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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 않은 통영 발령에 "좋은 데 간 것"...양승태 등 손배소 재판 시작

입력 2021-04-23 17:40 수정 2021-04-23 18:44

현직 판사, "인사 불이익 등으로 피해봤다"며 양승태 전 원장 등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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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 "인사 불이익 등으로 피해봤다"며 양승태 전 원장 등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민사 법정에 등장한 '사법 농단' 법관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 농단'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의 이름이 형사 법정이 아닌 민사 법정에도 올랐습니다.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법원 행정처의 인사 불이익 등을 이유로 지난해 11월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남성민·김연학 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 나상훈 전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이 그 대상입니다. 중앙지법 민사25부(이관용 부장판사)는 오늘 첫 변론준비기일을 열었습니다.

송 부장판사와 법원행정처 사이의 '악연'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법원 내부 게시판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근무 평정 점수가 'A등급'이던 송 부장판사가 'G등급'으로 밀려난 것입니다.
당시 송 부장판사는 법관 인사나 대법관 제청 과정 등에 관한 비판적인 의견을 올렸습니다. 2014년 권순일 대법관 후보자가 추천되자 "최고엘리트 법관이 아닌 인권이나 노동, 환경에 감수성을 지닌 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하자"며 글을 올렸고, 2015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추천됐을 때도 "대법관 추천 절차의 비밀주의와 폐쇄성을 극복하며, 대법관 제청 절차에서의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하자"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법원행정처는 송 부장판사에 대한 문건을 만들었습니다. 이 소송의 피고 중 한 명인 나상훈 전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이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만든 것인데요. 송 부장판사에 대한 성향을 파악해 '정세 판단에 밝은 전략가 형이다', '낄 데 안 낄 데 판단이 밝다', '선동가, 국외자, 비평가 기질이 있다'는 내용을 적어놨습니다.
당시 인사 관련 문건에도 송 부장판사에 대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여과 없이 표현' '좀 더 신중한 언행 필요' 등 메모가 적혔습니다.
결국 2015년 정기 인사 때 송 부장판사는 희망하지 않았던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부산지법 동부지원을 희망했던 송 부장판사의 뜻과는 달리 창원지법 통영지원에 가게 됐습니다. 2017년 정기인사에서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거취 관련 글을 쓴 것이 물의 야기로 꼽혀 2지망이었던 수원지법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양승태 'V' 표기...'미운털 판사' 불이익 직접 승인 정황″ (JTBC 뉴스룸, 2018.11.20)″양승태 'V' 표기...'미운털 판사' 불이익 직접 승인 정황″ (JTBC 뉴스룸, 2018.11.20)


◇"통영지원? 좋은 데입니다. 제일 풍경 화려하고!"
오늘 송 부장판사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 사건의 증거 기록 일부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이 사건 피고들이 앞서 형사재판 법정에 나왔을 당시 발언도 살펴봤습니다.

먼저 법원행정처의 '2015년 정기인사 후기' 문건에는 '송 부장판사의 배치에 대해서는 인사권자의 뜻이 강했다'는 취지의 문구가 기재돼 있습니다. 또 물의 야기 법관 관련 문건들에는 대법원장이 결재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은 지난 7일 열린 재판에서 "일반적인 인사는 법원행정처에서 할 뿐, 대법원장은 자세히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실무진의 보고를 결재할 때도 주로 실무진 의견에 따라 결재했다"고도 했습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도 '인사 불이익'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박 전 차장 변호인은 "통영지원? 좋은 데입니다. 제일 풍경 화려하고…"라며 부당한 인사 조처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하루, 한 달, 1년, 10년 축적된 인사 평정 결과에 따랐다"고도 했습니다. 자신도 판사 근무 시절 3지망에 걸려 지방에서 근무했다면서, "1지망 안 가면 다 권리행사방해로 의무 없는 일하게 된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일반적인 인사 원칙에 따랐다는 주장입니다.

김연학 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도 지난해 6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송 부장판사가 2017년 정기인사 당시 수원지법을 2지망으로 쓰긴 했지만, 실제로는 가장 원하는 곳이라 생각해 보내줬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당시 송 부장판사는 1지망으로 수원지법 안양지원을 희망했습니다. 김 전 심의관은 "수원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고 배치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송 부장판사에게 직접 진의를 확인했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그런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깜깜이' 평정
애초에 법관 인사 과정과 근무 평정 결과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인사 평정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때는 연임심사 때입니다. 법관은 10년 단위로 연임 심사를 받는데, 그때 부적격 판사에게 사유를 알려주는 겁니다. 10년 치 평정을 한꺼번에 확인하는 셈입니다.
박경열 판사(헌법재판소 파견법관)는 '법관에 대한 직무 평정과 평가-독일 사례의 분석과 제언-', 저스티스 제179호(2020. 8) 논문에서 우리와 다른 독일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독일에서는 4년에 한 번 정기평정을 실시하고, 법원장과 법관의 상의를 통해 평정한다고 하는데요. 법관이 이의를 진술한 것은 평정서에도 기록됩니다. 박 판사는 논문에서 "독일의 판사들은 예외 없이 한국의 직무 평정 절차에 대화 과정이 없었다는 점, 결과 자체가 고지되지 않는다는 점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라고도 썼습니다. 평정 과정이 투명하게 개방돼야 법관의 독립성도 자리잡히고, 소수 의견도 설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물의 야기 법관'이 되어버린 어느 판사들, 그리고 정상적인 인사 조처를 했을 뿐이라는 또 다른 판사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 사법의 제도적인 괴리를 짚어본다면, 이는 '깜깜이 인사'일 것입니다. "통영지원이 '풍경 화려한 좋은 데'이니 괜찮지 않으냐"는 이야기가 지금의 제도 아래 더욱 설득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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