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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에 체액 넣었는데, 텀블러 훼손했다?…잇단 벌금형, 왜

입력 2021-05-06 14:18 수정 2021-05-06 15:14

'성적 가해' 행위지만, 현행법상 '강제추행' 처벌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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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가해' 행위지만, 현행법상 '강제추행' 처벌 어려워

텀블러의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PIXBAY]텀블러의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PIXBAY]
"6회에 걸쳐 피해자의 텀블러 안에 체액을 넣어 효용을 해하였다"

서울북부지법이 후배의 텀블러에 자위 행위를 한 뒤 자신의 체액을 6차례나 넣은 공무원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재물손괴였습니다. 텀블러의 가격보다 벌금의 액수가 훨씬 더 높습니다. 법조계에선 여기에 판사의 고민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성적 가해행위지만 판결엔 '물건 훼손'만
법령이 없어 처벌하기 어려운 가해자의 성적 행위를 벌금액에 반영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판결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A씨의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성적 가해행위인데 판결엔 성적 수치심 등 이와 관련한 피해가 언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물건에 대한 자해 행위를 한 피고인에게 적용할 조항이 재물손괴죄 외에는 마땅치 않아 벌어진 일입니다.

2019년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학생 C씨가 신발장에 벗어둔 피해자의 신발에 체액을 뿌렸습니다. 신체 접촉이 없어 C씨에게도 재물손괴죄가 적용됐고 벌금 50만원이 선고됐습니다. 피해자가 느낀 성적 수치심을 반영했다고 보기인 어려운 결과입니다.

◆강제추행 적용하려면 '신체접촉' 해야
강제추행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신체적 접촉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체액 사건'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체에 체액을 뿌린 경우엔 강제추행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2019년 수원의 한 대학교에서 피해 여성들의 가방과 등에 체액을 뿌린 남성 B씨는 신체 접촉이 인정돼 강제추행이 적용됐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습니다.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체액 사건)은 성적인 범죄가 맞지만 이를 처벌할 법이 없어 다른 법령을 끌어와 쓰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법이 만들어질 때는 예상치 못한 범죄가 생긴 것"이라 했습니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도 "최근 신설된 딥페이크 처벌 조항도 범죄가 생긴 뒤 법이 뒤따라 온 것"이라며 "신종 성범죄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 전했습니다

◆"성적 가해 행위"라 질타한 판사도
이런 체액사건에서 재물손괴죄가 적용돼 실형이 나온 드문 사례가 있긴 합니다. 2018년 부산의 한 대학원 연구원인 D씨는 동료 연구원의 커피에 수십차례에 걸쳐 체액과 침, 가래 등을 넣은 커피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 남성에게도 재물 손괴죄가 적용됐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D씨의 범행은 단순히 물건을 못쓰게 만드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장기간 성적 가해행위를 한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체액 사건이 '성적 가해 행위'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D씨는 피해자의 통화를 몰래 엿듣고 피해자의 전자 기기를 버리기도 해 다른 혐의(절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도 함께 적용됐고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물손괴죄만으로 실형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법조계에선 재판부의 '성적 가해 행위' 판단이 실형의 결정적 요소라 분석했습니다.

이현곤 변호사는 "현행 법률상으론 또다른 체액 사건이 발생할 때 재물손괴죄의 형량(징역 3년 이하, 벌금 700만원 이하)을 높게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순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역시 판례나 전례가 많지 않아 새로운 입법 논의가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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