 오후 광주봉쇄작전이 시작된 날도 민간인 학살이 있었습니다.

광주 밖으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시위대에게 경고도 없이 총을 쐈습니다.

공식 사망자는 3명. 하지만 당시 목격자가 1995년 검찰 조사에서 말한 사망자는 최소 9명 이상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4살 아이는 왼쪽 목에 총상을 입고 산에 매장됐다가 나중에 발견됐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연구위원 : 무관한 사람들을, 일반 민간인들을 죽게 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학살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518 당시 숨진 희생자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시신은 송암동에서만 8구로 파악됐습니다.

518진상규명위원회는 송암동을 비롯해 광주교도소 41구 등 시신 55구가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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