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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계엄군 진술 확보…저격수 배치해 시민들 조준 사격"

입력 2021-05-12 14:10 수정 2021-05-12 14:22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성과 보고
조준경 단 M1 소총으로 '조준 사격'
건물 옥상에 M60 기관총 설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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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성과 보고
조준경 단 M1 소총으로 '조준 사격'
건물 옥상에 M60 기관총 설치도

1980년 5월 27일 당시 전남도청 인근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1980년 5월 27일 당시 전남도청 인근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시민들을 조준 사격했다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기관총이 사용됐다는 진술도 확보됐습니다.

오늘(12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기자 간담회를 열고 5.18 민주화 운동 진상 조사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80년 5월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M60 기관총 사격 및 저격수 조준 사격

위원회는 "1980년 5월 20일 밤 10시 이후 제3공수여단이 광주역과 같은 달 22일 광주교도소 감시탑과 건물 옥상에 M60 기관총을 설치하고 M1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을 살상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제11공수여단의 경우 1980년 5월 21일 낮 1시쯤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후에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다고 인정한 진술을 확보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관총 및 저격수 동원 진술은 5.18 당시 광주역 일원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이들과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발생한 총상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인 '카빈총 총상' 의혹 진실 규명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원회는 "탄도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전문 기관에 관련 진술 내용을 의뢰해 추가 정밀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며 "향후 사망 원인에 대한 조사 내용을 포함해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 5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된 시민들의 관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1980년 5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된 시민들의 관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 도로 차단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또 위원회는 "차량과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최소 13차례 이상의 차량 피격사건이 있었음을 증언과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됐다"고 했습니다.

차량 피격은 광주교도소 양쪽의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고속도로에서 일어났습니다.

위원회는 "복수의 장병이 교도소 옆 고속도로를 지나던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해 사살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기존에 알려진 주남마을, 지원동 일원 마이크로버스·앰뷸런스 피격 사건 외에 또 다른 승합차 및 앰뷸런스 최소 5대를 피격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했습니다.

 
1980년 5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 앞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제공〉1980년 5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 앞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 북한 특수군 침투설

북한 특수군 침투설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위원회는 "군 및 정보기관에서 보유한 정보자료, 교범, 교훈집 등과 대조해 북한군 침투설을 분석하고 있으며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문건과 기타 공개자료를 통해 조사결과를 보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미국 정부 문서(주한 미 대사관, 국무부, 국방부, CIA 등)를 통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의 진위를 추적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북한군 침투설과 관련 "북한 특수군으로 광주에 침투했다고 최초로 말한 김명국(가명) 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했습니다.

위원회는 "김명국 씨의 진술은 그동안 위원회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자료와 연계해 북한 특수군 침투 가능성을 검증하는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5.18 민주화 운동 관련 구속, 송치된 616명의 구속자 중 단 한 명도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공소사실이나 판결 내용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북한 특수군 침투설을 주장해 온 또 다른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추가조사와 함께 관련 인물에 대한 조사를 병행해 의혹을 해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이 시위하는 학생을 연행해 무릎을 꿇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이 시위하는 학생을 연행해 무릎을 꿇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송암동 일원 민간인 학살

송암동 일원 학살 및 피해 실상에 대해선 계속 확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위원회는 "만 4세 어린이가 총격에 의한 총상을 입고 사망한 뒤 암매장된 사건에 대해 가해자를 특정하고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정확한 조사를 위해 송암동 일원에서 작전 중이던 계엄군 장·사병들의 증언을 추가 확보해 교차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위원회에 따르면 1980년 5월 21일 이후 광주봉쇄 작전이 수행되는 동안 송암동 일원에서는 제7공수여단, 제11공수여단, 제20사단, 전투교육사령부 병력 등에서 관련된 봉쇄 작전이 있었으며 계엄군 간의 오인사격과 민간인 학살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송선태 위원장은 "당시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되었던 장·사병들의 용기 있는 고백과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며 "비록 41년 동안 무겁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고백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는 장·사병들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시위대를 조준 사격해 살해한 당시 병사 등이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하겠다는 뜻을 전해오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자리가 준비될 때마다 국민께 공개해 진정한 화해와 화합의 길을 마련해 가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광주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다짐을 41년간 반복해 오고 있다"며 "진실에 기초한 국민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회공동체가 반목과 갈등, 폄훼와 왜곡을 극복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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